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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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호사의 병실일기-기쁨, 슬품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항상 환자와 함께…

제주한라병원 2012. 12. 13. 14:04

수간호사의 병실일기

기쁨, 슬품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항상 환자와 함께…

 

 

 

순환기내과, 혈액, 종양내과 환자들이 숨쉬고 있는 62병동. 내가 이 병동의 문을 두드린지도 6년째가 되고 있다. 62병동은 정말로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지나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가운데에 서서 삶을 선택하여 이 문을 나가는 사람도 있고, 죽음을 선택하여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듯 여기에는 기쁨과 슬픔이 살아 숨쉬고 있다.

 

기쁨

2011년 00월 00일
6△△호에는 젊은 여자 환자가 있었다. 경피적 관동맥 성형술을 받은 환자로 시술후 급성기를 지나 병실로 와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그날은 여느때와는 달리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에 회의까지 있어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에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테이션을 벗어나려는 순간 6△△호에서 들려오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 “선생님 여기 환자가 이상해요?”


왠지 모를 기운이란 것이 이런 것인지 가방을 짊어진 채 퇴근하던 발길을 그 병실로 돌렸다. 환자는 호흡이 얕아지면서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응급상황이다.’


난 재빨리 가방을 던지고 환자의 침대위로 올라가서 심장마사지를 하면서 “CPR 방송하고 응급키트 끌고 오세요”라고 외쳤다. 내 말을 들은 간호사는 다른 간호사들을 부름과 동시에 교환을 통해 CPR 방송을 하게 했다.


“코드블루 6△△, 코드블루 6OO" 안내방송이 울리고 몇초 지나지 않아 레지던트와 병동 간호사들이 뛰어 왔다. 다행히 환자는 CPR을 통해 회복되었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다시 그 환자가 상태가 호전되어 그 병실로 전실되어 올라왔다. 그때 보호자(남편)가 병실을 돌아보던 나를 보고 “수간호사 맞으시죠? 우리 애들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집사람이 살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들이 빠른 응급처치를 해주셔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는 간호사란 희생과 봉사의 큰 나무가 되어 환자들의 그늘이 되어주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흐뭇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슬픔

2011년 00월 00일
6△△호 김 △△ 환자가 입원을 했다. 외래에서 암이 의심되어 검사를 하기 위해 입원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서인지 겉으로는 침착해 보였지만 긴장의 얼굴빛은 숨기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극진한 보호자의 격려와 함께 많은 검사를 하고 폐암이란 판정을 받았다. 환자는 바로 항암요법을 시작하기로 했다.


수술시기가 지난 4기였기에 환자에게는 항암치료에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극진한 보호자들의 간호에도 환자는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항암치료에서 발생되는 오심과 구토에 환자는 지쳐가면서 자신에게 놓여진 암이란 무거운 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보호자와 간호사에게 짜증과 분노를 표출했다. 보호자에게는 암을 진단받은 환자들이 병을 받아들이는 단계 중에 하나라고 안심을 시키려고 했으나 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환자는 자신의 병을 수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떠한 말로도 환자의 슬픔과 절망을 덜어내 줄 수 없었기에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삶도 그렇게 놔버렸다.


참으로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무런 도움도, 아무런  아픔도 덜어줄 수 없었기에 ‘내가 왜 간호사를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어떠한 것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환자들이 62병동의 문을 열고 닫고 있다.물론 그러면서 수차례 환자들이 반복되는 입원과 퇴원을 하면서 어느새 가족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 환자들에게는 퇴원할 때 “△△△님 퇴원이시죠? 잘 갖다 옵써에, 그다음에는 언제 오는 날이세요?” “△△일날 올 거니까 그때도 여기 병동에 방 비워두세요”라는 인사가 오가곤 한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해서인지 환자의 습관과 식사 습관 등이 자연적으로 가족들이 느끼는 것처럼 알게 되었고 입원전화를 받는 순간 그 환자의 특이사항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는 어떤 환자들은 그런 시간을 보내고 힘겹게 투병하다가 결국 작별을 하게 된다. 겉으로는 사무적인 표정을 하고 있지만 지나온 시간 속에 환자와 같이 나누었던 정이란 끈에 가슴 한쪽이 저며 오는 슬픔을 느끼게 된다.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주체하지 못하고 많은 신경질과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간호사들에게 환자들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곤 한다.


사람과 사람이 숨쉬는 공간이기에 많은 드라마가 쓰여져 가는 기쁨과 슬픔의 공간.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환자들의 슬픔과 절망의 힘겨워 하는 시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하게 건네주는 환자들의 사랑이 있다. 그렇기에 난 오늘도 환자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그들의 손을 마주하고 있다.

<김영주·62병동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