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명분 좋아도 체계적 준비 없다면 부실 초래
해외 여행 광고에 ‘하우스텐보스-여행 숙박 항공권 3일 399,000원’이란 문구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 광고는 곁들여 “제주도 여행 경비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본의 유명 관광지”라는 말도 따릅니다. 지난 4월에는 국내 여러 신문에 ‘하우스텐보스 100만 송이 장미축제’라는 기사도 실리는 등 상당히 알려진 일본의 관광지입니다. 하우스텐보스는 일본에서 도쿄 디즈니랜드와 함께 큰 인기를 모은 남쪽 후쿠시마 아래 나가사키현의 네덜란드 풍광을 본뜬 종합 레저시설-테마파크입니다. 하우스텐보스라는 용어는 네덜란드 말로 ‘숲속의 집’이란 뜻입니다.
1979년 여름 하우스텐보스의 설립자인 재력가 카미치카 요시쿠니는 유럽여행을 하면서 나가사키현의 데지마 섬을 개발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고 나가사키 자동차와 일본 흥업은행(전 미즈후 은행), 나가사키현 등이 공동 출자해 92년 3월 25일 개장했습니다. 면적 150만㎥로 여의도보다 조금 큰 넓이인데 투자 경비가 무려 2,289억엔(3조4천억원)이 들어갔습니다. 하우스텐보스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토로 삼아 40만 그루의 나무와 30만 그루의 꽃을 심고 운하를 만들어 바닷물이 흐르게 하는 등 자연의 재생에 초점을 맞춰 5년간 조성했습니다. 내부에 호텔과 은행, 소방서 같은 편의시설을 갖추어 미래형 신도시의 탄생이라는 극찬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개장 후 96년엔 입장객이 연간 425만명을 기록했으나 점차적으로 줄어들어 2001년에는 355만 명이 방문해 경영난이 이어졌습니다.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부채 총액은 약 2,200억엔(한화 3조2천억원)으로 처음 투자할 때 경비와 맞먹습니다. 버블 붕괴로 테마파크 내 조성한 1억엔 이상의 분양 별장이 팔리지 않은 것도 적자 누적의 주 원인이 됐습니다.
‘생태학 적용 공간’ 21세기형 종합테마파크로 자연환경과 첨단기술로 탄생한 하우스텐보스는 기존의 테마파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경영상 적자는 당해낼 도리가 없습니다. 자국 관광객만으로는 도저히 안 돼 한국, 중국, 대만의 관광객을 꾸준히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지원회사를 유치해 투자를 받으려고 애써 2010년에는 한때 처음으로 흑자가 나기도 했으나 현재 재정 상태는 60억엔이 조금 넘는 채권만 남아 있을 정도로 바닥이 났습니다. 엔고와 신종플루, 원전 사고의 영향 등이 잇따라 더욱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하우스텐보스에 대해 일본 젊은이들은 “별로 재미가 없는 곳이다. 어릴 때 부모님과 와 보고는 놀이기구도 없어 흥미가 없다. 인기가 없는 곳”이라며 냉담합니다.
일본에서는 현재 도쿄디즈니랜드 리조트와 오사카 유니버설 스투디어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난립한 테마파크가 폐장하거나 고전하고 있습니다. 문을 닫은 다른 테마파크들은 결혼식장이나 쇼핑센터로 바꾸려 했지만 대부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폐허가 됐고 새로운 시설로 다시 이용되기도 어렵습니다. ‘최상의 환경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한 사업으로 초기엔 주목을 받으나 ‘만성적 적자를 낳게 한 돈 먹는 하마’로 변한 테마파크가 수두룩합니다.
관광산업은 새로운 신성장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이 분명해도 우리들의 세금이 줄줄이 세는 사업으로 바뀐 곳을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주도한 ‘대전 엑스포93’이 하우스텐보스와 닮았습니다. 최근에 개최한 ‘여수 엑스포’도 마찬가지라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테마파크들이 잇따라 생겨나 현재 커다란 종합레저시설이 12곳인데 2003년 이후 계속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으며 지난 해 입장객이 2,433만 명으로 다소 회복됐으나 적자 보는 곳이 많습니다. 방문객의 눈으로 볼 때 처음 감탄한 곳도 변하지 않는 똑같은 내용이 그대로라면 식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테마파크 안의 프로그램이 움직임이 있는 것이어야 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수시로 제공하는 세심한 기획이 따라야 지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06년 취임과 동시에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설치하면서 '창의적인 디자인을 통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로 발족해 ‘디자인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거리의 간판을 통일하고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는 것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과 '한강 르네상스'프로젝트에 이르는 광범위한 사업입니다.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인 동대문운동장의 축구장과 야구장를 철거하고, 4,300억 원의 세금을 쏟은 'DDP'였지만 정작 그 안에 담을 콘텐츠조차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야구의 상징적인 서울운동장야구장이 사라진 지 6년이 지났으나 새로운 야구장은 아직 지어지지 않아 아마추어 야구는 대회를 치를 곳이 부족해 우왕좌왕하는 실정입니다. 6,735억원이 투자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2011년 박원순 시장 출범과 함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등이 전면적인 재검토 움직임으로 표류하고, 광장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 광화문광장은 수백년간 이어온 가로수 길이 없어지는 대신에 콘크리트로 도배한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디자인 서울'은 서울시에 '도시 디자인'의 개념을 끌어 들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전시행정에 그쳤다는 비판이 우세합니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도시를 치장하고 보여주기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거리는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시민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와 함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에 3조7,000억 원을 들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133층의 랜드마크 빌딩을 짓는 사업 시행사인 ㈜서울라이트타워와 체결한 용지매매 계약에 대해 토지 대금 미납과 착공 지연 등의 이유로 계약이 해제되고 용지 활용 방안을 원점에서 검토키로 해 백지화 됐습니다.
제주도는 어떻습니까?
여기저기서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프로젝트라는 이름아래 막대한 투자를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한 사업인데 ‘돈 먹는 하마’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200억 원이 넘는 행정전화 투표비가 들어갔다는 게 넌센스입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주관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이 시초에 터져 어쩌면 다행입니다.
“문화산업을 키우면 부가가치가 커지고 고용이 창출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명분을 내세우나 실제로는 싼 임금이 나오는 불량고용이 대부분입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커다란 종합레저시설을 정치인하고 지역관리들이 시설에 과잉투자를 해서 망한 게 우리 주변에 수두룩합니다. 불필요한 도로와 시설을 경기가 한창 좋을 때 마구 만들다간 경기가 불황이면 엄청난 관리비만 들어갑니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 선다 해도 과잉투자는 절대적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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