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대국 미국과 무상의료-무상교육 쿠바의 뒤안길
발등에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찾아가 의사를 만나 약을 바르고 잠깐 치료를 받았더니 병원에서 날아온 청구서에 적힌 비용은 주일 밤 급행료로 600달러, 치료비는 800달러로 합쳐서 1400달러가 나왔습니다.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으면 우리보다 열배 가량 비싼 600달러를 내야 합니다. 아이 감기 진료하는데 10만원 이상 들고, 자연분만하는데 1,000만원이 넘게 들며 이마가 조금 찢어졌는데 한국이라면 몇 만원이면 될 것을 200만원이 넘습니다.
암 같은 중병에라도 걸리면 대책이 없습니다. 선진국 중 보편적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 인구 3억명 중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은 16%인 4,700만 명 정도인데 미국에서 의료보험 없이 살려면 집을 날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의료보험이 있다 해도 병원마다 수가가 천차만별입니다.
최근 미국 연방정부 폐쇄를 초래한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은 국민들에게 우리나라와 비슷한 보편적 의료보험을 주기 위한 조치에 공화당이 반대해 일어났습니다. 공화당은 그 같은 보험제도를 실시하면 1,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재정 부담, 병원, 기업 및 보험ㆍ제약업계의 반발, 그리고 보험 강제 제도가 시장과 민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정책에 배치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고 이면에는 수혜층이 흑인, 히스패닉, 불법이민자 등 민주당 지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초강대국에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은 건강보험 문제와 함께 또 지방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는 연금이 커다란 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옆에 위치한 콘트라코스타 카운티는 이 지역에 경제 위기가 닥치자 소방당국은 6개 소방서를 폐쇄하려다 증세를 통해 살리기 위한 주민투표에 부쳐 처음에 여론이 동정적이었으나 한 시민단체가 10만달러(1억1천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 소방관 퇴직자 665명의 이름을 공개하면서 뒤집어졌습니다. 호황이던 2000년 지방정부가 50세에 퇴직하면 직전 연봉의 90%를 연금으로 주기로 소방관 조합과 합의했기 때문에 고액 연금이 지급됐던 것입니다. 20만달러 이상 수령자도 24명이나 됩니다. 퇴직 소방관에게 그 많은 연금을 주기 위해,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 소방서 문을 닫겠다는 논리에 주민투표 결과 자연스럽게 부결됐고 연금을 조정하자는 여론이 거세졌습니다.
최근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으로 한때 미국 6대 도시에 속했던 디트로이트는 지나치게 많은 퇴직자 연금과 건강보험을 시민들이 계속 책임져야 하므로 견디지 못하고 시 당국이 파산을 선언한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미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약속했던 연금을 충분히 지급할 정도의 조세 수입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재정적자가 쌓이는 가운데 벌어진 요즘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수정 파문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의사 대 환자 비율은 165명당 1명으로 세계 최고! 1인당 연간 총의료비는 251달러로 영국의 10분의 1 이하! 암치료부터 심장이식까지, 모든 의료비 공짜! 지구상에 이런 의료천국이 있다니, 그 나라는 바로 쿠바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 쿠바는 세계가 인정하고 주목하고 있는 의료대국이자 교육강국, 유기농업 강국이다.’
몇 달 전 발간된 일본인 요시다 다로의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의 책 소개 문구입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적 억압으로 쿠바인들은 일상용품까지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4,100달러로 우리나라에 비해 5분의 1 정도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런 가운데도 쿠바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국민의 기본생활은 꿈 같은 정책을 실현하는 나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두달전 한국일보에 게재된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의 칼럼 ‘쿠바 일장춘몽’을 보고 행복하게만 여겨졌던 쿠바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박교수의 칼럼을 간추려 소개하면,
‘쿠바인 여행객이 없는 조그만 아바나 공항은 불편하고 불친절했다. 공항에서 시내를 오가는 유일한 방법은 엄청난 가격의 택시뿐이었다. 미리 예약한 호텔도 가격에 비해 예상 외로 불편했다.
스페인어 외에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는 세상이 떠나가도록 시끄럽다가도 내가 말을 걸면 모두 외면했다.
쿠바에서 말을 받아준 사람들은 물건을 팔거나 돈을 바라는 사람들뿐이었다. 잠깐 길을 물어도 1달러라며 손을 벌렸다. 수 십 년간 꿈에서 그리다가 정말 어렵게 찾아온 참된 사회주의 나라라는 쿠바가 이렇게 돈에 미쳤다니!
고급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사먹고 비싼 매연 택시로 쏘다니는 것 외에 쿠바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비싸다는 것은 우리나라 물가보다 높을 뿐 아니라 쿠바 사람들보다 수 십 배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용품이 그러했다.
몇 시간 만에 겨우 찾은 상점에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아바나 구시가지는 매연 때문에 다닐 수도 없었다.
쿠바에 가기 전 그곳의 생태, 의료, 교육, 치안, 음악, 노동 등등에 대한 꿈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읽고 들었다. 그러나 아바나에서 내가 본 유일한 도시 농장은 시골의 내 밭보다 작은 곳이었고, 유기농이라는 것도 비료를 비롯한 농업 약품을 만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
교외에 있는 병원은 의사와 환자들만 득실댈 뿐 의료 시설도, 기구도, 약품도 없었고, 시내에서 본 유일한 병원인 정신병원은 고야의 그림에 나오는 야만의 풍경이었다.
스스로 나를 안내하겠다고 나선 대학생은 컴퓨터 살 돈을 요구했다.
TV나 영화나 책 속의 아름답고 흥겨운 쿠바가 아니었다. 거리에, 해변에 넘친다는 음악도, 춤도, 행복도 나는 비싼 레스토랑에서만 보았다. 1950년대 미국 자동차와 한중일 중고 트럭과 버스가 내뿜는 그 엄청난 매연과 비닐오염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허덕이다가 돌아왔다. 쿠바는 5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모두들 달러를 달라고 외치다가 해가 지면 배급용 비닐봉지를 들고 쓰레기 속 빈민굴로 돌아갔다. 빈부격차가 그렇게도 분명한 나라는 세상에 다시없었다.
제발, 정말, 일장춘몽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꿈에서도 볼까 두렵다. 제발 나만의 악몽이기를 빈다.’
복지국가 실현은 정말 어렵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의 능력과 실체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연재종료코너 > 천일평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의 섬 제주에 바렌보임을 초청하면 어떨까? (0) | 2013.12.30 |
---|---|
몬도카네와 인터넷…각양각색의 사람들 (0) | 2013.11.28 |
우리말을 사용합시다 (0) | 2013.09.30 |
기부 문화가 활성화됐으면 (0) | 2013.08.28 |
꼭 필요한데 지켜지지 않고 있는 법안들 (0) | 2013.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