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193

프랑스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던 ‘튀니지안 블루’

튀니지 시디 부 사이드 ‘카페 드 나트’에서는 차의 향기와 함께 100여년 전으로 시간 여행 분위기와 달리 도시 이름은 경건하고 의미 있는 역사를 담고 있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북쪽으로 20km여 정도 달려가면 하얀색과 푸른색이 인상적인 지중해 마을,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에 이른다.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미코노스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북아프리카에 속해 있지만, 아프리카보다는 유럽의 지중해 도시 같은 분위기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조성된 시디 부 사이드가 처음부터 마을 전체가 온통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것은 아니다. 1920년쯤 프랑스 출신의 화가이자 음악가인 루돌프 데를랑게르가 정착하면서 자신의 집을 지중해 도시처럼 칠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

엘 그레코의 예술적 영혼이 스민 중세 도시

스페인 톨레도 타호강 품은 언덕 위에 형성된 도시 전체가 박물관 연상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에 영향 준 무데하르 양식 만들어져 기원전 2세기 로마인들이 처음으로 건설한 스페인의 톨레도는 서고트족과 아랍인들에게도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다. 로마가 평당 유적이 세계에서 가장 많듯이 톨레도 또한, 로마에 뒤지지 않을 만큼 중세 유적으로 가득 차 있어 도시 전체가 마치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타호강이 삼면을 둘러싸고 흐르는 언덕 위에 살포시 주저앉은 톨레도는 종교적 신비감으로 온통 휩싸인 채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톨레도가 스페인의 수도였던 적은 두 번이다. 로마제국이 위태로울 때 게르만인의 서고트족이 지배했을 때와 1492년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이사벨 여왕이 ..

고대 그리스의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

터키 에페소스 BC 330년경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 원정이 끝난 후 그리스 여행자들에게 일생에 꼭 가봐야 할 7개의 건축물이 유행하였다. 우리는 그 건축물을 ‘고대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불가사의라는 사전적 의미는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이다. 그 후 BC 2세기 비잔틴의 수학자 필론(Philo)이 저술한 이라는 책에, 이집트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로도스섬의 태양신의 청동 거상, 페이디아스작의 올림피아 제우스 신상, 터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낫소스의 마우솔로스 왕 능묘,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등이 소개되었다. 필론의 책에 기록된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은 이집트 기자에 ..

태국 아유타야

영화로움이 깃든 옛 왕조의 문화를 만나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된 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태국. 한때는 신혼여행지로, 효도 관광지로 인기가 많았던 태국이지만, 지금은 잠시 시들해져 많은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덜 받게 됐다. 하지만 태국은 지금도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고, 그 중심에는 방콕, 파타야, 코사무이, 치앙마이, 푸껫, 칸차나부리, 아유타야 등 수많은 도시가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유혹한다. 이 중에서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80km 정도 달려가면 태국의 젖줄인 짜오프라야강 하류에 발달한 태국 최고의 유적 도시, 아유타야에 이른다. 전쟁으로 인해 거의 폐허가 된 아유타야는 태국의 자존심이자 민족적 긍지를 높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프라나콘시아유타야’ 혹은 줄여서 ‘아유..

‘반지의 제왕’ 촬영지, 신비의 대자연을 만나는 곳

뉴질랜드 남섬 빙하침식으로 인해 생긴 피오르(fjord) 해안은 북유럽의 노르웨이가 대표적이지만,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밀퍼드 사운도(Milford Sound)도 그에 못지않은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다. 피오르 랜드 국립공원과 피오피 오타 해상 보호구역 그리고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테 와히포우나무 공원을 품고 있는 밀퍼드 사운드는 바다에서 내륙으로 15km 정도 깊숙이 들어간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영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른 피오르이다. 사실 이곳을 처음으로 찾은 유럽의 탐험가들은 밀퍼드 사운드를 주목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 이유는 노르웨이 피오르에 비교해 이곳의 입구가 아주 좁았고, 내륙 깊숙이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피오르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주와 뉴질랜..

헤밍웨이의 문학적 영혼을 만나다

우리에게 제주도가 최남단의 섬이라면 미국의 최남단의 섬은 어디일까? 미국 마이애미에서 1번 지방도로를 타고 쉴 새 없이 4시간 남짓 달려가면, 2천여 개의 섬들이 모여 있는 ‘플로리다 키스(Florida Keys)’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육지로부터 200km 남짓 떨어진 키웨스트가 바로 최남단의 섬이다. 사실 이름이 섬이지, 플로리다반도에서 42개의 연륙교로 섬과 섬이 연결된 육지 같은 섬, 키웨스트는 미국 본토보다 쿠바가 더 가깝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키웨스트 섬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1822년 미국령이 되면서 키웨스트에는 아름다운 해변뿐 아니라 호화로운 저택과 아기자기한 상점들, 갤러리, 부티크 등이 거리마다 들어서 마이애미와 함께 플로리다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여행안내서에서 ..

정교합일의 상징인 포탈라궁을 만나다

정교합일의 상징인 포탈라궁을 만나다 티베트 라싸 정교합일, 즉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연결돼 종교의 지도자가 정치적 실권자로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정치구조를 가진 티베트. 고대에 제사를 올렸던 제사장이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것처럼, 21세기의 티베트는 종교의 수장인 14대 달라이라마가 난파된 배를 이끄는 선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티베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없다. 유목민들이 고원지대에서 흩어져 살다가 629년, 티베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송첸감포에 의해 ‘토번(吐藩) 왕국’이 개창되었다. 그는 모든 유목민을 통합한 뒤, 정치적 안정과 불교의 대중화를 통해 티베트의 역사를 시작했다. 국호인 티베트는 몽골어 ‘투베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눈 위의 땅 너머..

중동의 폼페이라고 불리는 요르단의 보석

중동의 폼페이라고 불리는 요르단의 보석 요르단 제라시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 2015년 화성을 주제로 한 영화 '마션', 2019년 월트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 등 수많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요르단. 우리에게는 중동 어느 한쪽에 있는 국가로 생각하지만, 성서에서도 이스라엘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서의 땅이 바로 요르단이다. 또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몇 안 되는 중동 국가 중 하나이다. 국토의 80%가 사막인 요르단은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관광산업이 GDP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광 대국이다. 구약성경에 모세가 출애굽 때 이집트를 탈출해 운명한 느보산, 야곱의 형 에서가..

이색적인 색채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

이색적인 색채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 알제리 알제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1832년 1월부터 7월까지 프랑스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알제리를 방문하였다. 그는 1830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사흘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이슬람 여성들만의 공간인 '하렘'을 보고, ‘알제의 여인들(1832년)’이라는 작품을 비롯해 침대에 배를 깔고 비스듬히 누운 이슬람 여성을 주제로 한 ‘오달리스크(Odalisque_오스만제국 시절 궁전 밀실에서 왕의 시중을 들던 궁녀들을 지칭하는 대명사)’ 등을 그렸다. 1906년에는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아 알제리를 찾았고, 오..

푸른 하늘 가득 메운 종교와 학문의 도시

푸른 하늘 가득 메운 종교와 학문의 도시 헝가리 페치PECS ‘다섯 개의 교회’라는 뜻의 큉케에 클레시아이는 헝가리 남부에 있는 페치의 옛 이름이다. 숲이 우거진 메체크 산맥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 페치는 원래 로마제국 시절 남 판노니아 속주의 주도인 ‘소피아나이’이라고 불리던 작은 도시였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이곳은 일리리아인과 켈트족의 지배를 받았고, ‘페치’라는 이름은 마자르인이 다뉴브 대평원에서 헝가리를 세운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2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페치는 현재 인구 20만 명의 중소 도시로 전락했지만, 과거에는 헝가리 남부를 대표하는 도시였다. 11세기에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이슈트반 1세가 이곳을 주교관구로 삼으면서 헝가리의 종교 중심지가 되었고, 1367년에는 헝가리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