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산신제와 한라산의 유래 (下)
문 영 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예로부터 명산대천에는 신들이 깃들어 있다 하여 나라에서는 제사를 지냈다. 한라산 역시 탐라국시대부터 산신제를 지내왔다.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내려 오가는 과정에서 사람이 동사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아지자, 1470년(성종 원년) 이약동 목사는 ‘제주읍성 남문 밖 15리에 산천단을 마련’하여 산신제를 지내게 했다. 하지만 국가적인 대사가 있을 경우에는 한라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내곤 했다.
사료에 기록된 한라산 산신제 1601년 역모사건으로 어수선해진 백성들을 달래고자 선조 임금이 보낸 안무어사 김상헌이 백록담 북쪽에 제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냈고, 1680년 4월에도 백록담 북쪽 제단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제사의 주관자는 숙종 임금을 대신한 안핵겸순무어사 이증이다. 당시 이증은 제주목의 전임목사 윤창형과 정의현감 상인첨 등의 탐욕과 부정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이증 어사 일행은 백록담 분화구에서 장막을 치고 하룻밤을 묵는데, 차가운 바람과 추위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다. 지제교가 지은 제문에는 그동안 제대로 제사를 봉행하지 못했음을 사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날의 일을 이증은 남사일록(南槎日錄)에, 김성구 정의현감은 남천록(南遷錄)에 각각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2009년부터 제주시 아라동과 한라산신제봉행위원회 주최로 산천단에서 한라산신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2011년에는 산천단 일대가 한라산신제단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기념물(제66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라산 명칭의 유래와 기록들 한라산이라는 명칭은 산방굴사를 창건했다 전하는 혜일스님의 시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 말 제주에 와 여러 편의 시를 남겼기에 시승(詩僧)으로도 불리는 헤일스님은, ‘은광연세(恩光衍世) 김만덕 할망과 정조의 어승마 노정’과 함께 탐라 3기(奇)로 불리어 오는 인물이다. 한라산이란 이름은 혜일스님이 수도생활을 하던 조공천(朝貢川=외도천) 상류에 있는 무수천 주변에 위치한 서천암을 노래한 시(靈邱淵:영구연)에서 비롯된다.
한라산의 높이는 몇 길이던가 (漢拏高幾仞 : 한라고기인) 정상의 웅덩이는 신비로운 못 (絶頂瀦神淵 : 절정저신연) 물결이 넘쳐 북으로 흘러가니 (波出北流去 : 파출북유거) 저 아래 조공천을 이루었네 (下爲朝貢川 : 하위조공천) |
지금은 폐사된 서천암지에서는 분청사기백상감편 등의 도자기와 기와 조각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제주사찰과 불교문화(2006)에 의하면 헤일스님이 제주에서 활동한 시기를 1275년과 1308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전국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 “두무악 또는 원산이라 부르는 진산 한라산은 관에서 제를 행한다. 산이 활처럼 궁륭(穹窿)하여 높고 거대하며 그 꼭대기에 큰 연못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과 탐라지(1653년)에는 “한라라고 말하는 것은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기 때문이다.
두믜오름(頭無岳)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고, 두리메(圓山)라고 하니 봉우리가 높고 둥글기 때문이고, 혹은 가메오름(釜岳)이라고도 하니 산봉우리에 못이 있어 물을 저장하는 그릇과 비슷하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으로도 불리는 한라산은 특히 거룩한 산의 의미가 깃든 하늘산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한라산으로 표기되었다고도 전한다. 제주의 민요와 신화에서는 한라산을 한로산, 하로산, 하로, 할로영(주)산, 한락산 등으로도 부른다.
'병원매거진 > 질토레비가 들려주는 제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탐라순력도로 보는 경로잔치 (0) | 2023.11.28 |
---|---|
귤림서원·향현사·오현단 (1) | 2023.11.01 |
탐라국 해상교역의 증거인 용담동 제사유적 (0) | 2023.08.01 |
탐라순력도로 보는 제주 역사문화 엿보기 (0) | 2023.07.03 |
김광종 곤밥하르방을 아시나요? (1)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