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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젊은 시절 꿈과 희망이 담기다

제주한라병원 2016. 1. 27. 11:09

헤세의 젊은 시절 꿈과 희망이 담기다
스위스 바젤



말간 겨울바람도 잠시 쉬었다가 가는 라인 강


취리히 중앙역에서 온천의 도시 바덴을 지나 50분 정도 달려가면 스위스 제2의 도시 바젤에 도착한다.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바젤은 우리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자, 그가 22세 때 이곳의 한 서점에서 점원으로 근무하며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을 키워낸 곳이다. 그래서 바젤은 헤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도시이다.


프랑스와 독일을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젤은 헤세의 이름 때문인지 유난히 빛나고 아름답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라인 강과 중세의 멋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바젤의 모습에서 잠시 동안 헤르만 헤세의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도시 전체의 이미지가 종교개혁의 영향 탓인지 사람들의 생활은 근검절약이 몸에 밴 듯 차분하고 조용해 사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헤세도 소박한 바젤을 좋아해 이른 아침이면 라인 강변에서 산책을 즐기고, 햇살이 따뜻한 벤치에 앉아 사색과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발 277m에 위치한 바젤은 예로부터 스위스의 학문과 금융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460년에 창립된 바젤대학은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바젤 미술관은 유럽 최초의 미술관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즐비한 바젤 시내 풍경.

라인 강변에서 따스한 겨울 햇살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헤르만 헤세의 사진과 그가 머물렀던 바젤 당시의 모습. 


왠지 금융과 상업의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바젤의 역사가 짧을 것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하지만 바젤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기원전 1세기 후반 현재 바젤 교회가 있던 자리에 켈트족들이 점령하여 인류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 후 로마 식민도시로 전락하면서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바젤도 굴곡진 삶이 시작되었다. 바젤의 어원이 시작된 ‘왕의 성채’라는 뜻을 가진 ‘바질리카’라는 단어는 서기 374년 와서야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후, ‘주교의 바다’라는 표현과 함께 바젤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 10세기에 들어서 바젤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소유가 되었다가 1025년에는 독일제국 일부로 편입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랜 갈등이 끝난 1301년, 바젤은 스위스 연맹에 가맹했고 1529년에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도시는 점차 안정화 되면서 스위스 최대의 도시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중앙역에서 도보로 10여 분 정도 걸어가야 비로소 구시가지에 도착한다. 바젤은 라인 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역, 오른쪽은 공업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시가지 중심에는 500년이 넘은 바젤대학과 붉은 사암으로 건설된 시청사, 그리고 시민들의 충실한 삶의 믿음이 간직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붉은빛의 시청사와 그 앞에 펼쳐진 재래시장이다. 옛 시청사는 1356년 큰 지진으로 크게 훼손되어 다시 지어졌다가 동맹연방으로 들어선 후 1504년에서 1514년에 걸쳐 새로 건축되었다. 바젤 대학보다는 조금 늦게 건축된 시청사이지만 현재까지 시정부의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시청사 앞에는 바젤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어 관광객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바젤에서 재래시장이 시작된 것은 1260년부터 시작되었고, 시청사가 생기면서 14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청 광장에서 과일, 채소, 달걀, 치즈, 소시지, 꽃, 닭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팔기 시작했다. 원래 시장에서는 남자 상인밖에 장사를 하지 못하였으나 1903년부터 여자들도 이곳에서 물건을 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시장이 서민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소라면 좀 더 이들의 예술적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는 바젤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다. 현재 바젤 미술관에는 남태평양의 대자연과 타히티의 아름다운 여인을 소재로 그린 폴 고갱의 작품이 몇 점 전시돼 있다. 어떻게 이 작품이 바젤 미술관까지 흘러 왔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바젤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술관 방문은 뜻 깊은 추억이 될 것이다. 한 도시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면 그 도시와 시민들의 문화적 의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662년에 세워진 유럽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바젤 미술관은 아머바흐 가문이 3대에 걸쳐 모아온 5000여 점의 미술품을 바젤시와 바젤대학에서 사들여 이듬해 미술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미술관은 현대미술과 고전미술을 전시하는 두 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고 홀바인, 뵈클린, 앙커, 클레 등의 스위스 화가들의 작품과 피카소, 브라크, 레제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독일의 표현주의 작품들, 미국 화가들의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주요 소장 작품으로는 고갱의 ‘언제 결혼할거니’, 고흐의 ‘피아노를 치는 가셰양’, 로댕의 ‘칼레의 시민’, 샤갈의 ‘검정장갑을 낀 나의 약혼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