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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림서원·향현사·오현단

제주한라병원 2023. 11. 1. 14:28

 

귤림서원·향현사·오현단

 

 

문 영 택 ()질토래비 이사장

 

 

제주의 서원 서원은 지금의 공사립 중등학교에, 향교는 국립 중등학교에, 서당은 초등학교에 해당된다. 제주도에서 사액서원으로 운영되던 귤림서원과 삼성서원은 187159일 흥선대원군에 의해 시행된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 항현사는 귤림서원의 사당중 하나로 제주를 빛낸 영곡 고득종과 명도암 김진용을 모신 사당이다. 향현사 역시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다. 오현단은 귤림서원 터에 1892년 조두석 5개를 5현의 위패처럼 안장하여 마련한 제단이다. 이후 제주 유생들이 고득종과 김진용의 위업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향현사유허비를 세워 제향(제사 의식을 말함)을 지냈고, 2007년 제주시에서 귤림서원 일부 건물과 함께 향현사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영곡 고득종 선생 향현사에 모신 영곡 고득종(1388-1460) 선생은,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을 지냈고, 제주가 왜구의 노략질과 가뭄으로 시달릴 때 쌀··잡곡 등 1만석의 양곡과 소금 1백석을 보내도록 힘써 제주백성을 구제하기도 했다. 또한 제주의 관리를 우대하는 제도인 경사자제직과(京司子弟職科)를 설치토록 요청했는데, 이 제도는 1894년까지 존속되었다. 1435년 관부의 큰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복원된 제주목 관아 홍화각(목사 집무처)의 편액은 홍화각기와 더불어 고득종의 친필로 제주도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원본은 삼성혈에 보관되어 있다. 특히 홍화각 현판은 국내에 현존하는 현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명도암 김진용 선생 또 한 분의 향현사 현인인 김진용(1605-1663) 선생은 구좌읍 한동리에서 태어나 처가인 봉개리 명도암으로 옮겨 살았다. 제주에 유배 온 간옹 이익(헌마공신 김만일 사위)의 제자인 김진용은, 제주에서 훈학에 전념하기 위해 진사시에 합격하여 천거된 숙녕전 참봉 직을 사양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낙향한 김진용이 당시 제주목사 이괴에게 현재의 오현단(고득종의 집터)에 장수당(향교의 명륜당에 해당) 건립을 제의하니, 제주에도 드디어 서원(귤림서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이괴 목사가 김진용으로 하여 귤림서원 원생들을 도맡아 가르치게 하니, 본도의 풍속과 교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수 있었다 한다. 이후 제주선인들은 그가 살았던 곳의 이름을 빌어 명도암 선생이라 칭했다.

 

제주 현인들의 뜻 이렇듯 두 분은 고 씨와 김 씨의 가문을 넘어 우리 모두가 흠모해야 할 제주의 현인들이다. 영주십경 중 귤림추색은 귤림서원 과원주변의 가을풍경이다. 지금은 개방의 시대이고 소통의 시대이다. 그 중심에 우리가 있다. 우리네 삶의 질은 숨은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역사문화와의 소통 정도에 달려 있음이다. 선인들의 삶을 알려는 마음을 후손에게 심어주는 일은, 설령 늦었다 하더라도 지금이 바로 적기이다. 그러함이 문화를 가꾸는 지혜이고, 위기의 황량한 밭을 기회의 밭으로 경작하라는 선인들의 외침이다.

 

귤림서원 터에서 해방후 개교한 오현중학교 모습
항현사를 찾아서
오현단에서 제사 지낸 후 유림과 학생
오현 중 충암과 우암 공덕비 뒤로 복원된 제주읍성 일부가 보인다.
오현단 조두석
오현단에 옮긴 향현사 유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