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이야기
물고기가 다니는 길, 궤기 올레
궤기는 고기의 제주어다. 육상 동물인 경우 돼지궤기, 쉐궤기(소고기), 궤기(말고기), 노리궤기(노루고기)라 칭하고, 바다 동물은 바릇(바다)궤기라 한다. 궤기줄은 낚시줄, 궤깃배는 어선이고 궤깃반은 잔치집이나 장례집의 돼지고기가 있는 쟁반의 음식을 말한다.
궤기올레 궤기올레는 말 그대로 물고기가 자주 다니는 올레를 말한다. 궤기올레는 도두봉 서북쪽 해안 ‘매부리 여’ 안쪽에 있는 여에 위치한다. 도두동 원로 잠녀들은 그곳이 ‘소(沼)’인데 수심 3~4미터 정도 바닥에 우묵하면서도 평평한 여가 있고, 용암이 육지로부터 바다 쪽으로 흐르면서 호로갱(壕路坑) 같이 우묵하게 패인 골이 길게 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 사이는 수심이 깊어 물고기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라 물고기들이 제집 골목처럼 왔다 갔다 하여 일명 ‘궤기올레’라고 부른다고 했다.
바다와 만나는 도두봉 밑의 해안가는 자연스럽게 파랑에 의한 파식 현상으로 해안이 깊어지고, 물결이 수평으로 오름에 부딪치면서 화산쇄설물이나 응회암에 크고 작은 해식와(Notch)가 생기면서 오름 허리를 파고 들어간다.
1945년생(79세) 한 원로잠녀는 예전에 그곳에 물고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많이 잡은 적이 있다고 하여 궤기올레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도 궤기올레는 소문난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궤기올레는 바위와 바위 사이가 어두우면서도 해초의 생장이 좋은 곳으로 물고기들이 쉽게 오가는 길목이 되며, 사람이 오가는 올레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궤기올레는 돌 많은 제주의 해저지형에는 무수히 많다. 우리가 관찰하지 못했을 뿐이다.
옛날의 바릇궤기들 제주의 고기잡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생존기술로 세대를 전승하며 이어져왔고 원담 고기잡이와 고망낚시 방법이 있다.
중종 때 형조판서를 지내다 기묘사화를 당해, 금산에서 이배된 제주 유배인 충암(冲庵) 김정(金淨,1486~1521)은 사약 받기 전 약 14개월 동안「제주풍토록」을 지었는데 16세기 초 제주의 습속에 대해 매우 인상 깊은 기록을 남겼다. 이 풍토록에는 바다에 대한 기록이 있어, “해채(海菜:해조류)가 있는데 미역, 우무, 청각 만 있다 했고, 해족(어패류)으로는 생복(활전복), 오징어, 옥돔, 갈치, 고등어 등이 있다.”고 했다.
1653년 간행된 역사 지리지「탐라지(耽羅志)」에는 “산과 바다가 험하여 그물을 쓸 수 없으니 고기는 낚고, 짐승은 쏘아 잡는다.”라 기록하며, “바다 생물로는 전복, 황합(모시조개), 옥두어(옥돔), 은구어(은어), 교어(상어), 도어(갈치), 고도어(고등어), 행어(멸치), 문어, 망어(망둥어)가 있다.”고 적혀있다.
1704년 이형상이 펴낸「남환박물(南宦博物)」에는 “바다 밑은 모두가 돌이다. 썰물과 밀물이 드나드는 갯가(개펄)가 없다. 어장(漁場)과 어망(魚網) 모두 보급된 바가 없다.” 고 하고, “낚시로 잡는 물고기는 상어, 고래, 문어, 망어, 멸치, 생어, 옥돔, 날치, 은어, 숭어, 오징어, 방어 등이 있고, 다른 바다 생물로는 전복, 해삼, 홍합, 빈주(진주), 대모(바다거북이), 조개, 앵무조개, 게, 백합, 굴, 해달(바다수달)이 있으며, 해조류로는 미역, 청각, 황각, 우미 등이 있다.”고 기록한다.
궤기올레도(圖) 물고기를 그린 민화로 어해도(魚蟹圖)가 있다. 길상(吉祥)의 의미로 본다면, 집안을 건사하기 위한 다산, 다복의 의미가 들어있다. 또 물고기가 자유롭게 한가히 헤엄치는 모습에서 자아 해방의 기운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육지 어해도(魚蟹圖)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출세를 상징하여 강에서 뛰어오르는 잉어, 붕어 등이 있고, 부부 금슬을 나타내는 희어도(戱魚圖)의 두 마리 숭어, 관리의 청렴을 상징하는 게(蟹) 등 다양한 상징 세계를 보여준다.
한편, 제주도 물고기 그림은 특별하다. 해저의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부르길, 일명 ‘궤기올레도’라고 했는데 수묵 담채로 그려진 바다 속 물고기 풍경이다.
바다 속에 8자 모양의 아아용암(Aa Lava)이 기반암으로 솟아나 두 개의 구멍이 만들어진다. 그 너머에는 누군가 망원경을 들여다보듯 돔, 숭어 등의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상하좌우로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다. 몸(모자반)은 수목처럼 일어서서 나풀거리고, 떨어진 모자반 조각이 떠돌고 있다.
이 그림은 고요한 해저 풍경의 평화로운 시간을 머금고 있다. 어쩌면 토착민들의 궤기올레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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