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질토레비가 들려주는 제주이야기 15

제주신당(神堂)의 원조, 송당·와흘 본향당

제주신당(神堂)의 원조, 송당·와흘 본향당     오래전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와흘 본향당에 서너 번 들린 적이 있다. 와흘 본향당에는 수령이 수백 년이나 되는 거대한 팽나무들이 신목으로 있어 신령스러움이 가득하다. 신당 주위 팽나무의 우람한 가지가 담장 밖까지 길게 뻗어있고 형형색색의 옷감과 소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주위에 심어져 있는 동백나무는 삼승할망이라 불리는 산신(産神)할망의 상징목이기도 하다.   본향당  제주 신당의 원조는 송당 본향당이다. 이곳 당신인 금백주는 소로소천국과 결혼하여 아들 18명과 딸 28명을 낳았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은 제주도 각처로 흩어져 당을 만들고 좌정하였다.  와흘 본향당은 송당 본향당의 열한 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이 이곳 서정승 딸과 혼인하여 처신(妻神)으..

제주 석기시대로의 시간여행

제주 석기시대로의 시간여행 우연히 애월읍 빌레못 동굴 입구에 간 적이 있다. 그곳 안내판을 읽다보니 제주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 하는 역사적 의구심이 조금 풀리기도 했다. 제주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만 년 전인 중기 구석기 시대부터라 한다. 구석기 시대의 제주 애월읍 빌레못 동굴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제주도에 흔한 돌인 현무암을 떼어내어 찍개나 긁개, 돌칼, 톱날과 같은 도구를 만들었고, 갈색 곰이나 사슴, 노루 등을 사냥하면서 생활했었을 것이다. 제주시 삼양동 삼화지구와 외도동, 한림읍 동명리, 서귀포시 천지연 바위그늘 집 자리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인들도 이와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며 생활하였을 것이 자명하다. 구석기 시대는 빙하 시대와 간빙기 시대가 번갈아 있었던 시기로서, 빙..

목민관 임형수 제주목사를 찾아서

목민관 임형수 제주목사를 찾아서 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원장) 제주백성을 위한 아름다운 길을 걸은 임형수 목사의 흔적을 찾아 한경면 고산리로 향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지질공원이자 화산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수월봉과 엉알 해안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신석기 선사인(先史人)이 살았던 자구네 뜬밭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경면 고산리에는 수월봉 엉알 해안에 있는 갱도와 참호는, 미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바다로 직접 돌격하는 일본군 자살특공대 보트와 탄약을 보관했던 곳이자 지휘소가 있던 유적이다. 18,000년 된 분화구를 숨긴 바다와 다양한 볼거리를 품고 있는 차귀도에는 소래기(매) 동산과 볼래기 동산, 그리고 설문대할망 아들 오백장군의 막내바위도 있다. 옛 차귀현 마을인 고산리 가름(..

탐라순력도로 보는 경로잔치

탐라순력도로 보는 경로잔치 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원장) 고향에서 베풀어진 경로잔치에 갔었다. 최근 마을사업으로 다시 조직된 걸궁패와 초청된 소리패가 분위기를 주도하니 어르신들도 이내 흥겨운 한마당에 빠져들었다. 흥은 전염 되고 돌림 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고향의 흥겨운 경로잔치를 떠올리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본다. 그 옛날 제주 목사가 주관하는 경로잔치가 제주목․정의현․대정현에서 연례적으로 행해졌다. 8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참여한 조선시대 제주에서의 경로잔치를 탐라순력도를 통해 살펴보자.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1979년 국가보물로 지정된 탐라순력도는 경북 영천 출신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이 1702년(숙종 28)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순력한 일정을 41개 그림으로 그린 화..

귤림서원·향현사·오현단

귤림서원·향현사·오현단 문 영 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제주의 서원 서원은 지금의 공사립 중등학교에, 향교는 국립 중등학교에, 서당은 초등학교에 해당된다. 제주도에서 사액서원으로 운영되던 귤림서원과 삼성서원은 1871년 5월 9일 흥선대원군에 의해 시행된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 항현사는 귤림서원의 사당중 하나로 제주를 빛낸 영곡 고득종과 명도암 김진용을 모신 사당이다. 향현사 역시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다. 오현단은 귤림서원 터에 1892년 조두석 5개를 5현의 위패처럼 안장하여 마련한 제단이다. 이후 제주 유생들이 고득종과 김진용의 위업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향현사유허비를 세워 제향(제사 의식을 말함)을 지냈고, 2007년 제주시에서 귤림서원 일부 건물과 함께 향현사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한라산 산신제와 한라산의 유래 (下)

한라산 산신제와 한라산의 유래 (下) 문 영 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예로부터 명산대천에는 신들이 깃들어 있다 하여 나라에서는 제사를 지냈다. 한라산 역시 탐라국시대부터 산신제를 지내왔다.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내려 오가는 과정에서 사람이 동사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아지자, 1470년(성종 원년) 이약동 목사는 ‘제주읍성 남문 밖 15리에 산천단을 마련’하여 산신제를 지내게 했다. 하지만 국가적인 대사가 있을 경우에는 한라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내곤 했다. 사료에 기록된 한라산 산신제 1601년 역모사건으로 어수선해진 백성들을 달래고자 선조 임금이 보낸 안무어사 김상헌이 백록담 북쪽에 제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냈고, 1680년 4월에도 백록담 북쪽 제단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제사의 주관자는 숙종 임금을 대..

탐라국 해상교역의 증거인 용담동 제사유적

탐라국 해상교역의 증거인 용담동 제사유적 ‘용담동 제사유적’은 제주향교 서북쪽 담장 너머에 있다. 1992년 제주시의 의뢰를 받아 이 지역 100여 평에 대한 발굴조사에 임했던 제주대박물관 조사팀은 이곳에서 수백 점의 통일신라시대 회색도기 파편을 비롯한 옥(玉)제품, 금동 혁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청자(주전자) 등을 수집했다. 그러나 이 도기들은 철저히 깨어진 채로 버려져 있었다. 도자기들은 당시 제주에서 자체 생산되지 않는 수입품이었다. 한천과 병문천이 바다로 이어지는 해안 저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제주도의 관문이었던 산지천은 물론 한천과 병문천 포구로 들고나는 배의 동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인 회색도기 병과 항아리가 주로 발견됐다. 이 유물..

탐라순력도로 보는 제주 역사문화 엿보기

탐라순력도로 보는 제주 역사문화 엿보기 1702년에 그려진 ‘탐라순력도’ 화첩(35㎝×55㎝)은 제주도의 역사·문화에 관한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화첩에는 순력의 모습 등을 담은 41면의 그림이 담겨져 있다. 탐라순력도는 지방에서 그려졌지만, 화공畵工의 이름이 알려져 있고, 화필의 수준이 중앙 화원들이 그린 의궤도(儀軌圖)를 능가한다고 평가된다. 순력巡歷이란 관찰사가 지역의 고을들을 순회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전라도 관찰사가 제주도의 삼읍을 순력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사정으로 전라도 관찰사는 자신의 임무 중 일부를 제주목사에게 위임했는데, 순력 임무는 그중 하나다. 제주목사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삼읍인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을 순력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제주목사 이형상은 1702..

김광종 곤밥하르방을 아시나요?

관개수로 개척자 김광종 곤밥하르방을 아시나요? 관개수로는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대는 물길이다. 안덕면 화순리(번내) 동쪽에 위치한 황개천을 마을에서는‘황개창·황게창’으로도 부른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이곳에 누런 물개가 나타난다 하여 황개창으로, 누런 깅이가 산란한다 하여 황게창으로도 불렸다. 오래전 안덕계곡 주변에서 용출된 상당량의 물은 황개천을 지나 바다로 흘러갔다. 그냥 바다로 이입되는 물이 너무나 아까운 김광종(1792∼1879)은 ‘도채비빌레’라는 지대의 암반을 뚫어 물이 흐르도록 하여 황개천 주변 광활한 일대에 논밭을 조성하여 주민들이 쌀밥인 곤밥을 먹을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주민들은 그를 ‘논하르방·곤밥하르방’으로 지금도 부르고 있다. 밭을 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꿨..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 그리고 …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 그리고 … 자청비 신화에 공감한 국제천문연맹(IAU)에서는 2017년 소행성 중 하나인 세레스(Ceres)에 ‘자청비’라는 우리말을 붙였다. 행성 이름에 한글이 들어간 것은 자청비가 처음이란다. 웹툰과 모바일 게임에도 등장할 정도로 국제적인 이름이 되고 있는 자청비 신화 속으로 빠져보자. 어느 날 빨래터에 갔던 자청비는 글 배우려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옥황상제 문곡성의 아들 문도령을 만난다. 첫 눈에 반한 자청비는 목말라 물 청하는 문도령에게 버들잎을 물에 띄운 바가지를 건넨다. 이렇게 시작된 문도령과 자청비의 신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서촌꽃밭을 무대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자청비는 부모의 소원대로 정수남이를 살리려 남장을 하고 환생꽃이 있다는 서촌꽃밭을 찾아 먼 길 떠난다. 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