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를 위로하며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소주는 어렵고, 다들 섞어 마시는 이른바 ‘소맥’을 즐기지만 나하고는 영 맞지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마시는 맥주가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내 자신에게 전하는 위안의 선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병원 5층 신관과 구관을 연결하는 복도에 사회사업파트가 있다. 상담 환자로부터 “시청? 동사무소에서 나오셨어요?”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하는 내가 근무하는 공간이다. 하기야 의사나 간호사분들도 내가 무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의료법에 의해 종합병원에 반드시 두게 되어있는 사회복지사이며 개인과 공공기관 또는 민간단체를 연결하여 의료비, 간병비, 퇴원계획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사회복지는 1958년 한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사회적 빈자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 업무와 결핵환자들을 도우면서 처음 시작되었고, 65년 동안 놀랄 만큼 확장과 발전을 거듭하였다. 1973년에는 의료법 시행규칙으로 종합병원에 사회복지사를 두도록 하였고, 최근 들어 사회 환경 변화와 복지정책의 확대로 의료현장에서 사회복지서비스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초창기 의료사회복지사의 주된 업무가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를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과도한 병원비로 경제적 어려움에 이르게 되는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 시행하는 여러 가지 복지정책과 제도를 의료현장에 접목하여 실질적인 복지 프로그램과 정보를 제공하고 자조모임과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운영하기도 한다.
사회복지는 사회 구성원의 보다 나은 삶, 안정적이고 행복한 생활영위를 위해 이루어지는 전반의 활동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 단순한 개념 정의는 많이 공허하다. 아마도 따뜻한 마음과 배려라는 것이 녹아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상담 환자와 관계기관을 연결하여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은 녹록치 않다.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로 내 맘 같지가 않다. 서로 같은 마음이고 신뢰가 있다면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항상 느끼는 부족함에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환자, 행정 지원의 한계가 이해는 되지만 유연성이 너무나 부족해 이는 관계기관의 업무처리 방식들. 그들 사이에서 혼자 섬이 되어버린 나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정신없는 하루를 최선으로 보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을 언제나 하게 된다. 나에게 위안의 맥주가 필요한 시간이다.
하루는 꿈을 꾸었다. 우리병원 모든 이들이 기부금을 내어 원내 기부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이다. 월급 우수리, One-Day 기부, 익명의 전달금 ……. 도움 받는 환자들의 환한 웃음에 방방 뛰며 좋아라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큰상도 받았다. 민간종합병원 기부프로그램 운영 공로란다. 이 꿈을 꾼 날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날 나는 위안의 맥주를 분명히 많이 마셨을 것이다.
환경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람이 변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기대와 달리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해버리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을 정말로 사랑한다. 부족한 도움에도 감사함을 담아 인사해주시는 분, 전달해 드린 정보로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밝은 미소로 나를 쳐다봐 주시는 분. 이 분들이 내가 내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힘이다.
모 가수가 정호승 님의 시로 만든 노래가 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숨어 있는 뜻은 잘 모르겠지만,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에둘러 노래한 것으로 나는 해석해 본다. 그러나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내가 나의 인생에게 위안의 맥주를 선물하고, 꿈에서는 인생으로부터 황홀한 칭찬을 받기 때문이다.
김미소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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