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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랑마을’ 대정고을 안성리의 새 명함

제주한라병원 2012. 7. 5. 11:00

2010년/11월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기록사랑마을’ 대정고을 안성리의 새 명함

 

 

 

 

# 파주·조동8리에 이어 세 번째 기록사랑마을

 

최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가 제주지역 최초의 기록사랑마을로 탄생됐다.
국가기록원장이 선정하는 기록사랑마을은 민간 기록물의 관리기반을 마련하고 주민의 기록문화에 대한 의식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현재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8리와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과 안성리 단 3곳만이 선정돼 있다.
안성리는 추사의 숨결 살아있는 대정고을의 중심으로 잘 알려진데다, 최근 기록사랑마을로도 지정돼 또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안성리는 ‘대정고을’로 불리는 세 마을 즉 안성리, 인성리, 보성리 중 안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130여 가구 400 여 주민 대부분은 감귤과 마늘, 감자를 주로 재배한다.
안성리는 최근 감귤 수확과 가을에 수확해서 말려둔 콩 타작작업으로 분주하다.
비록 행정구역상 세 마을로 구분되긴 하지만 조선시대 대정현 소재지 마을로서의 공동체문화가 주민들 사이에 강하게 인식돼 있어 각각의 마을을 별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다.


안성리를 포함한 대정고을은 제주도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모슬봉, 송악산, 단산을 바라보고 북쪽으로는 당산봉을 끼고 있는 대정읍 중심부에 해당한다.
이런 지역적 조건이 밑바탕이 돼 과거 대정현 소재지로서 번성했고 현재까지도 그 흔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1418년 축조했다는 지방기념물 제12호 대정성지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안성리는 대정현 소재지였을 뿐만 아니라 ‘추사체’ 및 ‘세한도’로 이름을 널리 알린 조선시대 서예의 대가 추사 김정희선생(1786∼1856)의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현재의 추사적거지는 1984년 복원됐다.
지난 5월에는 추사 선생의 서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추사유물전시관이 건립돼 추사선생 관련 동호회와 서예, 유배 관련 문화인 등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안성리 마을입구 속칭 ‘돌동산’에는 ‘김만석 의사 묘비’가 있다.
의병 김만석은 조선조 말 기우는 국운을 회복하려고 일제에 항거하다 그들의 총탄에 쓰러진 대정출신 인물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전국 도처에서 의병이 일어남에 따라 도내에서도 고승천, 노상옥 등 여러 지사가 중심이 돼 제주성 밖 광양에서 무기를 제조하고 황사평에서 의병을 훈련시켰다.
1909년 2월 12일 김만석 지사는 창의격문을 돌리며 의병 동지를 규합하던 중 당시 안덕면 서광리에서 고승천 지사와 함께 체포됐다. 이튿날 안성리 큰동산까지 연행된 두 사람은 그곳에서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규탄하다 그들의 흉탄에 쓰러졌다. 그 당시 김 지사는 25세의 약관이었다. 고승천의 유해는 가족들에 의해 제주시 영평동에 매장되었고 가족이 없던 김만석은 처형장에 그대로 버려져 있던 것을 안성리 주민들에 의해 현 위치인 속칭 ‘돌동산’에 가매장했다.
이 비는 김만석 의사가 순국한 지 66년만인 1976년 당시 남제주군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그의 유해는 1977년 제주시 모충사로 이장한 상태이며 묘는 가묘이다.
지금은 안성리 주민들에 의해 묘비 일대가 관리되고 있으며 지역청소년들의 역사학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강승일 이장은 “올곧은 조상들의 성품과 기조를 이어받아 안성리 사람들도 예의 바르고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서 “특히 마을사람들은 옛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강 이장은 “최근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된 이유 역시 옛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최근 안성리가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된 것은 과거 향촌사회의 신분구조와 호구의 구성, 신분계층의 변동, 가족구성, 혼인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호적대장보다 더 정확한 자료로 평가되는 ‘호적중초(戶籍中草)’를 다량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성리가 보존해 온 이 호적중초는 1780년부터 1922년까지 단절기간이 없어서 그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안성리는 이런 중요한 마을기록자원들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마을회관 2층에 전시관을 마련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