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3월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마을
‘통개장시’를 기억하시나요?
제주특별자치도 서남지역에 위치한 구억마을.
구억마을은 대정읍 소재지인 모슬포에서 중산간으로 6Km, 제주공항에서 평화로로 30분거리, 서귀포시로부터는 서쪽 35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구억리는 분재예술원, 오 설록, 소인국테마파크 등 서부관광지를 둘러싸고 있어 관광객들이 한 번씩을 거쳐 가는 곳이다.
중산간 마을 특유의 지형으로 토심이 깊고 배수가 잘 되는 편이라 농산물 작황이 좋다.
봄을 맞은 지금 구억마을에는 넓은 대지에 마늘이 푸른 잎을 틔운 전경이 평화로워만 보인다.
# 4.3의 상처 치유하고 ‘새 둥지’ 튼 중산간 마을
그러나 구억리 역시 여느 제주마을과 같이 4.3의 아픔을 겪은 한(恨)을 간직한 곳이다.
1948년 4·3사건 발발로 중산간 부락 소개령에 따라 전주민이 인근 마을과 모슬포 등지로 임시 먹을 식량만 지고 마을을 내려와야 했다, 집들은 모두 불타 없어지고 가축과 가재도구는 모두 약탈당해 마을이 다시 복구될 때까지 피난지에서의 생활은 말로 형언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좌절은 끝없는 고통만 불러올 뿐. 주민들은 4·3사건이 어느 정도 진압되자 마을을 재건하려고 했지만 당시까지도 공비들의 위협이 남아있어 구석밭(당초마을) 남쪽 안성리에 성을 쌓고 살아오는 것이 바로 지금 구억리 주민들의 거주지다.
지금 구억리에는 163가구 401명이 올망졸망 모여 살고 있다.
제주도가 지정한 건강장수마을이기도 한 이곳에는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들이 장수하는 마을이다.
구억노인회(회장 조선진) 어르신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구억리 노인복지센터도 이미 할머니들이 장악(?)한 상태였다.
# 옹기 굽던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온 ‘근면함’
사실 구억리는 신평, 무릉리 등 한라산 서부의 자연마을과 함께 예로부터 가마가 대대적으로 운영되던 마을로 1960년대까지 전통옹기를 만드는 도요업이 유명했던 곳이다.
가마에서 분업은 철저히 이뤄져 남성들이 주로 그릇을 빚으면 여성들은 그릇들을 등짐지고 제주도 전역을 다니며 판매를 했는데 그렇게 그릇을 등짐지고 제주지역을 돌아다니던 여성들은 ‘통개장시’라고 불렀다.
그릇을 만드는 요업과 관련해 전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굴대장’, 그릇의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대장’, 소성을 하는 사람은‘불대장’, 땔감과 점토를 다루는 ‘건애꾼’으로 나뉘었는데 ‘건애꾼’으로 몇몇 여성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힘든 가마는 남성들이 거의 점유했다. 대신 판매는 여성들이 담당한 것이다.
“구억리는 남자 어른들보다는 여자들이 장수하는 마을”이라고 소개하는 강봉숙 할머니(82)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뜨거운 불가마 속에서 일을 했던 남자들이 여성들보다는 더 힘들어서 단명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강 할머니는 “할머니들이야 그저 부지런하고 끼니 거르지 않는 게 건강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빙긋이 웃어 보인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짓는 강 할머니는 “손이 놀 새가 어딨어. 날씨가 꾸물꾸물한 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여기 와 있다”며 “일이 많으면 새벽 5시에도 일어나고, 6시에도 일어나서 마늘 밭에 가서 일을 하지. 가만 누워있으면 몸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 “일이 곧 행복이자 건강비결”
옆에서 1점당 10원짜리 화투를 치던 할머니도 김 할머니를 거들었다.
“사람이 일을 해야 먹지, 일 안하고 먹을 수가 있나.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왜 있겠어? 일을 해야 돈도 들어오고, 맛난 음식도 사먹고, 맛난 음식 먹고 나면 기분도 좋고, 기분이 좋으니까 건강에도 좋은거지. 안그래?”
일이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할머니 어깨까지 절로 흥이 들어간 것이 이번 판에서는 이기신 모양이었다.
날이 좋은 평일에는 밭일을 하며 밭일을 하지 못하는 날씨에는 이웃 동무들과 도란도란 모여 점심도 직접 지어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건강한 심신에는 ‘질병’이 찾아 올 틈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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