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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그려지는 숲속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3. 10. 29. 09:48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그려지는 숲속의 도시
프랑스 퐁텐블로

 

 

세계문화유산이자 프랑스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축물인 퐁텐블로.
 

파리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반경 100킬로미터 안에 있는 지역을 일 드 프랑스Ile de France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프랑스의 섬'을 뜻한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달리면 ‘아봉’이라는 역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녹색의 세계인 퐁텐블로 성과 숲이 나온다. 풍요롭고 비옥한 대지 위에 풍성한 태양 빛과 맑은 물을 먹고 자란 거목들이 작은 두 눈에 모두 담기 어려울 만큼 빽빽하게 자라 어깨들을 서로 맞대고 있다. 파리가 주는 번잡함이나 세련됨과는 조금 동떨어진 일 드 프랑스에는 베르사이유와 퐁텐블로라는 아름다운 두 개의 프랑스 왕궁이 있어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성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짙푸른 아름드리 나무로 가득 찬 퐁텐블로는 파리 주변에 있는 최고의 녹색 지대로 평가되면서 삼림욕이나 자연의 원시성을 만끽하려는 여행자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곳의 수려한 경치는 영화나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나 풍경화가 루소의 〈퐁텐블로의 숲〉을 떠올리면 퐁텐블로 성과 숲의 상쾌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 특히 아름다운 퐁텐블로 숲을 배경으로 그린 〈풀밭 위의 점심〉은 인상주의의 첫 실험이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숲 속의 도시 퐁텐블로의 울창한 숲은 동물들에게 좋은 서식처가 되어 12세기부터 왕들이 이곳에서 사냥을 즐겼다. 수렵지로 명성을 날리면서 왕들이 쉬어 갈 건물들이 하나 둘씩 들어섰다. 퐁텐블로 성의 철문을 지나면 회색 돌들이 성의 앞마당에 무수히 누워 있다. 이 마당은 1814년 4월 20일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 자신의 부하와 근위병들에게 이별을 고한 장소로 유명하다. 그래서 일명 ‘이별의 마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쌀가마니만 한 큰 돌들이 바닥을 꽉 메우고 있다. 16세기 프랑수아 1세가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퐁텐블로 성은 루이 16세 때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중세 카페 왕조 때부터 나폴레옹 3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역사를 응축시켜 놓은 퐁텐블로 성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해 화려한 맛은 떨어지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또한 루이 7세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치러졌고 19세기에 두 번째로 황제의 대관식이 치러졌을 만큼 퐁텐블로 성은 프랑스 왕실에 매우 뜻깊은 장소이다.


이 성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프랑수아 1세는 당시 프랑스보다 문화적으로 발전한 이탈리아를 침략한 후 르네상스 문화에 심취하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화가, 조각가 등을 프랑스로 초빙해 궁정을 세우고, 일 로소, 프리마티초, 아바테 등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게 내부를 장식하게 하는 등 프랑스에서 르네상스의 꽃이 찬란하게 피어나게 하였다. 이때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르네상스 3대 화가 중의 한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수와 1세의 초청을 받아 앙부아즈로 들어오게 되고, 퐁텐블로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가 프랑스에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해 이 도시를 중심으로 퐁텐블로파라는 새로운 문화사조가 형성되었다.

 

 

퐁텐블로 숲에서 불어 온 맑고 깨끗한 가을 바람이 머물다 가는 연못

가을의 전령사가 사뿐히 내려 앉은 폴텐블로 숲 길.

'풀밭 위의 점심'이 그려지는 퐁텐블로의 가을 풍경. 


 

초기 퐁텐블로파는 르네상스 말기의 마니에리스모(르네상스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이행하는 중간에 나타난 미술 양식)를 기조로 나체 여인의 관능미와 궁정풍의 우아미를 조화한 온화하고 장식적인 양식을 만들어 후일 바로크 양식의 선구가 된다. 그래서인지 성의 내부는 다양한 시대와 여러 왕들의 취향에 따라 독특하고 색다른 형식으로 꾸며져 있어 장식미의 극치를 달리는 것 같다. 성의 틀을 잡은 프랑수와 1세의 갤러리 방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정수를 보여 주듯 르네상스 작품들로 가득하고, 그의 아들 앙리 2세 또한 대를 이어 르네상스 작품들을 수집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나폴레옹의 아빠르뜨망은 18세기 실내 장식의 정수를 보여 주고, 또 다른 방은 중국풍의 장식장과 도자기, 이집트의 파라오 문양이 새겨진 탁자와 식탁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독특하고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다. 그런데 방을 한두 개 지나다 보면 그 방이 그 방처럼 느껴져 아무리 아름답고 예술적인 가구와 다양한 장식물들이 있다 해도 금방 싫증이 난다. 이럴 때면 역시 퐁텐블로가 자랑하는 녹색 지대로 누구나 할 것 없이 눈과 마음이 향한다.


성의 뒤쪽으로 돌아가면 인공 연못과 바르비종으로 이어지는 작은 숲길이 나온다. 커다란 평지 위에 오목하게 땅을 파고 물을 부어 만든 연못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연못 옆으로는 군데군데 깎아 놓은 삼각형 모양의 정원수와 오두막처럼 생긴 집들이 소박한 장식미를 추가하고 있다. 마네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 산책을 즐기는 사람, 한가로이 낮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아름다운 성을 배경으로 연방 셔터를 누르는 사람 등 퐁텐블로 성과 주변의 정원을 담기 위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탁 트인 평야 지대에 세워진 정원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포르투갈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 있는 정원처럼 잘 가꾸어지지는 않았지만 듬성듬성 솟아난 나무들과 지칠 줄 모르고 뿜어내는 분수의 몸짓은 장식미에 취한 눈을 단순하고 시원하게 해 준다. 특히 퐁텐블로에서 바르비종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산책로이다. 어른 한두 명이 뒤에 숨어도 될 만큼 크게 자란 나무들과 보슬비에 촉촉이 젖은 땅 그리고 하늘을 담고 있는 연못 등 자연의 장식미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숲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의 향기는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화가들의 손에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루소는 퐁텐블로와 바르비종으로 이어진 숲과 농촌을 배경으로 인간미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르비종파 화가인 밀레나 루소 등은 〈이삭 줍는 여인〉, 〈양치는 소녀〉, 〈만종〉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따뜻한 인간의 삶을 담아냈다. 파리를 여행하다가 다소 정신적으로 지치거나 편안한 산책을 원한다면 꼭 퐁텐블로 숲을 걸어 보자. 삼십 리 길도 채 안 되는 곳에 은은하고 한적하게 쉴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가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