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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호사의 병실일기-차 한잔의 여유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아

제주한라병원 2012. 12. 13. 13:55

수간호사의 병실일기

차 한잔의 여유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아

 

 

 

응급실은 색깔이 있다
응급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환자 분류에 의해 침상 위쪽에는 환자상태의 긴급정도를 알리는 색깔이 부착되고, 환자의 전산 기록에도 동일한 색깔이 부여된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아니면 검정색에 의한 환자 중증도 분류에 의해 다양한 색깔을 가 진 의료진들이 환자들과 만나고 있다.

끊임없는 민원과 생각의 장
경력자로 포진되어 무엇이든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어느 곳이나 신참들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 응급실로 발령받고 환자를 대하는 인턴선생님,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그 뒤에 든든한 응급의학과 과장님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있지만, 처음이라는 그 설레는 맘보다 긴장감이 앞서고, 서툴 수밖에 없다. 질문 하나에도  적절한 답을 찾지못해 쩔쩔매는 신규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전에 민원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신참들은 끊임없는 회의와 자문을 이 순간에도 던지고 있을 것이다. ‘ 내가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인가’ 라고.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시작이 서툴고 힘들다고,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누군가는 지켜야 하고 그게 우리인 것이다.

응급실은 전쟁터다
어느 병원이나 응급실을 전쟁터로 묘사한다. 그래, 이 곳도 전쟁터라 하자. 간만에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려볼라치면 응급환자의 연이은 도착에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른다. 물 한 모금이 갈증과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다음 환자를 위한 물품, 장비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응급상황에 허점이 들어나기에 무엇 하나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응급실만 들어서자마자 모든 게 신속하게 치료되면 웃음으로 퇴실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 비응급 환자는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한다. 긴급환자 처치로, 비응급 환자의 늦어지는 상황을 이야기 드리면 “ 괜찮다, 이해한다” 라고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신다면 우리는 감사, 또 감사하다. 또한 늦어짐에 소리친다 한들 어찌하랴, 내원객의 이 맘도 이해하고, 저 맘도 어루만져야하고, 충분한 설명을 하면서 전쟁터를 평정시켜 나가야한다. 자!, 힘을 내야지!

권역센터는 원스톱으로 이뤄진 집합체
응급전용원무과에서 입․퇴실이 이루어지고, 신속진료구성팀에 의한 중증환자 진료는 적시에 수술 및 시술로 이어진다. 응급전용영상촬영실, 응급전용검사실, 응급전용수술실, 응급중환자실, 응급병동으로 구성되고 있다. 응급센터장님을 한 축으로 응급의학과전문의, 수련의, 인턴선생님, 간호사, 응급구조사, 응급코디네이터, 영상촬영기사, 안전요원들이 오늘도 잘 맞물린 톱니바퀴의 한 부분에 자리하여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소방구조대, 지역 병원, 요양원 사람들은 우리와 오랜 만남으로 교집합이 되기도 한다.   

하루의 영상이 반복되는 곳
2일 동안의 응급실 CCTV를 돌려봐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빠르게 비춰지는 영상은 소리없이 응급실문으로 들어서고,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비춰진다.  긴장과 초조, 걱정과 안쓰러움을 얼굴 가득 담고 황급히 문을 열어 제친다. 다행이도 몇 시간 후면 의료진에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왔던 문을 나서는 환자, 보호자. 보는 나도 행복하다.


하지만 이승의 삶을 마친 자의 마지막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영상에서, 나는 잠시 입술을  깨문다. 그 분들의 아픔이 먹먹하게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2일 동안 영상이 하루를 다시 겹친 것처럼 닮아 있다. 그 속에 사람들만 바뀐다.


응급실은 다양한 삶의 축소판이다. 질환, 계층, 성격, 직업 등, 가족 간의 화합과 갈등구조를 함께 껴안으며 치료에 임하기도 해야 한다. 응급실 근무자는 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그네들의 맘을 헤아리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어제의 오늘처럼, 내일의 오늘이 될  스쳐가는 영상이 반복되는 응급실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키워간다.


비바람과 폭풍우를 피하는 항구의 안식처
항로 잃은 배가 등대의 불빛을 의지하여 도착한 항구에서 안도의 숨 가르기를 하듯, 응급실 문을 여는 순간 응급센터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상처 난 곳을 다시 치유하여 삶의 항해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그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불어 넣도록 할 것이다. 2012년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훤한 등불이 되어 밝은 생명의 빛을 이끄는 제주권역응급센터의 한 일원으로 거듭 나아갈 것이다.
                                                 <응급간호팀장 송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