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슬픈 사랑의 전설과 에로틱 조각상의 성지 카주라호
▲ 카주라호 사원으로 지는 일몰은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환상적인 오로차성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달의 신 찬드라와 과부 헤마바띠의 슬픈 사랑이 녹아 있는 카주라호로 향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 사원의 기둥과 벽에 미투나상으로 새겨진 카주라호. 그들의 애틋한 사랑은 천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드넓은 카주라호를 메우고 있다.
남녀 교합상으로 유명한 카주라호는 인도의 여느 도시와는 달리 고급 호텔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종교와 건축을 연구하는 학자에서부터 일반 관광객들까지 카주라호의 명성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미투나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은 사원 외벽에 조각된 남녀 교합상을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외설적이라며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찬델라 왕국에 의해 건축된 수많은 사원과 그 사원들에 장식되어 있는 미투나상에 대해 “모두 부셔 버리고 싶다.”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예술적인 조각상이라며 탄성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것이 외설이든 예술이든 중요한 것은 천 년 전 찬델라 왕조가 무슨 이유로 사원의 외부장식을 낯 뜨거운 조각상으로 채웠는가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미투나상이 새겨진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탄트리즘을 강조하는 힌두교 때문이라고도 하고, 남녀 교합상을 보고 처녀인 천둥과 번개의 신이 부끄러워 사원을 부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도 주장한다. 또 남녀 교합상은 요가를 수행하는 명상가들의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행자들이 야한 조각상을 보고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금욕적인 성찰을 하도록 미투나상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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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암에 정교하게 새겨 넣은 미투나 상은 인도의 또 다른 미학을 보여준다. |
붉은 태양에 물든 카주라호의 미투나 상이 너무나 아름답다. |
천 년 전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카주라호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카주라호의 풍경은 지극히 소박하다. 시골마을처럼 작고 아담하며 한적하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달리는 외국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유유자적한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카주라호이다.
사원은 도시를 중심으로 동쪽, 서쪽, 남쪽의 세 방향으로 흩어져 있는데, 사원의 핵심은 서쪽에 있는 사원 군群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무려 85개나 되는 사원이 수도 카주라호를 가득 메웠지만 지금은 22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인구 5천여 명의 작은 촌락이지만, 찬델라 왕조는 10세기경만 해도 인도에서 세력이 강대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왕조 가운데 하나로, 북인도 대부분을 지배했다. 한때는 마디아프라데시 주 전역을 다스릴 만큼 커다란 세력을 형성했지만, 결국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전성기 시절에 지어졌던 대부분의 힌두 사원은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화려한 조각상들이 꿈틀대는 카주라호에는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천상계에서 사는 달의 신 찬드라는 어느 날 인간계의 아름다운 여인 라지푸트의 과부 헤마바띠를 사랑하게 된다. 급기야 찬드라는 매일 저녁 그녀를 내려다보며 가슴 시린 사랑을 키우기에 이른다. 어느 날 헤마바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찬드라는 달 밝은 밤 조용히 인간계에 내려와 헤마바띠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찬드라는 첫 닭이 우는 새벽녘 이슬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는데, 그때 찬드라는 헤마바띠에게 “앞으로 당신은 아들은 낳을 것이고, 그 아이는 훌륭한 왕이 되어 수많은 사원을 지을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다. 그렇게 떠난 찬드라를 그리며 헤마바띠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찬드라의 예언처럼 그녀는 찬델라 왕조의 시조 ‘찬드라뜨레이야’를 낳는다.
달의 신 찬드라와 과부 헤마바띠의 애절한 사랑이 스며 있는 서쪽으로 발을 내딛자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와 사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구에서 좌측으로 락쉬마나 사원이 있다. 서쪽 사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락쉬마나는 힌두의 신 비슈누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원이다. 락쉬마나는 이 지방의 사원 가운데 사원 건축양식을 제대로 갖춘 최초의 힌두 사원으로, 성인 남성의 키보다 높은 기단 위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탑의 모양은 화려했던 찬델라 왕조의 명성을 느끼게 한다. 사각형의 기단 벽에 새겨진 다양하고 섬세한 조각상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물론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미투나상이다. ‘말과 성행위하는 남자와 그를 지켜보는 여인상’은 기막힌 웃음을 자아낸다. 서쪽 사원을 대표하는 칸다리야마하데브 사원은 본격적으로 미투나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이 사원은 서군 중에서도 그 높이가 가장 높고, 미투나상이 9백여 개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인도 관련 서적의 표지를 장식하는 교합상의 대부분은 이 사원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남녀 교합상의 요염한 자태는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기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탄트리즘의 영향을 받은 카마수트라의 성애 기교와 그 자태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교합상은 외설을 뛰어넘어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가온다. 물론 단순히 조각상이 그려 내는 행위만을 보게 되면 야한 3류 잡지의 그것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미투나상의 본질적인 내용과 조각 상태, 완성도 면에서 접근하면 카주라호의 미투나상은 찬란한 예술의 꽃으로 느껴진다.
풍만한 젖가슴과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엉덩이, 잘록한 허리 그리고 매혹적인 눈매 등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조각상에 사로잡혀 점점 더 깊숙이 사원 내부로 들어갈수록 미투나상은 더욱더 현란해진다. 붉은 석양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날 때면 금방이라도 조각상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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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카주라호 마을의 풍경 |
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 |
찬델라 왕조의 수준 높은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조각상 |
사람들이 미투나상을 외설이 아닌 예술로 보는 이유는 힌두의 신과 인간의 영적 연결고리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원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이러한 곳에 인간의 성행위 모습을 새긴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남녀의 성행위는 우주의 결합이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서로 다른 세계의 합일은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개체의 탄생을 의미하고, 그 개체는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카주라호에 새겨진 모든 조각상은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욕망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초월해야 하는 인간의 욕망까지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힌두교라는 종교와 연결된 미투나상은 인간과 신, 욕망 끝에 오는 허무주의, 허무주의를 딛고 일어선 새로운 희망, 고통과 한계상황에서 벗어난 해탈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것이다.
미투나상의 종교적 뿌리는 7~8세기경 인도 중북부를 강타한 탄트리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탄트라에는 우도右道 탄트라와 좌도左道 탄트라가 있는데, 그 중에서 인간의 욕망을 욕망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좌도 탄트라가 바로 카주라호의 미투나상으로 표현되었다. 좌도 탄트라에서 남성은 자비의 화신이요, 여성은 지혜의 화신으로, 자연의 절대적인 힘은 남녀의 성적 합일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었다. 남녀가 서로 얽히고설켜 해탈로 가는 수행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한 것이 바로 탄트리즘이다. 남녀 성행위의 극단적 방법으로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을 얻고자 한 좌도 탄트리즘은 13세기까지 인도에서 유행했다. 좌도 탄트라들은 인도에서 가장 엄격하게 중시되는 카스트 제도를 무시했다. 남녀가 한 장소에 모여 고기와 술을 먹으며 성행위를 일삼는데, 이때의 계급은 그들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적인 목적을 바탕으로 형성된 미투나상은 찬델라 왕조의 힘을 배경으로 카주라호에서 화려하게 그 빛을 발한다.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카주라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찬델라 왕조의 위대함이 미투나상에 아로새겨져 있다. 서군 사원에 마련된 안내 표시판을 따라가다 보면 사원의 유래와 의의를 쉽게 알 수 있다. 좀더 꼼꼼하게 기단과 탑을 살핀다면 후대에 재건축된 사원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곳은 벽돌의 이음새를 다른 곳에서 사용했던 돌로 재보수했고, 전쟁의 상처에 검게 그을린 미투나상도 볼 수 있다. 보통 관광객들은 오전에 카주라호 사원을 방문한다. 하지만 카주라호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오후 3시 이후 태양이 남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돌린 시간이 적기이다. 금방이라도 세상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미투나상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 또한 탑 사이로 붉은 태양이 걸리면 카주라호의 일몰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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