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7월
프로야구 인기 역행하는 10구단 창단 보류 논란
프로야구가 최고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구기종목 중 1982년에 가장 먼저 태어나 출범할 때부터 인기를 모았지만 2006년부터는 전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종목이 됐습니다. 초창기엔 야구장을 찾는 여성은 열명 가운데 두어명에 불과했으나 요즘은 근 절반인 46%가 여성들이어서 구장 분위기가 다채롭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이들이 야구장을 찾는 이유는 “함께 간 사람이나 관중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내가 좋아하는 구단과 선수들을 응원하면 스트레스가 풀립니다”라고 좋아합니다.
프로야구가 요즘 최고의 인기로 떠오르고 여러 대기업에서 구단을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31년 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프로야구를 정부 주도 하에 만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5공화국이 3S 정책,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로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동서고금의 독재정권이 즐겨 쓰는 정책을 채택해 프로야구가 생겼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전부터 프로야구 탄생을 위해 참여했던 필자는 이런 평가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고 봅니다. 야구인들이 프로야구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는데 정부에서 자신들 입맛과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이 나서서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당시는 중동 원유 값이 치솟아 국내 대기업들도 힘든 시기여서 망설이던 판에 정부의 힘에 의해 MBC방송이 앞장서서 삼성, OB 맥주, 롯데, 해태, 삼미 그룹이 프로야구 구단을 창단했습니다. 91년부터는 8개 구단 체제로 늘어났습니다.
처음에 참여한 6개 기업은 “정부가 시켜서 프로야구를 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 5년 정도 지나면 버티기 어렵고 그때 가서는 구단을 해체하더라도 정부에서 말릴 수 없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자 대기업들은 적자를 보더라도 자기 기업이 크게 홍보되고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자 구단을 붙들고 있으면서 구단에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프로야구가 현재의 위상을 자리잡는데 최대 공신은 대기업들입니다.
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나 구단을 팔려고 내놓은 곳은 없는 요즘 상황에서 2년 전부터 창원과 수원, 전북, 성남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들 지자체에서는 대기업을 유치해 야구장을 새로 만들고 번듯한 프로구단을 설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몇몇 도시에서는 건립비용이 5천억 원 이상이 드는 돔구장도 짓겠다고 부풀렸습니다. 야구인들의 꿈인 돔구장은 실제 대기업이 나타나지 않아 무산됐으나 먼저 창원은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를 만나 빠르게 9구단을 신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승인을 받고 올해는 우선 2군경기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9구단을 승인한 KBO 이사회는 10구단 창단에 대해서는 지난 6월 임시 이사회에서 ‘무기한 유보’라는 결정을 내려 사실상 창단을 거부했습니다. 9구단 창단을 허용했으면 당연히 리그를 치르기 위해서는 짝수 팀을 만들기 위해 10구단을 만들어야 시즌을 소화할 수 있는데 갑자기 이사회에서 반대하고 나선 것입니다.
9구단 승인을 할 때는 8개 구단 중 부산 연고지를 보유하고 있는 롯데가 인접 도시 창원에 새로운 구단이 나오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간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반대하던 것을 10구단 창단에 대해서는 롯데, 삼성, 한화 등 4개 구단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반대하는 구단의 논리는 우리나라 고교야구팀이 53개 밖에 안 돼 수천개가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선수를 뽑기가 힘들고 그렇게 되면 프로야구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모든 야구인들과 대다수 팬들은 맹렬히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31년 전 프로야구가 6개 구단으로 발족할 당시의 고교야구팀도 58개가 최다였으며 실제 프로야구 선수 지망생은 매년 8백명에 달하지만 정작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는 80명 정도에 불과해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또 한국야구 수준은 예전보다 부쩍 높아져 국제대회에서 미국이나 일본도 이기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발전돼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기량이 처진다는 이야기도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열기가 식은 다음에는 불가능하다고 항변합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모두 가입한 선수협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서 10구단 창단을 무기한 보류한다면 7월 21일 열리는 올스타전에 모든 선수가 불참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야구 규정에 의하면 올스타전 출전 선수가 무단으로 불참하면 후반기리그에서 1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 선수협은 출장정지 조치가 내려지면 모든 경기에 불참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섰습니다. 프로야구가 자칫 파국의 위기에 봉착한 것입니다.
결국 7월 10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각 구단 사장단이 ‘무기한 보류’는 철회하고 KBO가 나서서 선수협과 협상해 올스타전을 제대로 치르게 하고 10구단 창단도 위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KBO는 고심 끝에 10구단 창단 일정을 제시해 내년 초에 10구단 창단 신청 팀을 선정하겠다고 밝혀 가까스로 진정됐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이사회 결정을 따라야 하므로 그때 가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지 의문은 남습니다.
삼성이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이유는 신청한 연고지 수원에서 새로운 팀이 나오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원과 전북 두 군데 중에서 현재 상황은 수원이 유리한데 수원 연고팀을 지원할 대기업이 CJ 그룹으로 소문나면서 삼성이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CJ 그룹은 삼성가이지만 최근 재산 상속 문제로 충돌을 빚고 있고 수원은 현재 삼성전자가 자리잡고 있어 ‘수원=삼성전자’라는 그동안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주기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소문입니다. 이 소문은 그래서 삼성측 그룹 고위층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10구단 창단에 반대하고 삼성의 힘으로 다른 대기업에도 종용해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기존 구단이 늘어났다고 부연 설명합니다.
40년 가까이 현장 취재를 하고 있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야구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10구단이 창단되어야 합니다. 9구단을 만들어 홀수 체제로 리그를 운영하면 국내 프로야구는 경기력과 흥행이 현저히 저하돼 야구 인기가 뒷걸음질칩니다. 이사회가 9구단 창단을 승인하고 이미 엔씨소프트 팀이 생겼으면 리그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9구단 체제는 한국야구 발전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이사회 사장들도 누구나 야구 발전을 위해서 이사회를 구성했을 것입니다. 재벌-대기업의 힘으로 탄생한 한국프로야구이지만 이제는 야구인과 팬들에게 내맡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만들지만 애들이 커지면 믿고 지켜보는 게 부모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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