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8월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에게 격려를
말복이자 입추인 지난 8월 7일은 절기상 무더위의 끝자락이었지만 찜통 폭염이 이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모처럼 저녁에 돼지 갈비를 들면서 화제는 자연히 런던 올림픽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진종오가 권총에서 후배 최영래에게 마지막 발에 극적으로 역전시켜 2관왕에 오른 것은 그가 8년 전 아테네 올림픽 1위를 달리다 결선 7발째에 큰 실수를 해서 은메달에 그친 것을 보더라도 경험이 중요하다는 뒷이야기, 도마에서 양학선이 신기술을 선보이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거짓말처럼 실수 없이 착지해 최고의 점수로 체조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게 화제였습니다. 그리고 펜싱에서 우리가 메달을 기대 이상 땄지만 유럽 텃세에 오심 판정으로 신아람이 결승 진출이 좌절돼 한참동안 펜싱장에서 울던 장면, 그러나 남자단체전과 김지연이 사브레에서 깜짝 금메달을 잇따라 따낸 사연, 그레코로망 레슬링에서도 편파 판정으로 메달이 날아간 이야기 등이 끝없이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벌어지는 남자축구 4강전 한국과 브라질의 대결, 여자 핸드볼 한국-러시아의 8강전, 여자 배구 한국-이탈리아의 8강전에 대해서 스포츠 기자인 필자에게 예상을 묻기에 “오늘 밤에 열리는 경기가 흥미롭겠지만 한국이 세 게임 전부 질 것”이라고 전문가(?)인 척 했습니다. 결과는 축구가 브라질에 0-3으로 패해 예상이 맞았지만 세계 랭킹 14위인 우리 여자 배구는 랭킹 4위인 이탈리아를 3-1로 누르고, 여자 핸드볼에서는 세계 랭킹 8위인 우리가 2위 러시아에 24-23, 진땀나는 승부 끝에 한 점차로 이겨 각각 4강에 진출했습니다. 36년 경력의 스포츠 기자로서 예측이 세 개 중 둘이나 틀린 것입니다.
며칠 후 11일 새벽 열리는 일본과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 대해서도 동네 분이 묻기에 이번에는 “승패는 반반입니다. 연고전처럼 전력 외에 당일 컨디션과 정신력이 작용하는 게 커 미지수다” 면서도 “사실은 우리가 조금 기웁니다. 1년 전 삿보로에서 대표팀끼리 맞붙은 한일전에서 0-3으로 완패해 그 차이를 극복하기가 아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초를 쳤습니다.
결과는 ‘병역 기피’ 문제로 비난을 받던 와일드카드 박주영이 전반 38분에 단독 찬스에서 일본의 네 선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선제골을 차 넣어 새벽 4시 넘어 온 동네 아파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주장으로 제2의 박지성처럼 활발하게 뛰며 부지런히 동료들을 독려하고 떠들던 구자철이 후반 11분에 멋지게 차 넣어 2-0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또 한번 전문가의 예상이 빗나가며 어느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펠레의 저주’라는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세계 축구의 전설 브라질의 펠레(72)가 FIFA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와 관련하여 한 예측은 정반대로 실현된다고 믿어지는 징크스를 말하는데 그가 예상한 대회 우승 후보팀들은 언제나 탈락하거나 우승하지 못하는 반면, 펠레가 혹평하거나 탈락할 것으로 언급한 팀들은 선전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대표팀과 관련해서도 엉뚱한 예상을 해서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2006년 서독 월드컵 직전에, 펠레는 대한민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만 결국은 1승1무1패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졌습니다. 반대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 아르헨티나를 16강 진출팀으로 꼽고 같은 조에 있는 대한민국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펠레의 징크스에 익숙한 한국의 네티즌들은 믿지 않았고 결과는 1승1무1패, 조 2위로 16강에 올라갔습니다.
일반 스포츠 언론인보다도 예측 확률이 높다는 도박사들도 런던 올림픽에서는 손해를 많이 봤을 것입니다. 영국과 유럽의 주요 베팅 업체들은 축구 한일전에서 일본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배당률은 숫자가 낮을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데 베팅 업체 스카이배트는 배당률을 일본의 승리에 2.5배, 한국의 승리에 2.75배를 걸었습니다. 윌리엄 힐도 일본 2.38배, 한국 2.62배의 배당률을 책정했습니다. 한국의 승리를 예상한 건 한국의 스포팅인덱스가 유일합니다. 한국은 8강전에서 '축구종가' 영국을 이기고 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했습니다. 도박사들은 FIFA 랭킹 4위 영국이 4강전에서 브라질과 대결할 것이라고 지레 준비하면서 스카이배트는 배당률을 영국에 1, 한국에 2.4로 책정했고 비윈도 영국의 배당률을 1.91배, 한국은 3.90배로 매겼습니다.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영국을 꺾고 4강에 진출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축구대표팀은 ‘도박 파괴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한국 전체 선수단의 금메달 개수 예상도 영국 대표 베팅 업체 윌리엄 힐과 스카이배트는 6개로 예상하면서 양궁 3개(남녀 단체ㆍ여자 개인), 유도 2개(왕기춘ㆍ김재범), 사격 1개(진종오)가 나올 것이라고 봤습니다.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를 따내 종합순위 5위로 마감해 당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목표로 정한 ‘10-10’도 금메달은 3개, 종합순위는 5등이나 추월하는 호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사상 유례없는 찜통더위 속에 17일간 벌어진 런던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메달은 따내지 못했으나 감동을 안겨 준 역도의 장미란과 여자 핸드볼,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의 분전과 눈물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 한국 경보의 에이스 ’ 박칠성은 육상 남자 50km 경보에서 자신의 종전 한국기록을 깨뜨려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또 마지막 날 벌어진 근대 5종에 출전한 정진화는 한국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과 타이 기록을 세우며 36명 중 11위에 올랐습니다. 이 종목에 함께 출전한 황우진은 펜싱과 수영을 마치고 세 번째 종목인 승마에서 말에서 떨어져 깔리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으나 다시 말에 올라 승마를 마치고 절룩거리면서도 마지막 종목 사격과 크로스컨트리 복합 경기에 나서 결국은 가장 늦게 경기장에 골인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그를 발견한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더군요. 얼마 전까지 은메달 또는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실망과 좌절감에 고개를 떨구고 마치 죄라도 지은 듯 송구스러워 하는 모습이 이번에는 그다지 나타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해 보기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개최할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그리고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런던 올림픽보다 멋진 대회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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