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한라문예 25

고마운 낯설음

2010년 간호사 일을 시작한 이후 임상간호사 3교대 근무만 해오던 내가 육아휴직 후 적정진료파트라는 낯선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의료질평가’, ‘요양급여적정성평가’. 생경스러운 단어에 인터넷 검색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뒤지며 나름대로 적응해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막막한 두려움과 이전 익숙했던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익숙함이 있는 그대로의 편안함이라면 낯설고 새로운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거꾸로 익숙함은 낯섦 앞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 두려움이 실상 그 높이가 아니라 낯설음에 지레짐작 느끼는 공포라면 못 넘을 산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과 함께 “세상이 두려움이 아닌 도전의 장”이라는 당연한 명제까지 소환하며 몇날 며칠을 낯설음에 맞섰다. 나의 진지한 고민이 효..

Well-Being Well-Dying

Well-Being Well-Dying 연명의료팀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치료의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연명의료팀 소속 우리 두 사람이 환자 또는 보호자와 대면이나 유선 상담으로 하루에도 수십 차례 하게 되는 말이다. 우스갯소리지만 간혹 잠꼬대에 등장하기도 한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막는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이다.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160만 명을 넘어섰고, 실제 연명의료 중단도 26만 건을 넘어섰다. 이는 웰 다잉(Well-Dyin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제도가 정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병원 내 직원들의 제도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높다. 실제..

이오공감

이오공감 뉘엿 해가 지더니 넥타이를 풀어 제친 발자국들 몰려든다 후미진 골목 켜켜이 포개진 등불들 보폭을 맞추어 멈춰선 걸음 흥엉거리는 입꼬리 찰진 어깨 얼싸안고 가까이 더 가까이 이마를 맞추고 들뜬 소리의 높이를 조절한다 미현 기현 정민 애순 계명 문 경학 현주 규문.. 들뜬 공기가 샘을 낸들 목청 터져라 부르는 이름 카아, 소주 한잔 들이키고 빙 둘러보니 끈끈한 미소가 등잔불에 착 달라붙어 배시시 웃는다 사정없이 찡한 정이 고인다 고객지원팀 강래화 매니저

나의 하루를 위로하며

나의 하루를 위로하며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소주는 어렵고, 다들 섞어 마시는 이른바 ‘소맥’을 즐기지만 나하고는 영 맞지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마시는 맥주가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내 자신에게 전하는 위안의 선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병원 5층 신관과 구관을 연결하는 복도에 사회사업파트가 있다. 상담 환자로부터 “시청? 동사무소에서 나오셨어요?”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하는 내가 근무하는 공간이다. 하기야 의사나 간호사분들도 내가 무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의료법에 의해 종합병원에 반드시 두게 되어있는 사회복지사이며 개인과 공공기관 또는 민간단체를 연결하여 의료비, 간병비, 퇴원계획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사회복지는 1958년 한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사..

힘들어도 돌아가야 한다. 흡연 이전으로!

힘들어도 돌아가야 한다. 흡연 이전으로! 흡연은 담배 피우는 행위를 말하며 금연은 피우던 담배와의 인연을 끝내는 것이다. 애연가들의 말에서 느껴지듯이 둘 사이의 간극은 엄청나다. 참 오묘한 것이 흡연으로 가는 길은 탄탄대로인데 반해 다시 금연의 길은 가시밭길이며 끝없는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아 보인다. 애연가들에게 담배를 시작한 이유를 물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멋도 모르고 피웠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피우니까, 멋있어 보여서, 군대에서 다들 피우니까 ……. 이러 저러한 이유로 피우다보니 어느새 애연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다시 돌아가려하니 그 길이 너무 험하고 어려워 포기하거나 금연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흡연이 중독이고 습관임이 그 이유다. 과거의 흡연은 일상이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1..

여행과 새로움

우리는 한라병원보 편집위원들이다. 매달 첫 주 목요일이면 짬을 내어 편집회의를 하며 병원보에 대한 의논의 시간을 갖는다.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힘듦이 일상을 지배하던 즈음, 편집회의를 마치고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나름의 위안을 찾고자 해외여행 모의를 하게 되었다. 2023년 봄이 완연해질 즈음, 끝이 없을 줄 알았던 펜데믹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3년이라는 긴 터널만큼이나 모아진 돈도 충분했다. 가자! 3박 4일, 대만으로! 첫날은 국립고궁박물관과 용산사를 들르고 스린 야시장에서 닭튀김의 향수를 부르는 치파이를 먹었다. 아직은 젊다고 서로 우기면서 웃고 떠들며 고운 사진 박느라 정신없는 하루였다. 둘째 날, 기차타고 화렌으로 넘어가 태로각 협곡, 칠성담 해변을 거닐고 다시 돌아와 ..

고흐와 거닐다

고흐와 거닐다 강래화 우직한 별 하나가 내려왔다 소용돌이치는 밤 사다리를 타고 조용히 그는 그랬다 새벽이 오면 고요한 밀밭에 서서 찌르르 씨르르 풀벌레 사랑싸움 엿 듣다가 그러다 지치면 풋내 나는 바닥에 누워 붓칠을 하곤 했지 나는 지켜보는 방관자 한껏 찌푸려진 미간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그의 늘어진 그림자에 놀라 너덜해진 종이 안에 또 다시 덧칠을 한다 소용돌이치는 별이 빛나는 밤에

산업사회 갈수록 인문학적 소양 강조돼

산업사회 갈수록 인문학적 소양 강조돼 제주한라병원과 함께한 지난 10년의 소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현대사회는 ‘4차산업혁명’을 앞당기게 됐다고 한다. 인류문명은 이미 인공지능, 클라우드, 무인주행 자동차 등 고도의 기술이 접목된 산업사회로 들어섰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한 예로 최근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학과의 지원자가 크게 줄고 있으며, 서점에서도 계몽서, 정보 관련 서적 등에 비해 인문 서적 수요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 가운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을 조합 혹은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이를 위해서는 흘러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내가 필요한 것을 걸러내거나 새롭게 해석하여 묶어낼 수 있는 ..

긍정적인 직장 문화를 만드는 방법

문화는 우리를 항상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다. 직장 문화는 직장에서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유 가치, 신념 체계, 태도 및 일련의 과정이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리더십과 전략적 조직 방향 및 관리가 직장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인 직장 문화는 팀워크를 향상하고 사기를 높이며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인력 유지를 향상한다. 업무 만족도, 협업, 업무 성과가 모두 향상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직장 환경이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준다는 것이다. 딜로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직원의 76%가 “명확하게 정의된 비지니스 전략”이 긍정적인 직장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과연 긍정적인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조직에 대한 명확한 윤리..

“코로나19로 지친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코로나19로 지친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39주년 개원기념일에 감염관리실 업무유공 포상을 받으며 감회가 새로웠다. 전쟁 같았던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는 참으로 힘들고 지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코로나19 유행기간동안 코로나 대응을 같이 하다 떠나버린 감염관리실 팀원 얼굴들도 한 명 한 명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는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우한 폐렴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명명되었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신종감염병은 언론에서 지속적인 보도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되기 전 까지만 해도 크게 심각성을 인지하지는 못하고 그냥 불안과 두려움만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예방백신과 치료제도 없이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 출입구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