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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 그리고 …

제주한라병원 2023. 5. 3. 16:18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 그리고 …

 

 

자청비 신화에 공감한 국제천문연맹(IAU)에서는 2017년 소행성 중 하나인 세레스(Ceres)에 ‘자청비’라는 우리말을 붙였다. 행성 이름에 한글이 들어간 것은 자청비가 처음이란다. 웹툰과 모바일 게임에도 등장할 정도로 국제적인 이름이 되고 있는 자청비 신화 속으로 빠져보자.

 

어느 날 빨래터에 갔던 자청비는 글 배우려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옥황상제 문곡성의 아들 문도령을 만난다. 첫 눈에 반한 자청비는 목말라 물 청하는 문도령에게 버들잎을 물에 띄운 바가지를 건넨다. 이렇게 시작된 문도령과 자청비의 신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서촌꽃밭을 무대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자청비는 부모의 소원대로 정수남이를 살리려 남장을 하고 환생꽃이 있다는 서촌꽃밭을 찾아 먼 길 떠난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환생꽃이 만발한 서천꽃밭은 하늘나라 정원인데, 얼어서 삼년, 더워서 삼년, 젖어서 삼년을 가다보면 물 한 방울 없는 마른 천이 나오고 그곳에 새파란 물이 넘칠 때 서천꽃밭에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간다고 한다. 자청비는 두레박을 이용해 서천꽃밭에 가게 된다.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하늘의 비와 햇볕과 바람이며, 비와 햇볕과 바람이 곧 생명꽃이고, 이 꽃들이 모인 공간이 바로 하늘정원이며 서천꽃밭이다.

 

부모가 지정한 약혼자와 결혼하려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문도령을 유혹해 첫날밤을 치른 자청비. 남장한 자기와 결혼한 서천꽃밭 꽃감관 막내딸이 안쓰러워 1년은 자신과, 1년은 막내딸과 결혼생활을 하자고 문도령에게 제안하는 자청비! 서천꽃밭에서 발가벗고 정수남의 혼을 불러내 부엉이를 잡은 일 등에서 자청비표 사랑의 모험을 엿볼 수 있다. 그중 압권은 문도령 부모가 며느리를 고르려 서수왕 따님과 자청비에게 문제를 내는데, 아홉 자 구덩이에 숯불을 피워 만든 칼선 다리 건너기이다. 자청비는 목숨 걸고 건넌 반면, 서수왕 따님은 불길과 작도가 무서워 아예 포기한다. 파혼당한 서수왕 따님이 걸어 잠근 방문을 백일 지나 열어보니 그녀는 새로 환생이 되어 있었다. 이 새가 날아들면 다정했던 부부사이에 금이 가는 법이 이로부터 생겼단다. 그래서 결혼식 날 신부가 상을 받으면 음식을 조금씩 떠 주어 상 밑에 좌정한 서수왕 따님을 달래야 한다.

 

시뻘건 칼날 작도 끝에 다다라 한발을 땅에 내딛는 순간 자청비의 발뒤꿈치에서는 붉은 피가 솟았다. 자청비는 속치마 자락으로 얼른 닦았다. 그 법으로 열다섯 살이 되면 처녀는 다달이 몸에 생리가 오는 법이 생긴다. 자청비가 건너는 불길에서는 곶자왈 우거진 밭에 화전 농사를 지었던 제주선인들의 삶과 목축문화를 재현한 들불축제가 연상된다.

 

자청비가 하늘나라의 난을 평정하고 옥황으로부터 받은 오곡 중에 메밀이 없음을 알고는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 메밀 씨를 받고 온다. 이로 인하여 메밀은 조, 보리, 콩 등의 수확이 끝난 후에 다시 파종하여 수확하는 법이 생겼다.

 

상세경 문도령은 사계절의 운행과 풍수재해 등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하늘을 상징하고, 중세경 자청비는 오곡과 열매를 생산하는 대지의 신비한 생명력을 상징하며, 하세경 정수남이는 상세경과 중세경을 섬기며 가축을 돌보고 번성시키는 목축신을 상징한다. 상세경 문도령의 씨, 중세경 자청비의 토지, 하세경 정수남이의 가축이 결합된 농업 질서(법)가 이렇게 하여 만들어졌다 한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사진은)제주시 이도2동에서 산지천 셋째와 넷째 다리 사이에 조성한 자청비 거리 풍경이다. 봄에 유채꽃이 피듯 가을에는 메밀꽃이 피어있는 자청비 거리의 풍경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