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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선수는 부모와 코치, 그리고 악기가 만든다

제주한라병원 2012. 6. 15. 14:29

 

2012년/5월

“프로야구 팬 이십니까?” “그럼 마쓰이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상상해보신 적 있습니까? NBA의 노비츠키가 바이올린를 켜는 모습을 생각해보신적 있습니까?” ‘고질라’로 불리우는 마쓰이나 2m 13cm의 거인 노비츠키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좀처럼 머리에 떠올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스포츠와 음악, 미술 등 예술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정신적으로 커다란 보탬이 된다는 사례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습니다. 빈민촌에서, 우범지대에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운동을 가르치고, 악기 연주를 배우게 하거나 미술품을 전시하면 우중충했던 그 지역이 활기가 넘치고, 범죄가 줄어들고, 아이들 공부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익히 세계적으로 널리 성공하고 있습니다.


프로 스프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선수 중 가장 기량이 빼어난 선수들의 모임인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뛰어난 인재는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워 일가견을 이루는데 도움을 받은 선수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그 선수가 어릴 적부터 가정 교육이 충실한 가운데서 자라거나 훌륭한 코치를 만나면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어난 선수로 꼽히고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는 선수 중 한 명인 마쓰이 히데키(38)는 일본은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유명한 강타자입니다. 생김새가 투박하고 몸집은 188cm, 99kg으로 우람하게 생겼다고 해서 그의 별명은 ‘고질라’입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10년간 명문팀 요미우리 자이언트에서 뛰면서 홈런을 332개, 안타는 1,390개, 타율은 3할4리로 장타와 정확한 타격 솜씨로 최고의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가 활약하는 동안 요미우리는 센트럴리그 우승을 4차례, 일본시리즈 패권은 3번 차지하는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LA에인절스로 옮긴 후 양키스 방문경기에서 홈런을 날린 마쓰이.


2002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두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 명문팀 뉴욕 양키스와 3년간 2,100만 달러에 계약하고 3번타자나 5번타자로 활약하며 2006년부터는 4년간 연봉 총액 5,200만 달러(한화 572억원)의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마쓰이는 양키스에서 2009년까지 뛰고 그후는 나이가 들어 기량이 사양길에 들면서 LA 에인절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등에서 활동하다가 빅리그에서 받아주지 않자 선수생할을 계속하고 싶어 올해부터는 마이너리그 탬파베이 베이스에서 연봉 40만 달러로 뛰고 있습니다. 빅리그 9년동안 마쓰이는 홈런을 173개를 날려 미일 통산 500개를 넘었고 1,239개 안타로 타율은 2할8푼5리, 795타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국내외의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남몰래 빠짐없이 의연금을 내“있을수록 낮추고 베풀어야 한다”는 부친의 가르침의 영향이 큽니다. 마쓰이는 이시카와현 노미군에서 종교법인 교회의 주교인 아버지 마쓰이 마사오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를 6살 때부터 익힌 마쓰이는 초등학교 시절 선배들로부터 “너무 잘 친다”는 원성을 듣고 ‘핸디캡’을 주기 위해 왼쪽 타석에 들어선 것이 좌타자가 된 계기가 됐습니다.


 마쓰이가 중학생 때 식사자리에서 무심코 친구 험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욕을 하는 것만큼 역겨운 일은 없다.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바로 여기서 다짐해라.” 마쓰이는 “그때 이후 다른 이의 험담을 단 한 번도 안 했다”고 말합니다.


프로에 진출한 마쓰이가 약관 스무 살에 최연소 4번 타자가 돼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을 때 고향 집에 돌아온 그는 구름처럼 몰려든 취재진과 팬들을 쭉 한 번 둘러보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집 안에 들어온 마쓰이는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엄한 질책을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야구라고 하는 너의 극히 일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지, 너라는 인간 전체를 평가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너의 조금 전 태도는 명백히 오만함이 섞여 있었다.” 마쓰이는 고개를 조아리며 반성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백 번 옳습니다. 그런 말씀을 꺼내시기 힘드셨을 텐데…, 너무나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마쓰이는 주위의 아이들에 비하면 한층 더 몸이 크고, 어느 쪽인가 하면 튀고 싶어하는 사람의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인 형과 ‘마이 웨이’를 연주할 정도의 솜씨를 갖고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 등 클래식 음악을 즐겼으나 프로선수가 된 후에는 피아노를 연주할 기회가 없어져 아쉬워합니다.

디르크 노비츠키(34)는 독일에서 태어나 프로 생활을 하다가 세계 최고 플레이어들이 뛰는 미국 NBA로 옮겨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탤러스 매버릭스의 파워 포워드입니다. 노비츠키는 독일의 뷔르츠부르크에서 운동선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 헬가는 프로농구선수였고, 그의 아버지 조르게 베르너는 독일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습니다. 그의 누나 실케는 육상선수출신으로 농구선수였다가 지금은 NBA 케이블 TV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키가 엄청나게 커 농구를 배운 노비츠키는 15살 무렵 전직 독일 농구 국가대표 선수인 게쉬빈드너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개인교습에 나선 게쉬빈드너는 노비츠키의 더욱 완성된 인격을 만들기 위해 그에게 악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문학 서적을 읽을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습니다. 독일 국가대표 선수와 유럽 최고 선수가 된 노비츠키는 1998년 스무살의 나이에 세계농구 최고 무대인 미국 NBA 밀워키 벅스에 지명됐다가 바로 3각 트레이드에 의해 댈러스에 입단했습니다. 독일인으로는 4번째 NBA 선수입니다. 노비츠키는 댈러스를 11년 연속 NBA 플레이오프로 이끌어왔고 2003년과 2011년에는 컨퍼런스 파이널에, 2006년에는 파이널에 진출 시켰습니다. 그는 NBA 올스타와 ALL NBA팀에 각각 10번씩 뽑혔습니다. 그리고 NBA역사에서 MVP를 수상한 첫번째 유럽출신 선수입니다. 2010-11시즌 결승전에서 마이애미 히트를 꺾고 매버릭스를 승리로 이끄는 데 공헌해 MVP가 됐습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프로스포츠 선수가 돼서 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운 선수들에게 어릴 때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 보십시오. 경기를 하면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배운 게 그에게 더 한층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음악을 익힌 사람은 그의 몸을 부드럽게 움직일 줄 알고 유연하게 놀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운동선수들은 거친 경쟁 속에서 이겨내야 하는데 음악을 체득한 사람은 험한 사회에서 극복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또 프로스포츠 사회는 술과 환락에 빠질 수 있고 돈의 유혹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부모나 코치의 가르침을 받고 음악을 아는 선수라면 이런 유혹을 이겨내기가 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