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
불무의 고향’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중략...
산을 넘고 물을 넘어
꼬끼요이 울어오면
멀리새벨 터 온다
요놈이 돈 아까운 돈이여
아깝고도 원수일러라
두돈 오푼 버을젱 호면
두 어깨가 다 빠질로구나
...중략...
일호는 저 일꾼들아
꾸박꾸박 졸지 마랑
요놀래들엉 잠을 깨소
불로 익은 요 내 몸이
밤이 샌들 지칠손가
부지런히 붙어야 한다
얼시구 절시구 상사데야
어허영 상사데야
잘도 잘도 넘어간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뒷마을, 덕수리 땅을 밟는 순간 어디선가 구성진 ‘불무노래’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덕수리는 ‘불무의 고향’이다. 불무(불미)란 주물업으로서 농기구나 솥을 제조하는 일로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부터 시작됐다.
# ‘뚝딱뚝딱’ 불무의 고향
본토와의 교역이 불편했기 때문에 생활필수품이나 농기구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덕수리의 주물공예는 손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 쇠를 녹이거나 달구는 손풀무와 땅바닥에 골을 파서 중간에 굴대를 박고 그 위에 널빤지를 걸쳐놓아 한쪽에 세 사람씩 서서 널빤지를 널뛰기하듯 디뎌가며 바람을 일으키는 골풀무가 있다. 손풀무는 다시 똑딱불미와 토불미로 구분한다. 똑딱불미는 달군 쇠를 두들겨 주로 칼이나 호미 등을 만들고 토불미에서는 둑(용광로)에서 녹인 쇳물을 미리 만들어진 주물틀에 부어넣어 주로 솥, 볏, 쟁기 날 등을 만든다. 골풀무를 청탁불미(또는 디딤불미, 발판불미)라 하는데 그 규모와 만들어지는 제품은 토불미와 같지만 바람을 일으키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지금은 과학문명에 밀려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덕수리의 불무공예는 제주도의 유일상업이었다. 그러나 쇠붙이를 고열에 녹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선조들은 힘든 일을 위해 협동 정신을 발휘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곤 했다.
# 흥겨운 노동요, 지친 심신의 ‘안정제’
불무노래도 그 중 하나다. 누군가 선소리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후렴을 받으며 쏟아지는 잠을 참고, 일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노래로 달랬다. 고단한 노동으로 지치게만 보일 듯한 덕수리 마을이 가볍고 유쾌하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노동요에 있는 듯하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멜로디와 리듬을 직접 흥얼흥얼거리는 것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힘겨운 노동을 이기는 방법이자 마음을 즐겁게 하고, ‘건강한 마을’ 덕수리를 유지하는 비결이 된 셈이다.
덕수노인회 김성언 회장(77)은 “요즘은 없는 것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조부모님, 아버지, 어머니가 살던 때만 해도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고 살려면 덕수리에서 제작되는 농기구가 필수였다”면서 “농기구를 만드는 불무공예 기술은 제주에서도 유일하게 덕수리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때 돈도 많이 벌고 물질적으로 풍부한 마을이기도 했다”며 덕수리를 소개했다.
#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육신을 낳고...
김 회장은 말을 이어 “덕수리는 400여 년 전부터 서광, 동광리와 ‘자단리(自丹里)’라고 불려지기도 했는데 불무공예는 1800년대 송세만씨가 제주 일원을 답사한 결과 열을 가할수록 튼튼해지는 불무에 가장 적합한 찰흙이 덕수리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불무공예가 덕수리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김 회장은 고단한 몸과 지친 마음의 시름을 덜어 준 것이 ‘노동요’였다는 것도 덧붙였다.
김 회장과 자리를 함께 했던 덕수노인회 총무를 맡고 있는 문태우 할아버지(74)도 마을자랑을 돕는다. 문 할아버지는 “불무공예나 보리나 조 등 잡곡을 한꺼번에 많이 찧거나 빻을 때 필요한 연자매를 설치할 때 사람들이 함께 불렀던 ‘방앗돌 굴리는 노래’, 사시사철 세찬 바람에 초가지붕이 날리지 않게 띠를 덮을 때 부렀던 ‘집줄 놓는 노래’도 예전 형태 그대로 전해 내려온다”면서 “우리 마을 선조들은 힘든 일을 할 때마다 흥겨운 가락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함께 단결하고 협동해 오던 터라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이심전심’. 마음이 잘 통한다고 한다. 송씨, 김씨, 윤씨들의 대성이며 불무의 고장인 덕수리는 문 할아버지 말씀대로 ‘방앗돌 굴리는 노래’가 민속경연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등 지금도 민속이 잘 전승 보존되고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걸까. 덕수리 어르신들을 만나고 얘기를 듣노라면 노랫가락을 듣는 것 같아 어깨를 들썩거리고 싶어진다. 건강한 마음이 건강한 육신을 만든다는 말을 절로 느끼게 하는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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