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 '길 가는 그대의 물음' 11

물고기가 다니는 길, 궤기 올레

김유정의 제주문화이야기물고기가 다니는 길, 궤기 올레   궤기는 고기의 제주어다. 육상 동물인 경우 돼지궤기, 쉐궤기(소고기), 궤기(말고기), 노리궤기(노루고기)라 칭하고, 바다 동물은 바릇(바다)궤기라 한다. 궤기줄은 낚시줄, 궤깃배는 어선이고 궤깃반은 잔치집이나 장례집의 돼지고기가 있는 쟁반의 음식을 말한다.    궤기올레  궤기올레는 말 그대로 물고기가 자주 다니는 올레를 말한다. 궤기올레는 도두봉 서북쪽 해안 ‘매부리 여’ 안쪽에 있는 여에 위치한다. 도두동 원로 잠녀들은 그곳이 ‘소(沼)’인데 수심 3~4미터 정도 바닥에 우묵하면서도 평평한 여가 있고, 용암이 육지로부터 바다 쪽으로 흐르면서 호로갱(壕路坑) 같이 우묵하게 패인 골이 길게 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 사이는 수심이 깊어 물..

독학 화가 고영만, 침(針)으로 생명을 그리다.

독학 화가 고영만, 침(針)으로 생명을 그리다.    한 화가의 삶은 고스란히 자신의 작품 안에 투영된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왜 그것을 그렸는지를 말이다. 고영만은 스승 없이 혼자 그림을 그린 독학 화가다. 미술 자료가 부족한 시절, 그는 신문스크랩. 잡지 화보를 열심히 모으며 그것을 보고 그리고 또 그렸다.     독학 화가 고영만 그는 4·3사건과 한국전쟁 시절 14살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동생을 돌보며 목공소, 이발소 그리고 공군부대에 징발된 박 의원 등에서 허드렛일로 끼니를 넘겼다. 서울이 수복된 후 공군이 섬을 떠난 후 어린 동생과 함께 전쟁고아 보호시설인 한국보육원에 입소하게 된다. 이때 고영만은 대학생 보모였던 구대일로부터 처음 수채화를 배워 해마다 제주시 관덕정에서 열리는 학..

돌담, 다시 복원할 수 없는 돌담 (上)

돌담, 다시 복원할 수 없는 돌담 (上) 제주문화연구소장, 미술평론가 김유정 땅은 태초부터 인간이 사는 곳으로서 땅의 역사가 곧 문명사이고 경제의 원천인 산업이 일어나는 장소다. 더불어 땅은 인간의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부의 원천이기도 하다. 땅의 의미 우리는 자신의 땅을 구분하고 표시하기 위해 지도를 그린다. 지도는 우리가 사는 땅의 모양을 그린 도상(icon)으로 지역 간 경계와 거리를 나타내기 위해 길, 산, 하천, 마을, 부속섬, 주변국, 지명, 풍토, 풍속 등 매우 다양한 표기를 한다. 지도는 당대의 지식이 반영되며 동시대 한 국가의 정치와 사상이 집약돼 나타난다. 그러므로 땅은 토지경제학(land economics)의 영역이면서 지정학적(geopolitical) 장소가 되기도 한다. 땅을 소..

변시지, 영원회귀와 바람의 삶

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변시지, 영원회귀와 바람의 삶 일본 생활 24년 만에 귀국 변시지(1926~2013)는 서귀포시 서홍동 출신으로 1931년 여섯 살에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하나(花園) 고등학교와 1942년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화가를 다녔다. 이때 한국인 학생으로는 백영수, 제주 학생으로는 조천 출신 송영옥, 다호 출신 양인옥이 있었다. 1945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가 데라우치 만지로(寺內博治郞) 문하에 들어갔다. 데라우치 만지로는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한 중견 화가였다. 데라우치 만지로의 후광을 얻어 일본 광풍회에서 수상하며 입지를 굳힐 수 있었고, 젊은 나이에 광풍회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후 변시지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면서 작품 활..

세상 등진 처녀 총각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합

김유정의 길가는 그대의 물음 세상 등진 처녀 총각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합 의례적 인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의례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의례를 통해 자신이 규정되거나 사회적 인간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의 일생에는 수많은 통과의례가 있다. 생로병사의 인생에서는 개인, 가정, 공동체가 겪어야 할 작은일, 큰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생일, 졸업, 결혼, 쾌유, 축하, 환갑, 상장례 등과 같은 의례를 통해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희로애락의 감정은 원초적인 본능으로 표출되고 삶의 행복과 슬픔의 굴곡이라는 정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의례는 하나의 과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첫돌, 졸업, 성년식, 합격, 결혼, 환갑, 죽음 등의 의..

올레의 화가 김택화 (下)아름다움들을 손이 닿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김유정의 길가는 그대의 물음 올레의 화가 김택화 (下) 아름다움들을 손이 닿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2023년은 故 김택화 화백이 돌아가신지 17년째가 되는 날이다. 세월의 빠른 흐름에 무상함을 느끼는 시간, 먼저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그가 제주에 남긴 예술혼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김택화는 ‘처음이 많은 화가’이다. 지난 회에 제주 극장 간판을 처음 그리고, 제주의 추상화가로서 처음임을 소개하였는데 이번 회에는 다른 처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으로 그라(래)픽 디자인전을 열고 한라산 소주 라벨을 디자인하다 김택화는 국전 11회전 특선 이후 낙향하여 제주에서 몇 번의 전시를 가졌다. 1963년 7월 뉴욕 다방에서 개인전을 연 후 이듬해 7월에는 다시 춘홍다방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65년 8월, ..

아름다움들을 손이 닿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김유정의 길가는 그대의 물음 올레의 화가 김택화 (上) 아름다움들을 손이 닿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2023년은 故 김택화 화백이 돌아가신지 17년째가 되는 날이다. 세월의 빠른 흐름에 무상함을 느끼는 시간, 먼저 떠나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그가 제주에 남긴 예술혼을 새겨보고자 한다. 김택화는 천성이 화가라는 이름에 걸 맞는 인물이었고 제주에서는 ‘택화화실’, ‘택화풍’이라고 그를 지칭하던 대명사로 그의 스타일이 대변 되었다. 언제라도 떠오르는 그의 첫 인상은 그림이 곧 그였다는 생각이다. 아담한 키에 평소 챙이 없는 모자를 즐겨 쓰고 말을 매우 적게 하면서 빙긋 웃기만 하는 스타일은 모르는 누가 봐도 딱 첫 눈에 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택화는 ‘처음이 많은 화가’ 김택화에게 ‘처음’의 의미는..

돌들의 고향, 지역마다 다른 돌담

김유정의 길가는 그대의 물음 돌들의 고향, 지역마다 다른 돌담 석다(石多)의 고향 돌이 많음에 대한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담론이 다르다. 과거에는 제주가 석다(石多)의 변방 지역으로 척박(瘠薄)함의 대명사나 고작 말이나 키우는 황무지 목장으로 인식되었다면, 오늘날 제주의 석다(石多)는 문화경관으로써 제주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는 자연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돌은 자연에서 나와 사람의 손을 거쳐 구멍 송송한 돌담이 되곤 한다. 또한 제주를 덮고 있는 현무암은 상징적인 토산재(土産材)가 되고 있다. 제주의 돌은 두 가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섬 땅을 거칠게 만든 원인도 되고 거꾸로 섬의 모진 바람을 막아주는 매우 요긴한 결과도 있었다. 밭농사를 매우 어렵게 만들지만 목축산업의 경계구분과 방풍(防風)을 위한 ..

한라산에서 남극노인성을 보면 오래 산다

김유정의 길가는 그대의 물음 3 한라산에서 남극노인성을 보면 오래 산다 노인성의 이름은 수성(壽星)인데 수성노인, 남극노인, 남극노인성, 남극선옹(南極仙翁)이라고도 한다. 수성노인을 그린 그림을 일러 수성도(壽星圖), 수노도(壽老圖), 수노인도(壽老人圖), 노인성도(老人星圖), 남극성도(南極星圖,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 등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도교의 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선과 연꽃으로 대표되는 선불(仙佛)사상의 세계관으로 그려진 삼국시대의 고분벽화가 중요하다. 고분벽화들에는 용이나 학을 탄 신인(神人), 별신, 달신, 해신, 대장장이 신, 각종 동물들, 하늘을 나르는 여신, 옥녀(선녀)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 도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도교의 벽화라고 할 수 있다. 수노인도 도교적인 장수신앙의 ..

백록담에서 흰사슴을 타고 있는 신선

백록담에서 흰사슴을 타고 있는 신선 지금은 한라산에 노루 밖에 없지만 옛날에는 사슴이 많아서 장졸(將卒)을 동원하여 사냥을 하고 그것을 공물로 바치기도 했고, 시인묵객들은 신선사상과 관련 지어서 백록선인(白鹿仙人)이라고 흰 사슴을 탄 신선에 대해 노래했다. 사실 신선 사상은 우리들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픈 욕망에서 나온 유토피아적 발상이다. 그만큼 현실에서 가진 것들이 귀하고 소중하여 두고두고 그것을 영원히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 마음을 그리 알아주지 못한다. 『열자(列子)』는 말한다. 삶이란 그것을 귀중히 한다고 해서 존속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몸이란 그것을 사랑한다고 해서 두터이 건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을 귀중히 여겨도 그렇지 않으며, 그것을 천대하여도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