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크메르 왕국의 꿈과 희망이 스며 있는 앙코르 유적
▲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된 앙코르 왓.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중국 시안의 병마용 등은 3000여 년이 넘는 찬란한 역사와 함께 고대 선진문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소중한 인류문화유산이다. 그 이외에도 페루의 마추픽추, 영국의 스톤 헤지 등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이 시공간을 달리하며 신비로운 전설을 가득 품은 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캄보디아 밀림지역에서 발굴된 크메르 왕국의 앙코르 유적은 인류유산에 한 획을 긋는 신기원을 마련하였다. 미얀마 바간의 수천 여개의 불교사원군과 더불어 동남아시아 최대 사원 건축물로 꼽히는 앙코르 유적은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마치 야외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이 거대한 유적지는 한마디로 인간의 솜씨로 일궈낸 거대한 예술품이다. 802년에서부터 1220년 사이에 크메르 족에 의해 지어진 앙코르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다양한 인류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느 누구나 앙코르 유적지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돌아온 것 같은 상상에 빠진다.
|
|
| ||
폐허의 분위기가 연출되는 따 프롬 사원 |
거대한 스펑나무에 의해 사원이 점점 파괴되고 있는 따 프롬 사원 |
200여 개의 사람 얼굴이 새겨진 바욘 사원 |
그럼, 크메르 왕족은 무슨 이유로 울창한 숲 지대에 거대한 사원을 짓고 살았을까? 명확한 답을 보여주는 문헌적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큰 유적을 섬세한 건축기술을 바탕으로 예술로 승화시킨 크메르 왕족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앙코르 유적에 대해 기록역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은 앙코르 유적을 걷고 있노라면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큰 화두가 된다.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왜 이곳을 크메르 왕국의 수도로 삼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아주 분분하다. 어떤 학자는 앙코르 유적지가 군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땅이 왕국의 수도로서 적합하기 때문에 이곳에 수도를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앙코르 사원군의 지리학적 위치와 사원들의 배치는 고대의 천문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세워진 제국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결과 앙코르 사원들의 천문학적 위치는 기원전 10,500년 경 춘분(春分) 때, 용의 별자리를 그대로 반영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천문학적 배열을 앙코르 건축에 적용한 이유는 지구와 우주의 행성들과의 조화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정통파 고고학자들은 앙코르의 유적지를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왕들이 신과 자신들을 위해 건축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사원은 왕을 경배하기보다는 신에게 예배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틀림없다. 우주 행성들의 나란한 배치와 커다란 3차원의 얀트라(명상할 때 쓰는 도형)모양의 구조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종교예술로 장식된 앙코르의 사원들은 해탈하고 싶은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이처럼 학자에 따라 앙코르 유적의 탄생 배경은 저마다 달리한다. 그렇게 때문에 21세기 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곳은 최첨단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 1000년 전 인공호수로 만들어진 바라이 호수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신비한 고대도시 앙코르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도시가 먼 옛날에 신이 만든 도시라고까지 말했다. 몇 세기의 세월을 다시 보내며 이런 이야기들은 전설이 되었고 순례자들은 이 신비로운 신의 도시를 향해 순례여행을 시작했다. 소수의 유럽출신의 탐험가들이 앙코르의 유적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정글 속에 버려진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골동품 애호가들 사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사암으로 축성된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861년 프랑스 출신의 박물학자 앙리 무어에 의해서다. 그는 문화 탐사단을 이끌고 영화 인디아나 존슨에서 ‘최후의 성배’를 찾듯이 황폐한 밀림에서 크메르 왕국이 세운 전설의 도시 앙코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908년에 이 고대도시에 매료된 프랑스 인들이 기금을 조성해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복구 작업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나 군부세력이 고고학자들을 유적 근처에 살지 못하도록 하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
|
| ||
자유와 낭만이 흐르는 올드 마켓 |
캄보디아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재래시장 |
해맑은 미소를 지닌 동자승들의 모습 |
아스라한 크메르 왕국의 옛 영광이 스며 있는 앙코르 유적지에 들어서면 마치 인디아나 존슨 영화에 등장인물처럼 어디에선가 보물을 찾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에 젖어 든다. 유적지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스펑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곳은 한 편의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늘어진 스펑나무의 뿌리들은 딱딱한 돌 틈을 파고 들어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앙코르가 말끔하게 단장된 다른 유적지와 달리 황폐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이 이곳을 더욱더 신비한 유적지로 연출한다. 바람에 실려 온 작은 홀씨 하나가 수백 년 시간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뒤 인간이 쌓은 거대한 건축물을 보기 좋게 부셔버린 자연의 순리. 사람 몸체만한 돌은 나무뿌리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힌 모습은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지혜도 한 갓 몸부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앙코르. 이런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밀림 속에 인류유산은 오늘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크메르 왕족이 500여 년 동안 수도로 삼았던 앙코르는 태국 아유타야에 정복되기까지 찬란한 문화의 꽃이 자랐던 곳이다. 비록 밀림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갇히고, 자연에 의해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고 폐허가 됐지만 앙코르에 스민 크메르인들의 삶의 지혜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앙코르 톰을 수도로 삼았고 그 안에 아름다운 바이욘 사원을 지은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이 사원을 짓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의 선을 이루기 위해, 인간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신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나는 존재의 바다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모두 구원하고자 선한 일을 하노라...”. 불교 신자였던 자야바르만 7세는 어리석은 중생을 구원하고자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밀림 속에 자신의 꿈과 이상의 도시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뜨거운 열정이 자연의 순리가 지배하는 밀림 속에서도 살아남게 한 이유가 아닐까? 아마 앙코르 유적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기술을 자랑하는 앙코르 왓이나 불교의 향기가 가득한 바이욘 사원,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에게 헌정한 따 프롬 등을 둘러보면 크메르인들의 삶의 열정과 그들의 수준 높은 문화의식을 금방 알게 된다.
▲ 자야바르만 7세 때 건립된 바욘사원
'병원매거진 > 이태훈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사랑의 전설과 에로틱 조각상의 성지 카주라호 (0) | 2012.05.03 |
---|---|
모래땅 위에 핀 노란 민들레, 샤메 사원 (0) | 2012.05.02 |
문화의 도시 그리고 세계의 도시 (0) | 2011.10.13 |
루드비히 2세의 영혼이 스민 곳 (0) | 2011.10.13 |
아드리아해의 '작은 베네치아' (0) | 2011.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