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간호사의 병실일기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저희는 항상 곁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제주에는 투석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기신부전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야하는 환자들은 투석비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일주일에 세 번을 서울로 투석을 하러 비행기를 타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주한라병원에 투석실이 문을 열었고, 말 대신 미소로만 답해서 ‘마리아’라는 닉네임으로 환자들 사이에 불리며 첫 환자간호를 시작한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짜게 드시지 마세요. 바나나, 참외는 칼륨수치가 올라가니 쳐다보지도 마세요. 체중이 너무 많이 불었어요. 물 조금만 드세요.…” 잔소리가 많다고 닉네임을 ‘시어머니’로 바꿔 불리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는 그곳에서 짙은 회색 빛 얼굴로 어리광만 부리는 이들에게 사랑에 빠졌습니다. 근무가 없는 일요일에는 사랑하는 이들을 볼 수 있는 월요일을 설레임으로 기다렸습니다.
투석실에서 만난 수백 명의 소중한 인연들. 오늘도 그들은 아픔도, 절망도 없는 모습으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간호사에게 다가옵니다.
20여 년 전 어느 날, 오후 근무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응급실로 투석환자가 와있다는 얘기를 듣고 15분 거리를 전력 질주하여 5분 만에 응급실에 도착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힘든 농사일을 하는 분이라 음식조절을 잘 못해서 하루하루가 불안했던 마음씨 좋은 소나무 님은 상상을 초월한 칼륨수치(10)를 만들어냈습니다.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었습니다. 온몸이 강직되어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간호사를 보자 안도감에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그 환한 미소를 기억합니다. 초를 다투는 상황이라 간호사는 가운도 갈아입지 않고 이동카에 눕힌 채로 투석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었고 말도 할 수 없었던 분이 식이요법을 지키지 못한 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분은 또 한 번의 소중한 삶을 선물 받았습니다.
간호사의 입술을 훔친(^^) 한 살의 예쁜 사내아기. 그 아기 아빠의 따뜻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노모를 효심으로 모시고 가족을 돌보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지만 병마는 비켜가 주지를 않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말기신부전 진단을 받고 투석을 해야만 했습니다. 투석생활로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지만 늘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야채트럭을 운전하고 나서 오전 7시에 병원에 와서 투석을 받고 또 일터로 갔습니다. 쉬는 날에는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갖고 있는 재능을 살려 봉사 활동으로 하루를 채웠습니다. 그때 그분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저는 투석하러 병원 오는 날이 참 행복해요. 편하게 깊이 잠을 잘 수가 있어서요. 병원에서 피로를 풀지요.” 간호사는 잠이 깰까봐 혈압측정하는 게 조심스러웠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신께서는 아름다운 이분을 기억하셨습니다. 어느 기분 좋은날 새벽 0시, 뇌사기증자가 있다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의 전화였습니다.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가족과도 확률적으로 맞기가 어려운 완벽에 가까운 매칭이었습니다. 24시간을 잠 한숨 안자고 이식준비를 위해 서울오가며 백 여 통의 전화를 하며 휴일을 보냈지만 간호사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지금, 그분은 이식이 잘 되었고 아들은 멋진 군인이 되었고 투석 중에 태어난 예쁜 딸과 아픈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김성수 병원장님과 문영진 부원장님을 젊은 할아버지로 만든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투석을 시작한 장미 님은 가족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아픔을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장미 님은 2세에 대한 소망이 그 누구보다 간절했습니다. 투석하는 여자 환자의 임신은 환자도 위험하고 임신되기도 어렵고 유지 또한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강한 의지는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번의 면담을 통해 김성수 병원장님과 한마음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산부인과 진료를 맡고 계셨던 문영진 부원장님과 투석실 간호사도 함께 긴 여정 길에 올랐습니다. 간호사는 희망의 문헌을 찾기 위해 세계의 서고를 날마다 뒤졌고, 장미 님이 투석하러 들어올 때면 얼굴보다는 배를 먼저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혈압의 작은 변화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4시간 내내 장미 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태아의 생명유지를 위해서는 혈압이 높거나 낮으면, 안 되는 적정혈압유지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긴 시간도 흘러 예쁘고 건강한 공주님이 태어났습니다. 올해 그 공주님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엄마는 가끔씩 말 많고 자신을 이기려는 딸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면 간호사는 귓속말로 제안 하나를 합니다. “그럼, 장미 님이 전에 말씀하신대로 우리 아들 한명 더 낳아볼까요?” 엄마는 “ 딸이랑 쌉잰허난 딸 하나로도 버치우다.” 라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신께서 선물로 주신 귀한 삶의 반을 그들과 보낸 간호사를 어느 날, 칠순을 바라보는 어르신이 또 다른 닉네임으로 바꿔 불러주었습니다. ‘어머니’라고. 어떤 어르신은 아직도 그 간호사 이름의 성을 ‘수’씨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간호사는 가끔씩 외면하는 투석실 가족들을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해합니다. 그분들은 세상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신장실 수간호사․채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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