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폴란드 토룬
▲ 토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심에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를 과학자로 생각하지만, 그는 평생 동안 로마 교황청의 사제로 살다간 인물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폴란드 중서부의 조용한 도시 토룬(Torun)이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토룬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지명이지만, 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풍의 아름다운 도시이다. 다락방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책들처럼 토룬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토룬의 구시가지 광장은 장엄한 고딕 양식의 건물에서부터 화려한 르네상스식 건물까지 시대를 달리한 다양한 건축물이 많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도시의 외형적인 이미지에서부터 토룬은 오래 묵은 커피나 친구 같은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바르샤바에서 북서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토룬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프로이센령에 속한 도시였다. 비수아 강 유역에 자리한 토룬은 발트 해의 요정이라 불리는 그단스크에서 생산되는 호박을 바르샤바나 크라쿠프로 수송하는 중계지로서 번영을 누린 상업도시이다. 토룬이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로 독일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튜튼 기사단에 의해 계획적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14세기부터는 독일인이 결성한 한자동맹에 가입해 독자적인 상선을 가지고 네덜란드와 직접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후 토룬은 15세기 중엽 튜튼 기사단의 지배체제가 서서히 붕괴되자 폴란드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폴란드 왕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토룬은 300여 년 동안 특혜를 누리며 상업 자유도시로 성장했지만, 1793년 프로이센왕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 폴란드에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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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은 북쪽 지역에 있기 때문에 5월이 돼서야 비로소 봄이 온다. 이런 이유로 꽃을 좋아하는 시민들. | 고색창연한 건물로 둘러싸인 토론의 구시가지 광장. | 구시청사 꼭대기에서 바라다본 시가지 풍경 |
독일에 오랫동안 지배를 받은 탓인지 도시 전체의 분위기는 폴란드의 여느 도시와는 달리 프로이센왕국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발트 해의 그단스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색다른 모습을 지닌 토룬은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라는 것과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여행자들이 한번쯤 방문하고 싶은 마을이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까지는 1.5㎞가량 떨어져 있어 도보로 마을까지 가기에는 다소 힘이 든다. 그렇지만 시간이 허락되어 도보로 구시가지까지 가게 되면 비수아 강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성곽이 여행자의 고생을 말끔히 씻어준다. 구시가지 여행의 중심은 단연 구시청사가 있는 리넥이라 불리는 중앙광장에서 시작된다. 광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리넥을 중심으로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구시청사, 짙은 밤색의 대법원, 마을 전체를 지켜주는 성곽과 성문, 화려한 외부 장식이 돋보이는 바로크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등이 이방인의 발길을 유혹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광장 주변으로 노천카페의 아름다운 파라솔이 도시의 활기를 더해준다. 무엇보다 광장 중심에 서 있는 둥근 태양계를 든 코페르니쿠스 동상은 만남의 장소이자 도시의 이정표가 된다. 제아무리 토룬이 중세풍의 유산을 많이 갖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해도 여행자의 발길은 제일 먼저 폴란드의 자랑거리이자 이 도시를 대표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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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체르민스카 거리 | 바이올린 동상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일 년 내내 울려 퍼지는 토룬의 구시가지. |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지 골목길을 걷다가 만나는 노천카페들. 한가롭게 커피 한 잔으로 삶의 여유를 느껴본다. |
◀ 태양계를 상징하는 천체기구를 들고 있는 코페르니쿠스의 동상
동상에서 1~2분 거리에 위치한 코페르니쿠스의 생가는 그의 업적에 비해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짙은 밤색의 3층 집에서 그는 1472년 2월 19일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토룬에서 명망 있는 부호였고 그의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은 귀족의 딸이었다. 코페르니쿠스 생가의 내부 2층과 3층에는 그가 천체를 관측할 때 사용했던 기구와 연구 노트, 초상화 몇 점이 전시되어 있다. 강인한 눈빛을 풍기는 젊은 시절의 초상화에는 그의 학문적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중년의 초상화에는 성직자다운 우직하고 평화로운 눈빛이 담겨 있다. 생가 내부에 장식된 가구나 관측기구도 재미있는 볼거리 중에 하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의자에 앉아 평온하게 죽음을 맞는 순간, 자신이 평생 연구해 발표한 ‘천구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 Orbium)’ 견본 책을 보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문학자였지만, 동시에 성직자로서 생전에 교황청과 반대되는 이론을 펼칠 수 없었던 코페르니쿠스. 학자와 성직자로서 그가 겪어야 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고서도 기뻐할 수 없었던 그의 표정이 담겨있는 그림을 한참 바라보면 그의 고뇌와 갈등을 읽을 수 있다. 잔잔한 감동의 기운이 맴도는 그의 생가는 생각보다 훨씬 큰 느낌을 안겨 준다. 코페르니쿠스의 열정을 가슴에 담고 구시가지 광장으로 나오면 비로소 토룬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13세기 독일 기사단이었던 튜튼 기사단이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과 성곽, 중세시대 때 지어진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그리고 도시의 정신적 지주가 된 성 요하네 교회 등 토룬의 찬란한 역사의 현장들이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리넥광장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토룬 시민의 영원한 휴식처이자 볼거리가 집중된 곳이다. 광장의 코페르니쿠스 동상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법원 건물, 구시청사, 우체국 등이 있고, 스제로카 거리와 체르민스카 거리를 따라 중세의 건축물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특히 높이 40m의 구시청사 꼭대기에 오르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구시가지와 비수아 강 등 토룬이 숨기고 있는 다양한 볼거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일명 ‘고딕하우스의 거리’라고 불리는 체르민스카 거리는 파스텔톤의 건축물들이 토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발트 해의 그단스크에 비해 건축물의 생김새나 화려한 맛은 덜하지만 이곳은 중세 때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가치는 이루 형언할 수 없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1세도 1812년 12월 19일 토룬을 방문해 4일 동안 중세시대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고 한다. 물론 그 역시 코페르니쿠스의 생가를 방문했고 구시청사 옥상에 올라가 고풍스러운 중세의 토룬을 마음껏 감상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토룬의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폴란드의 작은 도시 토룬은 코페르니쿠스의 삶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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