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한라문예

고마운 낯설음

제주한라병원 2023. 11. 28. 10:49

2010년 간호사 일을 시작한 이후 임상간호사 3교대 근무만 해오던 내가 육아휴직 후 적정진료파트라는 낯선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의료질평가’, ‘요양급여적정성평가’. 생경스러운 단어에 인터넷 검색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뒤지며 나름대로 적응해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막막한 두려움과 이전 익숙했던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익숙함이 있는 그대로의 편안함이라면 낯설고 새로운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거꾸로 익숙함은 낯섦 앞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 두려움이 실상 그 높이가 아니라 낯설음에 지레짐작 느끼는 공포라면 못 넘을 산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과 함께 세상이 두려움이 아닌 도전의 장이라는 당연한 명제까지 소환하며 몇날 며칠을 낯설음에 맞섰다. 나의 진지한 고민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아니면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 때문인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어느 날 내 마음 속 보물함 한 귀퉁이에 오랜 기간 방치된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도전이라는 녀석을 집어 들게 되었다.

 

새롭게 다진 마음으로 지금의 일을 시작한지 어느덧 4개월.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만 처음과는 많이 다르다.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낯선 일들이 재미로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려움도 있지만 좋은 결과에 성취감이라는 보상을 얻기도 한다. 막막하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이제 조금씩 감이 잡혀온다. 무거웠던 출근길이 한결 가벼워졌고 지금의 일과 업무 환경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다.

 

나의 주 업무는 우리나라 의료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고 비용 부담의 적정화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행하는 적정성 평가 항목을 우리 병원에 적용시켜 관리하는 역할이다. 제반 평가지표들을 분석하여 해당 진료과부서에 안내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으로 개선해 나간다. 아직까지는 내가 직접 하는 부분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재미와 보람이 나의 능력과 역할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나갈 것임을 믿어본다.

 

제주한라병원 식구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 병원 구호는 발전이다. 발전이라는 것은 도전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고 개인의 작은 업무에서부터 세상 모든 큰일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다.

출근길에 현관을 들어서면 개원 4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역사의 벽을 볼 수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엄청난 성장을 했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제주한라병원의 40년 역사가 변화하는 환경에 발을 맞추었고, 익숙함을 과감히 거부하면서 낯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왔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익숙함은 많은 변화를 그냥 묻어 버리고 편안함이라는 무덤을 제공한다.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내게 다가온 낯설음은 익숙함 속에 놓치고 있었던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하였고 조금이나마 나를 성장시켰다. 그래서 내게 다가왔던 그 낯설음이 참으로 고맙다.

 

 

적정진료파트 김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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