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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어려운 선심성 복지정책은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제주한라병원 2012. 10. 29. 11:15

감당 어려운 선심성 복지정책은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국민 누구나 병원비가 공짜인 무상 의료이며 교육비도 무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저가 주택 또는 무료로 집을 제공하는 꿈 같은 나라가 베네수엘라입니다. 남미 대륙 북부에 면적이 남한의 11배가 되고 인구는 2,700만명으로 국민 1인당 총 생산비(GDP)는 우리나라에 절반 정도인 나라이지만 빈민층은 살기 좋은 곳입니다. 34년 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가 베네수엘라에서 열려 제가 찾았을 때 그 곳은 민주 정부가 있었으나 어수선한 가운데 세계 2위의 산유국으로 수도 카라카스 주변 곳곳에 석유 시설이 있었습니다. 취재를 하던 중 발에 물집이 커다랗게 생겨 병원을 찾으려 애를 먹다가 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치료비를 받지 않더군요. 스페인 식민지로 지내다 1830년 독립공화국이 된 후 영국과 미국, 네델란드 등 외세의 석유 이권 쟁탈전과 독재자의 지배로 고생하던 베네수엘라는 1958년 군사독재를 전복시키고 좌파 정권이 통치해왔습니다.


가난한 교사 집안에서 출생한 우고 차베스(58)는 육군 통신 장교로 근무하다가 92년 쿠테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해 2년간 투옥됐습니다. 차베스는 1998년 부패와 기득권 타파를 내세워 대선 출마해 당선되고 2000년에 개헌 후 첫 대선에서 임기 6년 대통령으로 재선출 됐습니다. 집권하자 차베스는 석유의 국유화를 선언하는 등 무차별적으로 각종 대기업을 국유화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 정책을 베풀었습니다. 차베스의 사회주의는 집권 기간 1조 달러의 오일머니를 이용해 국내적으로는 무상복지, 대외적으론 쿠바,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과 함께 '중남미 반미 벨트'를 선언하고 권좌를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기업 국유화로 민간 부문의 체질이 허약해져 내수 생산이나 일자리 창출 대신 정부 의존형 수입업만 늘어났습니다. 왜곡된 경제 구조로 인해 고(高)물가와 식품, 전력 부족이 만성화하고, 공공 부문의 무능과 부패, 세계 최고 수준의 살인 범죄율, 언론 탄압과 독재 등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10월 7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차베스가 이번 대선에서 내세운 것은 '사회주의 개혁의 안정적 지속'이었습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주택 24만호 무상 제공과 저가주택 공급, 각종 현금 보조금 등으로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책임지는 자신의 강력한 사회보장 정책을 지속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국민 40% 빈민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무상복지에 길든 국민은 변화를 허락하지 않아 차베스가 당선됐습니다. 야권 단일후보 엔리케 카프릴레스(40)를 꺾고 4선(選) 연임에 성공한 것입니다. 차베스는 중도 성향의 야당 후보 카프릴레스를 향해선 "미제의 앞잡이" "나치 자식"이란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독재와 높은 범죄율, 물자 부족 등 실정(失政)에 대해선 "과거의 잘못을 고칠 기회를 달라"고 사과했습니다. 차기 6년 임기를 더해 집권 기간을 20년으로 늘린 것입니다. 득표율 54.42% 대 44.97%, 130만 표 차의 여유 있는 승리였습니다. 강력한 포퓰리즘 정책과 개헌조치 등을 통해 사실상 '종신 대통령'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 75%였던 투표율이 81%로 올라간 반면, 야당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가 27%에서 9%포인트로 급감한 것은 남은 임기 동안 차베스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지율 하락은 차기 총선에서 여당 의석수 축소와 정부 정책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세계 경제 전문가들은 차베스의 퍼주기 정책도 부족한 정부 곳간이 메워져야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추산에 따르면 오는 2013년께면 베네수엘라 정부의 곳간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해 수년내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커다란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차베스 개인의 건강도 문제입니다. 그는 지난 2년간 암 투병을 하며 쿠바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자신의 암 발병 부위나 치료 경과는 1급 국가기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종신 집권은커녕 향후 6년 임기조차 채울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오는 12월 19일에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합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등 후보들이 치열하게 선거전을 펼치고 있는데 모두가 근사한 복지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차베스는 쏟아지는 석유라도 많아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무상 또는 저가 주택 제공을 실시하고 있으나 우리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세금을 쪼개 나라 예산을 편성하는데 대통령 후보들은 일단은 달콤한 복지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재작년부터 진보계층에서 초중고에 무상 급식을 실시하자는 정책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 다음은 무상 보육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쏟아내고 있는 복지공약 남발은 재정의 악순환만 불러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재원대책 없이 복지공약을 실현할 경우 소요될 비용은 결국 세금을 늘려 충당하거나 국가채무를 통해 조달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재정건전성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국내총생산(GDP) 20% 규모의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이 현재보다 갑절 많은 세금 부담에 동의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고 경고합니다. 복지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안보와 국방비 증액도 커다란 문제입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선을 국방비에 투자하지만 현실적인 안보위협이 있는 한국은 2.7%만 투자해 미국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어떤 대통령을 뽑을 지가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심성 복지 정책을 내놓는 후보부터 추리는 작업을 우선하는 것은 어떨까요?

<천일평 인터넷 신문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