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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호사의 병실일기-'흑룡의 해'를 맞아 '출산 붐'일기를 기대하며

제주한라병원 2012. 12. 13. 14:00

수간호사의 병실일기
'흑룡의 해'를 맞아 '출산 붐’ 일기를 기대하며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이슈화된 지 오래인 것 같다. 분만실에 근무하다 보면 더욱 공감가는 부분이다. 저출산율도 그렇지만 첫애를 분만하러 오는 산모들의 연령대가 거의 대부분 30대가 훌쩍 넘는다. 2012년! 흑룡의 해라며 ‘출산 붐’으로 출산율이 높아질 거라는 소식을 접하면 괜스레 기분이 들뜬다.


5개월 정도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안고 방문하신 분이 있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아줌마 한 분이 품에 아기를 안은 모습은 이제 곧 분만을 앞둔 산모로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오셨나요?”


“저~ 아기 태동 검사 하러 왔어요.”


분만 전에 태아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태동검사를 하게 된다. 침대로 안내를 하였고 검사를 시작하였다. 검사 준비를 하는 내내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연년생인가?’ ‘몇 개월일까’ ‘ 뱃속에 있는 태아는 아들일까, 딸일까? 이 집도 아들을 낳아야만 되는 것일까?’ …… 궁금했다. 한참을 생각하다 “옆에 있는 아기는 몇 개월 됐어요? 몇째인가요?"하고 물었다.


지금 6개월에 접어든, 품에 안고 있는 아기는 딸의 아기, 손녀였다. "딸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 손녀를 보고 있다오. 딸, 아들 다 있고 장성했는데 덜컥 셋째가 생겼지 뭐요. 낳기로 결심하기까지 마음의 결단이 힘들었다오. 내 나이 낼모레면 쉰인데…… 부끄럽기도 하고……."

 

나 역시 아이가 셋이다. 셋째를 분만하러 오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에겐 '왜 셋째를 가졌는지, 기분이 어떤지?' 등의 궁금함이 들었다. 이 분은 처음 임신소식을 접했을 때 청천벽력 같았다고 했다. 노산이었지만 순산하였다. 아기도 건강한 여자아이였고 몸무게도 정상이다. 아기 키우는 것을 다 잊어버렸다 하면서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모유수유의 뿌듯함!
“여기 간호사는 아이 잘 키우겠네요.”
분만실과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며 아주 흔하게 듣는 말이다. 신생아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며 우유를 먹이고, 아기를 편안하게 재우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말을 듣는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사랑과 더불어 요령도 필요하다. 아기가 울면 초보 엄마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생후 첫 몇 달 동안 아기가 우는 가장 흔한 원인은 배고파서이다. 하지만 울기 전에 아기들은 먼저 신호를 보낸다. 빠는 행동을 보이거나, 입에 자기 손을 넣는다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입을 ‘쩝쩝’거리며 수유 신호를 보낸다.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냈는데도 계속 반응을 안 주면 그때서야 아기는 울기 시작한다. 부모가 곁에 있으면서 달래주면 뇌 성장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얼마 전에 분만 한지 3일 된 산모가 모유수유가 잘 안 된다며 분만실로 방문을 하셨다. 젖이 ‘탱탱’불어 건들지도 못할 정도로 이미 젖몸살이 생긴 상태다. 유두혼돈이 와서 아기는 엄마젖을 물려고만 하면 벌써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할머니들이 그렇다. “배고파 신디 기냥 우유 먹여게”하고 인공분유를 강요하시는 어르신.


우는 아기 앞에 엄마는 그저 애처롭게 나만 쳐다본다. 모유수유를 꼭 하겠다는 산모 의지가 파악되어 난 모유수유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유두를 부드럽게 마사지한 다음 여러 차례 수유 시도를 하였다. 계속 젖을 물리다 보니 딱딱하던 유방이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산모도 훨씬 편안해 하였다. 그러나 밤사이가 문제다. 아기가 보채고 주위에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쉬운 젖병수유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모유수유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이제부터 엄마젖에 적응해서 잘 빨릴 때까지 인공분유는 안됩니다.”


“만약 꼭 먹어야 된다면 컵수유로 하세요.”


다음 날 출근하여 병실을 방문하였다. 다행히도 밤사이 아기가 열심히 엄마젖을 먹었는지 젖몸살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고 모유수유를 시도했는데 아기가 잘 물었다.


“오늘만 엄마젖만 잘 물리면 성공하겠네요! 정말 잘 하셨어요.”


분만 6일째 되는 날 완전 모유수유를 하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산모! 엄마랑 아기랑 무척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엄마는 아기 돌보는데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기에게 친밀감을 표현한다. ‘이래서 모자동실이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초산모가 자기 자신과 엄마 역할을 잘 받아들여 양육에 대한 자신감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난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가끔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다이애나루먼스) 란 글을 읽다보면 나의 아이에게 더 다가가는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바라보리라. (중략)
                                                                                                             <현경이·분만실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