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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

제주한라병원 2021. 4. 27. 09:51

터키 에페소스

 

에페소스에서 가장 유명한 셀수스 도서관.

BC 330년경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 원정이 끝난 후 그리스 여행자들에게 일생에 꼭 가봐야 할 7개의 건축물이 유행하였다. 우리는 그 건축물을 ‘고대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불가사의라는 사전적 의미는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이다.

그 후 BC 2세기 비잔틴의 수학자 필론(Philo)이 저술한 <세계의 7개 경관>이라는 책에, 이집트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로도스섬의 태양신의 청동 거상, 페이디아스작의 올림피아 제우스 신상, 터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낫소스의 마우솔로스 왕 능묘,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등이 소개되었다. 필론의 책에 기록된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은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뿐이다. 나머진 거의 형태와 원형이 사라졌고, 그나마 터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며 폐허가 된 땅 위에 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

과거의 영화로움이 거의 사라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터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이즈미르에서 남서쪽으로 50km 정도로 떨어진 곳에 있다. 신전 터에는 주춧돌 몇 개만 남아 있고, 부서진 서로 다른 돌기둥 조각을 겨우 이어 맞춰 한 개만 휑하니 서 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대왕은 동방 원정 때 아르테미스 신전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왔다. 이 신전은 기원전 6세기 리디아 왕 크로이스소스 때 착공해 120년에 걸쳐 완공됐다. 20m 높이의 이오니아식 대리석 기둥이 127개가 신전을 둘러싸고, 신전 내부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아르테미스 여신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신전은 기원전 4세기 에페소스의 시민, 헤로스트라토스라는 사람이 달과 숲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신전에 불을 질렀다.

신전에 방화한 목적은 어처구니없게도 단시간 내에 자신의 이름을 에페소스 시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것뿐. 물론 에페소스시에서는 그에게 사형을 내렸고, 그의 이름과 범죄가 기억되지 않기 위해 시민들에게도 이름을 언급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리스의 저명한 역사가인 테오폼포스가 <그리스 역사>에 그 사건과 범죄자의 이름을 기록함으로써 오늘날까지 헤로스트라토스의 이름이 알려졌다.

방화로 불에 탄 신전을 안타깝게 생각한 에페소스시에서는 신전을 복원했지만, 다시 파괴됐고 기원전 320년경 길이 137m, 폭 69m, 높이 19m의 신전으로 완성하였다. 그 후 500여 년 정도 신전으로 활용되다가 AD 268년 게르만 계통의 고트족이 이곳을 무참하게 파괴했다. 이때 신전의 기둥 일부는 이스탄불의 하기야 소피아 성당을 짓는 데 사용됐다. 폐허 된 신전 발굴은 1869년 영국과 1896년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시작됐고, 1907년 이후 터키 발굴단에 의해서 발굴된 유물들은 에페소스 박물관에 1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아르테미스’와 2세기에 만들어진 ‘위대한 아르테미스’ 그리고 시대를 알 수 없는 ‘머리와 팔이 없는 아르테미스’ 등 3개의 아르테미스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4세기 초 크리스트교도들의 중심지로 숨쉬던 에페소스.

 

아스라한 옛 영광이 스민 에페소스 유적지.

아르테미스 여신을 수호신으로 모셨던 에페소스는 그리스 시대 때 불린 이름이다. 기원전 10세기 그리스의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식민도시가 이곳에 건설됐고, 현재 위치에 있는 에페소스 유적은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부하인 리시마코스 장군에 의해 건설됐다. 로마 식민시대 때 ‘에페수스’로 불리며, 인구 20만 명이 살았을 만큼 최고의 황금기를 누려 로마보다 더욱 로마다운 도시로 알려졌다. 로마 식민도시에도 불구하고 에페소스는 동서양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 아르테미스 신전과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물인 도미티아누스 신전도 건축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에페소스 유적지에는 바실리카, 음악당, 총독관저, 아고라, 대욕장, 하드리아누스 신전, 셀수스 도서관, 대극장 등 다양한 건축물이 들어섰는데, 지금도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과거의 영광을 느끼게 충분할 만큼 보존돼 있다.

이 중에서도 건축물 전면이 가장 잘 보존된 셀수스 도서관은 과거 이곳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모진 풍파를 견뎌낸 도서관은 서기 135년 아퀼라가 소아시아 통치자이자 아버지였던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인데, 안타깝게도 완성하기 이전에 아퀼라는 사망했다. 또한, 초기 기독교 시절에 사도 바울이 에페소스에서 2년 정도 활동을 하며 도서관 앞마당에서 강론을 펼쳤다고 한다. 에페소스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곳 사람들은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하던 아르테미스가 절대적인 수호신이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더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자고 설교하자 은으로 만든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을 팔던 상인들하고 갈등을 겪은 장소로도 알려진 곳이 바로 셀수스 도서관 앞이다.

에페소스 유적 가운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원형극장은 2만 5,000여 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원형극장 중의 하나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로마 시대 때인 1~2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3단으로 이뤄진 원형극장 맨 꼭대기에 서면 발아래로 에페소스에서 가장 넓은 대로인 아카디우스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 길은 아카디우스 황제 시대에 복구된 뒤 그의 이름을 붙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총 길이 530m, 폭 11m에 달하는 아카디우스 거리를 따라 값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을 것이다. 오늘날 도로를 따라 지붕을 덮은 상가를 ‘아케이드’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바로 에페소스 아카디우스 거리에서 따 온 것이다. 이 외에도 138년에 에페소스 시민들이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위해 만든 신전도 있다.

에페소스는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했던 곳이자,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나서 12 사도 중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온 도시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도착한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은 에페소스의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사도 요한은 이곳에서 복음서를 기술하고 생을 마감하였고, 그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4세기경 나무로 된 교회가 지어졌다.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교회가 다시 건설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에페소스는 431년에 종교회의가 열려 성모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라고 인정한 역사적인 장소가 됐다. 이런 이유로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와 197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방문하면서 에페소스는 성지로 자라 매김을 하였다.

 

1,4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오데온 소극장.
이오니아 양식으로 만들어 기둥.
118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친 '하드리아누스 신전'의 아치.
인도이 스와스티카 '만(卍)'은 불교뿐아니라 서양에서 태양을 상징한다.
원형극장 인근에서 펼쳐진 검투사들의 공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