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9월
서귀포시 서홍동
감귤과 함께한 100년
흙담소나무가 보호한 100년
▲ 서홍동 분토왓에서 내려다 본 서홍동.
더불어 산다는 것, 그처럼 따뜻하고 마음 든든한 말이 또 있을까. 물론 혼자가 아니라 둘 이상이 함께 모여 외롭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느낌이 드는 것은 서로 나누고 모자란 부분은 채워주며 상호보완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기에 더욱 포근한 말처럼 들린다. 더 나아가서는 개개인의 실수도 살짝 덮어줄 수 있다는 애교스러움까지도 곁들여져 더욱 힘이 나게 하는 말.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이런 것이다’를 알려면 서홍동을 들러 볼 필요가 있다.
고려조 충렬왕 26년인 1300년 제주도에 동.서도현을 설치할 때다. 당시 14개 현촌 가운데 하나였던 서홍동은 '홍노'(烘爐)라고 불렸다.
# 화로 형상을 닮았다는 서귀포에서 가장 오랜 마을
‘홍노’는 서홍동 일대의 지형이 움푹 패어 화로와 비슷하게 생겼다는데서 연유한 것으로, 지금의 동홍동도 함께 일컬어졌다.
각종 고문서와 자료 등을 참고하면 서홍동은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귀포시 지역에서는 예래동과 함께 가장 오랜 마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마을의 설촌은 조(趙)씨에 의해 이뤄졌다고 하나 그 후예들은 대부분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다. 이후 고려말과 조선초에 ‘동카름’엔 고(高)씨, ‘안카름’에 현(玄)씨와 변(邊)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조선 중엽에는 동홍리(東烘里) ‘굴왓’에 부(夫)씨가 들어와 정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감귤과의 연관이 매우 깊은 곳이다. 서귀포 지역에 신학문을 전파해 온 복자수도원에 제주 최초의 감귤나무가 심어져 있다.
# 100년 전통 온주감귤의 고향
우리나라 귤 재배는 서기 476년 백제 문주왕 2년에 제주에서 귤을 공물 헌상하였다는 고려역사의 기록과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을 통해 고증되고 있다. 온주 밀감은 복자수도원에 근무하던 프랑스 신부 엄탁가(Esmile J. Taqu)가 식물연구를 해 오던 중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임을 세계식물학계에 보고한 인정으로 들여오게 된다.
1911년 엄탁가는 제주자생 왕벚나무 몇 그루를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준 답례로 온주밀감 14그루를 받아 시험재배를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제주 온주밀감 재배의 시초다. 그러니 제주 감귤역사에서는 서홍동을 빼놓고 말을 할 수 없다.
특히 올해는 감귤재배 100주년을 맞아 서홍동은 또 다시 감귤역사의 시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 곳 서홍동이 더 각광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100여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기세등등한 소나무 군락이다.
#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다
▲ 서홍동의 상징인 흙담소나무. 수령90년 이상이 되는 이 소나무들은 어른이 두 팔을 벌려 안아도 손끝이 닿지 않는다.
더불어 산다는 의미를 몸소 보여주는 명물. 서홍동의 상징이면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고경천 진사의 뜻에 따라 심어진 흙담소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서홍동 308-1번지 일대에는 아름드리 해송 100여 그루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 서 있다. 어른 한 사람이 두 팔을 벌려 안아도 손 끝이 닿지 않는 이곳 100여 그루의 소나무 둘레는 2m가 족히 넘는다.
제주의 동서를, 혹은 남북을 관통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서홍동. 서귀포시내 중심지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허허벌판이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계절 푸르고 울창한 이 흙담소나무다.
남쪽이 허(虛)해서 외부의 침입이 잦았다고 생각한 선인들은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이 흙담소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아름드리 해송에는 또 다른 생명들이 힘차게 뿌리를 내려 살고 있다. 대부분 난 종류인데 새가 물어다 놓은 씨가 싹을 틔운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오래된 나무껍데기에 스스로 뿌리를 내린 것이라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설명이다.
# 100년 소나무, 또다른 생명 움틔우다
어떤 소나무는 고란초가 나무 기둥 절반을 덮을 정도로 깊게 뿌리를 내려 이제 ‘한 몸’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28년 전 이 흙담소나무에 반해 안덕면 화순에서 서홍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강모씨(59)는 “이 소나무 주변이 만남의 장소”라고 소개하면서 “소나무 옆 구멍가게 주변에서 여름이면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으면서 담소를 나눈다”고 말했다.
“소나무마다 다른 생명을 틔워내는 그 신비로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짠하고 감동스럽지 않느냐”며 상기된 얼굴로 설명하는 그는 “100년 가까이 된 나무가 이 마을과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강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나무에 제를 지내는 등 별도의 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소원해졌다”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서홍동의 자랑임을 잊지 않았다.
서홍동,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제주지역 어디서든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뜨거운 땡볕과 높은 기온으로 지칠대로 지쳐 나약해진 신심을 받아 줄 넉넉한 푸른 숲이 있다.
누구에게든 평등한 숲이다. 물질적으로 손에 무엇을 쥐어 줄 수는 없으되, 바람이 머물러 가듯 지친다리를 접고 말없이 편안히 쉬었다 갈 한 평의 쉼터 정도는 내 줄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숲’. 올 가을이면 꼭 한 번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한다.
▲ 두 가지가 합쳐져 이제는 하나로 자라는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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