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
제주장수 마을의 원조 ‘애월읍 곽지리’
어느덧 2007년의 끝자락, 겨울의 문턱 앞까지 와버린 11월의 어느 날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를 찾았다. 해안마을이어서 그런지 두꺼운 스웨터 구멍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들어와 몸을 더욱 움추리게 했다. 곽지리는 제주시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약 24㎞ 떨어져 있다. 곽지리 동쪽에는 애월리와 동남쪽에 납읍리가 있고 서쪽에는 금성리, 남쪽으로는 봉성.어음리가 경계하고 있다. 또 애월읍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서 여름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곽지리에는 400여가구에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80세 이상, 90세 이상 장수노인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 곽지리 고향의 물맛 ‘과물’
장수마을이나 건강마을을 찾아다니다 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물’이다. 곽지리 역시 예로부터 물이 좋기로 유명했다. 곽지해수욕장 입구에는 있는 우물, 석경감수(石鏡甘水)라는 일명 ‘과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약 2000년 전 곽지리에 살던 사람들은 이 우물을 식수로 이용했다고 한다. 납읍, 어도, 어음, 원동 등 멀리 화전마을에서도 ‘과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하곤 했다. 그러다가 상수도가 개설되면서 ‘과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1960년대까지 ‘과물’을 먹었던 사람들은 그 물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지금도 가다오다 ‘과물’을 떠 마신다.
“제주도에서는 곽지리가 장수마을의 원조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최고령자가 106세였고 100세 이상을 살다가신 분들이 많아요. 지금도 90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많죠. 100세가 가까워지는 그 할머니들은 지금도 해산물을 캐다가 장에 내다팔기도 하고 정정하시거든요. 할아버지들은 거의 대부분 80세 이상이고, 모두 과물을 먹고 생활한 사람들이죠. 아마 지금 나이 60세 이상인 곽지 사람들은 모두 과물을 먹고 건강할 겁니다. 저도 15살까지 과물을 길어다 먹었으니까요.”
곽지해수욕장 입구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9)는 ‘과물’이 곽지마을 사람들의 건강비결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우리 어머니도 밭 일 나가기 전 새벽이나 밭에서 돌아온 밤에는 꼭 ‘물허벅’에 물을 길어다 항아리를 채워두셨다”면서 “물이 많이 필요한 잔치 때는 달구지로 물을 길어 나르는 게 일이었다”며 회상하기도 했다. 곽지리를 찾은 때는 이미 만조가 된 때라 물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동네사람들이 전해주는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그 맛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적절한 소일거리, “아플 시간이 없어”
‘과물’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밭에서 김 메는 양은순 할머니(76)를 만났다. 춥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추우니까 옷을 더 껴입었지”대답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양 할머니는 “곽지지역 토양은 모래가 많아서 감귤재배에 적절하지 않아도 예전부터 시금치며 쪽파, 양파 농사를 지어서 자식들 키웠다”며 “일하는 게 몸에 배어서 그런지 오히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답답하다”며 조금만 추워지면 꼼짝을 않고 난로 옆에 붙어 섰던 필자를 부끄럽게 했다.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 없이 소일거리를 하는 이들 앞에 질병이 머무를 새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 “나이 90만 돼도 못할 게 없주”
이날 할머니 한 분을 더 만날 수 있었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살아가는 할머니는 올해 97세라고 했다. 이 할머니에 비해 전에 만났던 양 할머니는 아주 ‘청춘’이다. 혼자 살고 있다는 집은 너무 깨끗하고 정갈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양 옆에는 텃밭이 있었는데 이제 심은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어린배추들이 줄지어 있었다. 배추들 사이 잡초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손길 덕분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걸레질을 한 것처럼 방 또한 먼지 하나 없이 깨끗 그 자체였다. 집만 둘러봐도 할머니의 성품과 부지런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할머니를 찾아 간 이날도 할머니는 집 뒷 뜰에 심어두었던 콩을 수확하고 계셨다. 쉬엄쉬엄 할 수 있을 정도의 소일거리만 찾아서 한다는 할머니 표정이 밝았다. 귀가 약간 어두운 것 외에는 건강하다고 했다.
‘세월유수’라고 흐르는 세월에 할머니의 주름은 깊게 패였지만 말을 건네면 곧잘 답도 해주시며 걱정이 없으니 건강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100세를 목전에 둔 할머니는 그렇게 얘기한다. “내가 90살만 돼도 못 헐 게(못 할 게) 없주.” 정말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모자란 듯 하지만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겸허함이 건강의 최고 비결일 것이다.
'연재종료코너 > 제주의건강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무의 고향’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0) | 2011.05.31 |
---|---|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최고여! ‘신례1리’ (0) | 2011.05.31 |
신(神)이 내린 자연생태마을 ‘강정’ (0) | 2011.05.31 |
‘오래물’이 지켜준 젊은 마을 ‘도두동' (0) | 2011.05.31 |
바다의 건강함 빼닮은 '동복마을' (0) | 2011.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