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길가는 그대의 물음
돌들의 고향, 지역마다 다른 돌담
석다(石多)의 고향
돌이 많음에 대한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담론이 다르다. 과거에는 제주가 석다(石多)의 변방 지역으로 척박(瘠薄)함의 대명사나 고작 말이나 키우는 황무지 목장으로 인식되었다면, 오늘날 제주의 석다(石多)는 문화경관으로써 제주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는 자연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돌은 자연에서 나와 사람의 손을 거쳐 구멍 송송한 돌담이 되곤 한다. 또한 제주를 덮고 있는 현무암은 상징적인 토산재(土産材)가 되고 있다.
제주의 돌은 두 가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섬 땅을 거칠게 만든 원인도 되고 거꾸로 섬의 모진 바람을 막아주는 매우 요긴한 결과도 있었다. 밭농사를 매우 어렵게 만들지만 목축산업의 경계구분과 방풍(防風)을 위한 역할에서는 더없이 이로운 물질이기도 하다. 한갓 하찮다고 생각했던 돌덩이라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제대로 찾게 된다면 매우 유용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아무리 귀한 자원이라도 그저 쓸모없이 구르는 파치(破治)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러기에 돌을 모두 나쁘다고 하는 것도 맞지 않고, 모두 좋기만 하다고 말하더라도 꼭 들어맞진 않는다. 천차만별의 보통사람들도 저마다 제 눈의 안경으로 상대방의 가치를 알아본다.
물질의 속성은 남아도 형태는 변한다.
사람들은 돌이라면 그저 딱딱하게 죽은 무기물(inorganic matter)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과 같은 고체(solid)도 과학적인 개념의 ‘계(系,lineage)’로 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자들의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 물론 기체 상태에서 분자들은 활발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체 상태에서는 분자들이 매우 천천히 느리게 움직일 뿐이다.
운동하는 것은 살아있다. 하기야 인간은 수십억 년의 지질 연대에 비하면, 기껏해야 100년 수명을 채우기도 어려운데 더디고 더딘 암석의 변화 과정을 맨눈으로 관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돌이라는 고체 내부의 분자 운동이든, 표면에 미치는 외부의 풍화작용으로든 돌의 형태들은 하루하루가 천천히 변하면서 조금씩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자신이 태어나던 해에 보았던 돌담이 노년이 돼서도 그대로 같은 돌담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그때와 같은 돌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일상에 쫓겨서 그걸 알아차릴 틈이 없었다.
가령 작은 돌담의 변화도 모르고 살던 우리가 어느 날 내 주변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 보이게 되면, 그때서야 화들짝 놀라는 자신의 뒤늦은 자각(自覺)을 일러 우리는 미국의 지리학자 칼 사우어의 개념으로, ‘풍경의 기억 상실‘이라고 부른다.
돌담, 대표적인 토산재(土産材)
송당, 김녕, 하도, 한림, 비양도, 고산, 대정, 가파도, 서귀포, 성산포, 우도 한라산, 오름 등 제주 전역의 돌담들은 형태와 색채, 축조방식이 차이가 난다. 이렇듯 돌담이 지역마다 다른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시간과 시대에 따라 분출된 마그마의 성분이 다르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돌담으로 쌓은 이후 각종 기후 변화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변형되는 것이 그 둘이며, 마을 돌챙이(石匠)들이 시대마다 각자의 개성대로 쌓았다는 것이 그 세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섬은 기후 조건이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곳의 세부적인 풍토적 조건에서 지질이나 지형, 풍화 조건에 따라 지역마다 차이가 난다. 같은 현무암이라도 해안에서 깎인 돌이냐, 내창(乾川)에서 구른 돌이냐, 아니면 드르팟(野)이나 곶(藪)에서 기후에 의해 풍화된 돌이냐에 따라 빛깔, 모양, 형태가 다르다. 섬 둘레가 400여 리 남짓하고 섬 자체가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이어서 시대마다 다른 분출로 인해 제주의 석질은 크게 현무암 내에서 파호이용암과 아아용암, 그리고 조면암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두를 합쳐 현무암 토산재(土産材)라고 부르고 있다. 토산(土産)이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환경에 대한 적응과 변화 그리고 돌담
인간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수많은 생태와 식생들이 기후 현상이나 지질이 같은 등질지역(Homogeneous Region)에서 무리를 지어 살며 서로 이웃을 이룬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곳에 동화되지 못한다면 그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만 하므로 어쩌면 인류의 문명사는 길고 긴 이주의 대장정(大長程)이라 일컬어지는 드라마틱한 삶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은 자연적 장애물에 대한 투쟁의 결과다.”라고 한 프랑스의 인문 지리학자 블라쉬의 말에는 자연·환경적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계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문명은 분명히 자연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룩한 도구와 편의시설의 역사인 셈이다.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서 유랑을 멈추게 된 것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삶의 요소들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의 돌담을 다시 관조하며 어제 같지 않은 무언가를 느껴본다. ‘풍경의 기억상실’을 환기(喚起) 해본다.
김유정 미술평론가
'병원매거진 > 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 '길 가는 그대의 물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레의 화가 김택화 (下)아름다움들을 손이 닿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1) | 2023.11.01 |
---|---|
아름다움들을 손이 닿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2) | 2023.09.25 |
한라산에서 남극노인성을 보면 오래 산다 (0) | 2023.08.01 |
백록담에서 흰사슴을 타고 있는 신선 (0) | 2023.07.03 |
내 생(生)에서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 (0)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