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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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호사의 병실일기-'이명아명(爾命我命)' 원훈을 실천하는 중환자실 천사들

제주한라병원 2012. 12. 13. 14:12

수간호사의 병실일기

'이명아명(爾命我命)' 원훈을 실천하는 중환자실 천사들

 

중환자실! 위중한 환자가 입원하여 집중간호를 받는 곳. 많은 환자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또한 많은 환자들은 이곳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음을 항상 생각하면서 환자들을 맞이하고 보내고는 하지만 이별의 순간이 오고 많은 기계장치와 기구들을 제거하는 순간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나는 진정 최선을 다 했는가?’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우리 간호사 또한 인간인지라 매 순간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호흡하면서 환자와 같이 소생하기도 하고 환자와 같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을 준비한다.
누구나 그렇지만 중환자실에 배치받으면 막막한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많은 기계들을 보면서 언제 저 기계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언제 저거 다 공부하지. 아마 신규간호사들은 조직에 적응하랴, 환자 질환에 대해 공부하랴, 중환자실 장비에 대해 공부하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알람소리, 응급상황에 벌어지는 의료진 외침에 가슴은 두근두근, 머리는 지끈지끈….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무지막지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임상에서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나도 중환자실 발령에는 아득했으니까.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슴속에 아련함과 행복함으로 간직해온 이야기가 있다.

 

어느 소녀의 진심어린 할아버지 사랑


파킨슨으로 쓰러져 중환자실 생활을 2달 정도 하였다. 증세가 호전되어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고 원래 가지고 있는 지병과 기관 절개술을 하셔서 표현은 어려웠지만 병실로 가서 가족과 함께하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병실에 가서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폐렴과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서 다시 할아버지를 뵐 수밖에 없었다. 하루만 더 버텨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손녀딸을 뒤로하고 할아버지는 영영 다른 생을 가기위해 손을 놓고야 말았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난 할아버지를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면회 시간마다 할아버지를 만나러오던 사랑스런 손녀딸의 따뜻한 마음이 아직도 생각난다.


온몸이 붓고 인공호흡기에 기대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뽀뽀도 해주고, 움직임조차도 힘겨운 손을 붙잡고 소리 없이 울기도 했던 손녀딸의 진심 담긴 사랑을 할아버지는 느꼈을까? 


다하지 못한 이야기와 사랑이 헤어짐은 서로에게 참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서 우리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그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애정을 쏟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다하지 못한 마음을, 그 안타까움을 위로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말이다.

 

 

 

몸짓으로 소통한 말레이시아 할머니
할머니는 말레이시아인으로 아들 며느리와 함께 관광 왔다가 뇌출혈로 뇌 절개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입원하였다. 수술 후 며칠간은 식사도 잘하고 호전되나 싶었는데 며칠 후 합병증인 혈관연축, 폐렴이 찾아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만국 공통어인 손짓, 발짓, 서투른 말레이시아어로 할머니를 간호하며 때론 서툰 언어 때문에 웃음도 나고 통하지 않는 손짓에 난감해 하기도 했지만 보호자분과 우리의 바람이 통했기에 상태는 호전되었고 병실로 가게 되었다.


병실로 이동하는 날 우리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빨리 완쾌되어 당신의 나라로 돌아 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렇게 보내고 당신의 나라로 간 줄 알았는데 며칠 후 열이 나고 신기능도 떨어져 다시 중환자실로 왔을 때 너무나 안타까웠다. 다행히 그 연세에도 투석하지 않고도 회복이 빨라 검사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너무나 힘이 들었을 텐데 고통도 참아내며 살아서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야겠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면회시간도 정확하게 지키고 긴 치료기간 동안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준 말레이시아  보호자분들께 이글을 통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드디어 병실로 올라가는 날 할머니는 표정이 밝아 보였다. 빨리 회복하여 꼭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우리 모두의 바람이 통했는지 며칠 후 할머니와 보호자분들이 휠체어에 할머니 모시고 중환자실로 찾아왔다. 다음날 퇴원하여 말레이시아로 갈 거라며 기념촬영을 부탁하였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부디 고향 가셔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오늘도 중환자실에서는 인공호흡기와 같이 호흡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리고 24시간 환자상태감시 모니터링 기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하루종일 환자와 같이 울고, 웃으며 이명아명(爾命我命)을 실천하는 우리 간호사들이 있다. 울리는 알람과 의료진 호출소리 속에서도 두근두근과 지끈거림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찾는 환자 곁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중환자실 천사들 파이팅!          
<박혜순·2중환자실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