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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문화의 도시 그리고 세계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1. 10. 13. 11:43

2009년 / 8월

찬란한 1000년의 역사를 딛고 세계의 도시로 성장한 베이징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던 주경기장. 

일명 ‘새 둥지’라고 불리는 주경기장의 아름다운 모습 

박태환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수영장. 

 

중국 여행의 관문인 베이징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의 도시다. 화베이평야 북쪽 끝에 똬리를 튼 베이징은 춘추 전국시대 연(燕)의 수도였으며, 그 후 요(遼)·금(金)·원(元)·명(明)·청(淸) 나라 등을 거쳐 중화민국의 진정한 수도로 도시 곳곳에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쉰다. 또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국제도시로 발돋움한 베이징은 선현들이 남긴 훌륭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현대식 고층빌딩과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이 서로 공존하며 세계적인 도시로 급성장한 중국 최대의 도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마르코 폴로는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원나라의 수도였던 베이징에서 25년 동안 머무른 뒤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저서 동방견문록을 통해 이 도시를 ‘칸발릭(Khanbalik)’이라 표현하며 이곳의 호화로운 생활을 소개했다. 현재 베이징의 이름은 명나라가 수도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부터 정식으로 ‘베이징(北京)’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흔히 징(京)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베이징은 인구 1000만 명이 오롯이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도시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중국의 미래의 자화상이 그려지는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자 중화사상의 근본이 되는 곳이다.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베이징의 모습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정도로 격변하고 있다.

 

 

왕푸징 거리는 전갈, 지네, 새우, 고기 등 다양한 꼬치 요리들을 먹을 수 있는 베이징의 명소이다. 

서태후가 너무나 사랑했던 이화원의 오후 풍경 


청나라 말기의 이미지는 높은 빌딩 숲 사이로 숨겨지고, 웃통을 벗고 살던 남자들의 모습과 거대한 자전거의 물결은 눈에 띄게 사라진지 오래다.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베이징은 더 이상 낙후된 과거의 도시가 아닌 다이내믹한 요소들이 도시 곳곳에서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장대한 長江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거대한 베이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가 시민들의 DNA를 통해 유전되고 있다. 그 정체성의 중심은 베이징 시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톈안먼(天安門) 광장과 중국 황제의 삶의 애환이 스며 있는 자금성 그리고  만리장성, 천단, 명 13릉, 이화원 등의 세계문화유산들이다. 중국이 아무리 역동적으로 변화무쌍하게 변화되고 있지만 이들 유적지는 베이징 시민뿐 만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매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무리 개방정책으로 베이징이 급변하고 있지만 톈안먼 광장과 자금성은 요지부동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중국인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톈안먼 광장은 중국 공산주의에 반기를 든 민주화의 성지로 생각하지만 이곳은 명나라 시대 때 조성된 자금성의 일부분이었다. 원래 광장 한가운데 ‘대청문(大淸門)’이라는 큰 문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마오쩌둥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이른 아침 높은 하늘위로 계양되는 오성기와 죽은 마오쩌둥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 수천 명의 중국인이 새벽부터 광장을 가득 메운다. 이처럼 톈안먼 광장은 베이징 여행의 1번지라 할 만큼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그리고 톈안먼 광장을 지나 9,999개의 방이 있는 자금성으로 들어서면 중국의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다.

 

1420년에 완공된 자금성은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궁궐이다. 14년 동안 100만 여명의 장인들이 빚어놓은 황제의 궁은 눈과 입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의 마음을 압도한다. 세계문화유산답게 귀족적이고 우아한 품격을 지닌 자금성은 1911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가 물러나기까지 24명의 명․청 황제가 머물렀던 황궁이다. 두께 6미터가 넘는 오문(午門)를 지나면 나무 한 그루 없는 자금성의 내부가 일직선으로 펼쳐진다. 나무를 심지 않은 이유는 황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자객이 성 내부로 침입하면 벽돌로 쌓은 바닥에서는 경쾌한 소리가 나고, 나무 한 그루가 없어 필할 곳이 없는 자객은 금방 잡히도록 한 것이 자금성의 보안장치이다.

 

 

중국인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대표하는 만리장성.

 

하지만 자금성이 세계에서 가장 큰 궁궐이지만 베이징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이미지는 만리장성이다. 흔히 달에서 보인다는 만리장성에 오르면 천하를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 마오쩌둥은 “남자로 태어났다면 만리장성을 꼭 한 번 올라보라”고 말했다. 물론 만리장성이 베이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인 가욕관이나 동쪽 끝인 산해관에 가도 장성은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도인 베이징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된 팔달령 장성, 거용관 장성, 사마대 장성 등은 중국 만리장성 중에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고 가장 좋은 경치를 자랑한다.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십만 명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장성이 이제는 베이징 최고의 여행 중심지로 발돋움 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중에서도 베이징에서 80km정도 떨어진 팔달령 장성은 케이블카를 타고 9부 능선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장성 위에 오르면 발아래로 짙푸른 숲과 산등성이를 따라 구절양장으로 이어진 만리장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벽돌로 쌓은 장성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마오쩌둥의 말처럼 장성을 따라 걷는다. 대략 3-4시간 정도 장성을 걷다보면 콧잔등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마음은 중국 황제가 된 것처럼 풍요롭다. 한족의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룬 진시황제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만리장성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2700km나 되는 만리장성은 중국 최대 토목사업 중에 하나다. 산 능선을 따라 건축한 이 장성은 시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중국을 지켜주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렸던 천단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황금빛의 지붕이 아름다운 자금성. 


진시황제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만리장성을 완벽하게 구축했다면, 중국인에게 가장 미움을 받고 있는 서태후의 이화원은 세상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만리장성과 더불어 중국 최대 토목사업으로 손꼽히는 이화원은 현존하는 최대의 별궁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서태후는 청나라 함풍제의 후궁으로 자금성에 들어와 동치제와 광서제의 섭정을 통해 중국 대륙을 막후에서 호령했던 실세였다. 그녀는 자금성에서 지내는 것보다 이화원에서 세월을 보내며 청왕조를 좌지우지했다. 750년간 황제의 정원이었던 이화원을 서태후가 머물면서 6만 명의 인부를 동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호수로 만들었다. 그녀는 전쟁준비 자금을 인공호수 이화원을 만드는데 모두 사용했다. 여의도 광장의 10배가 넘는 호수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호수 옆에는 인공호수를 만들면서 퍼 낸 흙으로 세운 만수산이 있다. 그 이외에도 베이징에는 황제가 제천 의식을 드리던 중국 최대의 천단이 있고, 명나라 황제 13인과 황후 23인의 무덤이 있는 명 13릉 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찬란한 중국의 역사를 대변한다.

 

 

 베이징 시민들의 영원한 삶의 안식처인 천안문 광장.

자금성 주위에는 청나라 말기 때 건축된 전통가옥들이 밀집해 있다. 

광장에서 물로 훌륭한 글 솜씨를 뽐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21세기 베이징을 상징하는 뉴 랜드마크로 새롭게 태고나고 있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중국판 ‘피사의 사탑‘이라 불리는 CCTV 신청사, 베이징 제 3 공항 터미널, 국제무역센터 등은 위에서 언급한 세계문화유산처럼 또 다른 베이징의 역사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건축방식으로 건설된 주경기장과 수영장은 베이징 건축사를 새롭게 섰다. 쇠로 된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주경기장은 마치 ‘새 둥지(Bird's nest)’를 닮았다고 해서 베이징 사람들은 ‘냐오차오’라고 부른다. 높이 69m, 세로 333m, 가로 294m의 초대형 경기장은 1억 달러(1조 3천억 원)를 들여 만든 것이다.

 

스위스의 헤르조크 드 뮈롱(Herzog & De Meuron)에서 건축디자인을 맡은 주경기장은 단순히 운동경기장을 탈피해 만리장성이나 이화원처럼 장강의 도도한 물줄기에 편승하는 새로운 개념의 토목사업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처럼 베이징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상생하며 또 다른 이미지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초현대적인 왕 푸징 거리는 백화점을 비롯한 세계 명품 숍이 들어서고, 전통거리 후통에서는 청나라 시대의 고풍스런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것이 베이징의 현주소다. 과거의 이미지를 버리기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베이징 시민들의 저력은 도시 전체를 둘러보면 느끼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륙적 기질’이라는 단어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이 축적돼 형상화된 것임을 베이징을 통해 우리는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