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8월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300년 ‘염전역사’의 마을
척박한 섬이었지만 예부터 제주에서 임금님에게 진상했던 폼목은 그리 단출하지만은 않았다.
널리 알려진 감귤을 비롯해 말린 전복, 옥돔, 말고기 육포, 흑우 등 이 좁은 지역에서 여러 가지가 나왔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여기에 또 하나가 더해진다면 소금이다.
특히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에서 생산된 소금은 품질이 굵어 귀하기로 소문이 나서 육지 염전의 열 배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임금님에게까지 진상할 정도였다니 그 맛과 품질의우수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제주에서도 성산읍 시흥 등 여러 곳에서 소금이 제조됐는데 유난히 구엄리의 소금이 특별했던 이유는 선택받은 자연환경 때문인 듯 하다.
과거 화산 활동 때 해안 가까이에서 분출된 암반지대와 엄괴석(바위)의 정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구엄리는 엄장이(嚴莊伊)라고도 부른다. 이름의 한자를 풀이하면 '바위암(巖)과 장승할 장(莊)'이므로 이 지역에 그 장엄한 기상과 웅장한 기암괴석(바위)이 펼쳐져 형성된 마을의 지형을 알 만하다.
제주시 서쪽 16㎞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구엄리 해변은 절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마을 주민들의 목숨을 연명하는 수단이 바로 그곳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웃동네, 알동네, 모감동, 대흥동으로 이루어진 구엄리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오이농사가 대규모로 지어지고 있고, 그 외에 쪽파 등 밭농사도 많이 지어지고 있지만 이 마을의 볼거리는 바다다.
# 천혜 자연 머금은 ‘빛나는’ 천일염의 고장
▲ 주황색 시멘트로 정비해 놓은 부분에 바닷물을 부어 소금을 만들어낸다.
구엄리 해변에는 ‘소금빌레’라고 불리던 천혜의 ‘돌 염전’이 널려 있어 이 마을 주민들은 예부터 바닷물을 이용해 천일염을 만들고, 곡물과 물물교환을 하며 생활을 영위해왔다.
구엄리 포구 ‘철무지개’ 서쪽 쇠머리코지에서부터 중엄리와의 경계인 ‘웃여’까지 펼쳐진 소금밭은 제주지역 다른 해안에 비해 평평한 암반지대로 이뤄져 있다.
길이는 약 400m, 폭은 가장 넓은 곳이 50m이며 아무리 바람이 세고 파도가 쳐 올라도 이곳은 바닷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한다.
구엄리 사람들은 이 돌염전 위에 거북이 등처럼 흙으로 경계선을 만들고 바다에서 퍼올린 물의 소금기를 농축시켜 소금을 만들었다.
조선 명조(1559년)때부터 시작된 소금 만들기는 약 300여년 동안 삶의 근간을 이뤘지만 생업수단의 변화로 1945년 전후로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대규모로 생산되는 소금산업에 자연의 순리로 만들어가는 구엄리 소금은 제조 시간과 노력면에서나 양적으로나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터.
# ‘돌염전’, 해안절경과 관광자원으로 재탄생
그러나 지금 ‘소금빌레’의 역사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생업으로 소금을 만드는 일을 삼고 있지는 않지만 돌염전을 정비하고 포구 주변에 편의시설을 갖춰 자라나는 학생들과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돌염전’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젠 어촌체험마을로서 '소금마을' 구엄리의 명목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지글거리는 지열로, 서 있기만 해도 ‘주루룩’ 땀이 흘러내리는 8월이지만 구엄리 해안가에는 멋진 해안 절경과 더불어 돌염전의 흔적을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얼마 전부터는 고내에서 광령까지 이어지는 올레 16코스가 개장되면서 구엄리를 지나는 올레꾼들이 부쩍 늘었고, 그들이 인터넷 카페·블로그 등에 구엄리 해안절경과 돌염전에 대한 사진과 역사를 발 빠르게 퍼 나르면서 이제는 꽤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런 유명세를 타며 이곳 구엄리 해안은 추자도 해안일주길,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로 등과 더불어 올해 전문가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로 인정받았다.
# 자연순응 미덕을 배우다
돌염전 옆으로는 아기자기한 구엄포구가 자리잡고 있다.
작은 배 4~5척이 정박해 있는 이곳에는 여름 한치철을 맞아 출어준비를 하는 지역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작년 이맘때에는 한치를 꽤 많이 잡아서 용돈벌이가 짭짤했는데 하지만 요즘 한치가 잡히지 않아서 내심 걱정이 되네요. 어장형성이 잘 되게 하는 뾰족한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고 그냥 이렇게 준비하는 겁니다.”
포구에서 만난 주민은 건강한 구릿빛 얼굴에 흰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얼마만큼의 소금이 나올지 그건 하늘의 뜻이라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던 과거 선조들의 욕심없는 소박함을 구엄리 그 후예들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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