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Red-crowned Crane : Grus japonensis)
흔히 두루미를 ‘학(鶴)’이라 부른다. 백로나 왜가리, 황새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들은 엄연한 다른 종으로 ‘황새목’에 속하며 두루미는 따로 ‘두루미목’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구상에는 총 15종의 두루미들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7종이 찾아온다.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가장 많이 찾아오고 시베리아 흰 두루미, 검은 목 두루미, 캐나다 두루미, 쇠재 두루미도 간혹 다른 두루미들 무리에 섞여 한두 마리가 드물게 찾아온다.
두루미는 15종 가운데 9종이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개체수가 3,000여 마리만이 남아 있으며 그중 절반정도가 우리나라 철원평야 인근의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겨울을 지낸다. ‘천연기념물 제202호’,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되어 보호가 필요한 종이다.
십장쟁의 하나로 옛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두루미는 장수(長壽)의 새로 알려져 있고, 정수리에 붉은 관을 쓴 단아한 선비 같은 모습을 했다하여 단정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야생의 두루미의 수명은 30~40년 정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정절, 부부애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비무장지대인 철원평야 인근에서 겨울철에 서식하며 휴전선을 넘어 남과 북을 오가기 때문에 ‘평화’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두루미는 ‘뚜룩, 뚜룩, 뚜뚜룩!’ 울음소리를 내서 순우리말인 ‘두루미’라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크기는 140㎝, 날개를 펼친 몸 너비는 250㎝, 무게는 7~8㎏인 대형 겨울 철새다. 러시아 아무르·우수리 지방, 만주 동북부 및 일본 홋카이도 동부(구시로) 지역에서 4~5월에 번식하고 겨울철(10월 하순부터)에는 한반도의 한탄강, 임진강(DMZ 지역), 강화도 남부, 김포평야 그리고 중국의 동부지역(양쯔강 하류)으로 2,000여㎞의 거리를 이동해 월동한다.
두루미들의 주 월동지인 강원도 철원은 내륙산간 지방이면서도 쌀농사가 가능한곳이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가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철원 평야는 필자로 하여금 감탄하기에 충분한 곳 이었다. 수많은 새들이 가을걷이가 끝난 이곳에서 땅에 떨어진 낙곡을 먹으면서 겨울을 난다. 저녁이 되면 한탄강 여울에서 잠을 청해서 휴식을 취한다. 영하 15도를 쉽게 내려가는 철원과 경기도 연천지역은 한파경보가 수시로 내려지는 추위가 극성을 부리는 곳이다. 그렇지만 철원평야는 겨울에도 땅속에서 따뜻한 물이 흐르고, 한탄강 여울은 물살이 빨라 한겨울에도 얼지 않아 두루미를 비롯한 많은 새들이 물을 마시며 먹이를 찾을 수 있는 천국과 같은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두루미들이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아졌다. 철원을 제외한 한강 하구와 파주, 김포 등 서울 인근 주요 월동지에 10여 년 전부터 개발 광풍이 불기 시작하여 논밭을 갈아엎어 건물들이 들어서고 사람이 몰려들어 두루미들은 월동지에서 쫓겨나 철원으로 모이기 시작 했다. 그러나 철원마저 마냥 여의치는 않다. 국제 두루미재단 창시자인 조지 아치볼드 박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루미 서식지로 손꼽은 임진강 망제여울마저 교란이 심각한 상황이다. 망제여울은 연천 지역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들이 잠자리로 가장 많이 찾는 곳인데, 약 150m 떨어진 도로변 언덕에는 탐조용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어 두루미를 촬영 하려는 사진가들로 주변이 종일 북적대고,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통화음과 카메라 셔터 소리 등에 두루미들이 움찔대거나 고개를 들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탐조용 하우스가 서식지와 너무 가까워 교란이 심각한 상태이므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최근까지 개선되고 있지 않다.
다행인 점은 세계 최고의 두루미 월동지인 철원지역 농민들이 합심하여 귀한 겨울 손님인 두루미를 비롯한 겨울 철새의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볏짚 존치사업’을 이어오고 있어 철원지역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는 1,000여 마리로 크게 늘었다. 볏짚 존치사업은 벼 수확 후 볏짚을 수거하지 않고 10~15㎝가량 잘라 논바닥에 골고루 뿌려 두루미에게 먹이와 쉴 공간을 제공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외지 사람들의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두루미를 비롯한 새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어 반가워 할 소식만은 아니다.
‘뚜룩, 뚜룩, 뚜뚜룩!’ 두루미들이 애처롭게 울고 있다.
해가 갈수록 전국 어디서나 개발이라는 이유로 두루미를 비롯해 야생의 동식물들이 살아갈 곳을 잃어가고 있다. 두루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낙곡과 사람들의 간섭이 없는 약간의 공간이다. 쉬고 먹을 작은 공간만 있으면 두루미는 계속 해서 찾아 올 것이다.
‘뚜룩, 뚜룩, 뚜뚜룩!’ 두루미들이 울고 있다. 봄이면 잠시 떠났다가 가을이면 다시 오고 싶다고. 그리고 계속해서 찾아오고 싶다고!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의 간섭이 많아지고 있어 두루미가 다시 찾아올는지…… !
‘뚜룩, 뚜룩, 뚜뚜룩!’ 이 울음소리가 마지막으로 듣게 되는 두루미의 목소리가 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지남준 조류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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