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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도 씻기지 않는 영원한 블루

제주한라병원 2016. 3. 28. 10:25

바람에도 씻기지 않는 영원한 블루
프랑스 생말로


바람소리 파도소리 새소리 이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생말로.


프랑스 파리에서 서북쪽으로 달려가면 영원히 푸른 하늘만큼이나 파란 바다가 펼쳐지는 생말로에 도착한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도시지만 생말로는 여름철이면 프랑스인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휴양지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호 프랑수아 르네드 샤토브리앙의 고향이다. 또한 생말로는 1976년 루이지 코지 감독이 만든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배경이 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주목받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시 이름은 영국 웨일스 출신인 수도사 세인트 맥로(Saint Maclow)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맥로 수도사는 얼음이 떠다니는 몹시 추운 지방을 7년 동안 여행하다가 에메랄드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연출하는 생말로에 반해 자신의 모든 삶을 이곳에 바쳤다고 한다.


대서양 해변 한 귀퉁이에 있는 생말로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직사각형 모양을 한 철옹성 같은 도시이다. 높다란 방벽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성벽 안에는 회색빛 지붕들이 촘촘하게 줄지어 들어서 있다. 성곽을 따라 형성된 마을은 좁은 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고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다. 튼튼한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중심에는 기사의 창끝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첨탑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다. 기차역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는 성 입구를 제외하면 육로로는 어느 방면에서도 침입할 수 없는 완벽한 요새이다. 과거 바이킹과 해적들이 아름다운 생말로를 자주 침입해 사람들을 마구 해치고 재물을 약탈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방벽을 높게 쌓았고 해변을 향해 여러 개의 대포를 설치하여 마을을 지키려고 애썼다. 높다란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앞에는 수많은 요트와 선박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고, 푸른 바다 위에는 하얀 돛을 달고 바람에 몸을 맡긴 범선들이 물결을 따라 춤을 추고 있다. 잦은 전쟁과 침략으로 건물들은 잿빛과 짙은 갈색 옷을 입고 있지만,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멋진 배들과 풋풋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두운 역사의 상처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여행자들에게 던지는 작은 손짓과 가벼운 미소는 생말로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바닷물이 빠질 때만 갈 수 있는 샤토 브리앙의 묘. 


고색창연한 중세의 빛을 간직한 생말로 마을 전경. 


보트와 요트가 정박해 있는 생말로의 밤풍경.


부두 한쪽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배들이 오가고, 한쪽에서는 요트와 선박을 타고 대서양이 안겨 준 바다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마을 입구 쪽으로 다가서면 닻을 내린 배들이 유달리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프랑스 인근 해변에 있는 모든 배를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처럼 장사진을 이룬 이곳의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특히 하얀 배 기둥 사이로 조금씩 걸려 있는 마을 방벽과 높은 첨탑이 빚어내는 그림은 한 장의 엽서를 방불케 한다. 왜 이렇게 많은 배가 도시를 감싸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 사실 생말로는 샤토브리앙 외에도 캐나다를 발견한 자크 카르티에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4년부터 4년마다 캐나다 퀘벡 성 로렌스에서 출발해 생말로까지 오는 ‘대서양 횡단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 기간 동안 생말로는 그야말로 형형색색 요트들의 물결과 황금 모래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호텔 방에서 바라다 본 생말로의 아침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샤토브리앙 스테이크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면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성곽 위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옮겨진다. 성곽을 따라 시작되는 생말로 여행은 시간의 조율이 필요하다. 맛있는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불의 세기를 조절하듯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선 밀물 시간과 썰물 시간을 아는 것이 필수이다. 물론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면 상관없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향해 머리를 돌리면 눈앞에 두 개의 작은 섬이 보인다. 하나는 내셔널 포트라는 작은 섬과 다른 하나는 샤토브리앙의 묘가 있는 그랑 베라는 섬이다. 이 두 곳은 밀물이 되면 갈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 먼저 다녀온 뒤 마을의 기념관과 볼거리들을 차례로 여행하는 것이 좋다.


특히 그랑 베에 가면 작은 회색 돌로 만든 십자가가 세워진 샤토브리앙의 묘를 볼 수 있다. 묘는 대서양에서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하염없이 지나가는 세월에 씻겨 반질반질 윤이 난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며 바다가 전해 주는 맑고 깊은 샤토브리앙의 자취를 더듬고 있노라면 태양은 어느새 수평선과 맞닿아 세상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말없이 시선이 닿는 곳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생말로가 주는 모든 감성을 어떤 필터로도 여과하지 않고 눈과 마음속에 넣다 보면 눈은 시리고 마음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다. 어둑어둑해진 빛의 틈새로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그리고 그 외엔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고 새겨진 샤토브리앙 묘비의 몇 글자가 영혼을 울린다.



시민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교회.


샤토브리앙 묘에서 느낀 감성에 맞설 수 있는 곳이라면 마을 끝에 조용히 서 있는 등대이다. 마을에서 500m 정도 벗어나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등대는 엷은 불빛을 내뿜으며 이방인의 발길을 유혹한다. 이곳에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 입맞춤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낚시를 즐기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일광욕하는 사람 등 해변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생말로의 마을 풍경은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항상 등대 주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각형의 한 모서리를 중심으로 양쪽 변을 보는 것처럼 쫙 펼쳐진 마을은 회색빛의 도시와 푸른 바다, 그리고 파란 하늘이 낭만시의 한 시구를 장식한다. 거대하고 웅장하게 솟아오른 생말로를 보는 동안 정말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눈을 지그시 감으면 생말로의 이미지들이 하나둘씩 스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