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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의 메카

제주한라병원 2013. 8. 28. 09:41

14세기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의 메카
그리스 칼람바카

 

 

올곧은 그리스인들의 신앙심이 기암절벽마다 아로새겨진 마테오라의 수도원.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350km 떨어진 칼람바카(Kalambaka). 우리에게 아주 생소한 도시이지만 그리스 내에서는 수도사의 깊은 신앙심으로 유명한 도시다. 인구 천여 명 정도로 작은 마을은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지구별에서 아주 독특한 풍경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여러 개의 수도원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칼람바카를 찾을 정도로 언제나 이곳은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어쩌면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때문에 칼람바카의 유명세가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그리스 중세 때의 종교적 느낌과 이슬람 박해를 피해 오롯이 그리스 정교회의 가치와 신앙을 지키려는 또 다른 그리스인들의 신념을 만나게 된다.


우선 아테네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칼람바카에 내리면 높다란 바위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기기묘묘한 기암절벽이 하늘로 우뚝 솟아오른 모습과 그 위에 똬리를 튼 수도원의 모습을 보는 순간 새삼 인간의 한계와 그리스 정교회의 신앙심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바위 끝에 아스라하게 자리한 수도원. 이것이 바로 그리스 정교회의 신앙의 원천이자 그리스 사람들의 자존심이다.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와 달리 중세를 대표하는 칼람바카 수도원의 모습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리스 역사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니콜라스 수도원의 전경. 

동로마제국을 대표하던 동방 정교회는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으로 세력이 약해져 지금은 그리스 정교회로 자취만 남아 있다. 

영화 007의 배경이 되었던 루사노스 수도원의 전경. 

우리는 그리스 하면 아크로폴리스 중심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을 생각하며 아주 낭만적으로 그리스를 그려왔다. 하지만 그리스는 페르시아 제국, 로마제국, 오스만 튀르크 제국 등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오랫동안 식민 국가로 전락했다. ‘그리스’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재건한 것도 200여 년 밖에 안 될 정도로 그리스 역사는 가슴 아픈 상처가 나라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칼람바카 수도원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침략해 이슬람 종교를 그리스에 심으려고 했을 때 그리스 정교회를 지키려는 수도사들이 그리스 북동부에 위치한 칼람바카 바위산으로 숨어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리스 정교회의 신앙심이 바위마다 알알이 박힌 칼람바카에 수도원이 세워진 시기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엔 이곳에 24개의 수도원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지만 모진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현재는 6개의 수도원이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레이트 메테오론, 바를람, 루사노스, 스테파노스, 니콜라우스, 아기아 뜨리아다 등 6개의 수도원은 높이 솟아오른 기암절벽 맨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루사노스와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여자 수도사만이 있는 곳이다. 이처럼 칼람바카 수도원은 남녀 수도사들의 엄격한 규율과 각기 다른 수도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만 6개의 수도원의 공통점은 예전에 사람들이 함부로 근접할 수 없을 만큼 높다란 바위 위에 세워졌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밧줄이나 사다리만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돌계단이 만들어져 누구나 쉽게 수도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사들은 바위와 바위를 연결한 밧줄을 이용해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모든 음식도 밧줄에 매달린 바구니를 통해 내부로 들어갔다. 마치 철옹성을 연상시킬 만큼 이곳의 수도원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고립된 종교의 성지였던 셈이다.


그럼 칼람바카 바위 산군에 흩어져 있는 수도원들은 어떻게 여행할 수 있을까? 방법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온전히 발로 모든 수도원을 걷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빠르게 여행할 수 있는 택시 투어다. 나머지 하나는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그레이트 메테오론까지 간 다음 천천히 걸으며 하산 하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도원을 감상하는 것이다.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여행자들의 시간과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이 많고 체력적 부담이 없는 사람들은 칼람바카 수도원을 마치 수행자처럼 천천히 마을을 바위산을 구경하며 걷고 또 걷는다. 대략 올라가고 내려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릴 만큼 힘든 여정이다. 그렇지만 칼람바카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수도원의 신성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택시 투어는 편안하지만 제대로 수도원의 풍경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칼람바카 여행의 추천코스는 마을에서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수도원 중 제일 크고 높은 곳에 있는 그레이트 메테오론까지 간 다음 4-5시간 동안 굽이치는 산길을 따라 나머지 수도원을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다.

 

 

평온함과 신성함을 동시에 간직한 스테파노스 수도원.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아름다운 마을 풍경과 가파른 절벽에 세워진 그레이트 메테오론 수도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 쯤 들르게 되는 메테오론 수도원은 14세기 메테오라 출신의 수도사 아사냐시오스에 의해 세워졌다. “폭이 넓은 바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메테오론 수도원 마당에 서면 발 아래로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과 붉은 지붕의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진정한 칼람바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메테오론 수도원 바로 밑에는 수도사들이 은둔하면서 오롯이 종교에만 몰두하기 위해 세운 바를람 수도원이 있고, 길을 따라 나머지 4개의 수도원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중에서도 기암절벽과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해발 565m 세워진 아기아 뜨리아다 수도원의 풍경이 가장 압권이다. 발아래 펼쳐진 기암괴석과 마을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자락 등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한참 동안 바위에 앉아 칼람바카가 만들어내는 신성한 정기에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에 눈과 마음을 매혹당하고 나면 하늘엔 어느 새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특히 마을에서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 너무나 환상적이다. 거대한 바위와 그 위에 작은 불빛을 내고 있는 수도원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향연이 낭만적 분위기로 이끈다. 한낮에 달궈진 거대한 암석들은 밤이 되면 열을 다 토해내고, 또 다른 저녁 기운을 받는다. 너무나 신성하고 거룩한 느낌이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낮보다 밤이 오히려 칼람바카 수도원을 감상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