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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땅 위에 핀 노란 민들레, 샤메 사원

제주한라병원 2012. 5. 2. 17:10

2009/11

모래땅 위에 핀 노란 민들레, 샤메 사원

 

 

하얀 눈으로 덮인 샤메의 평온한 겨울의 모습

 

살다보면 가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 그리고 또 가끔은 지나간 자리를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무기력한 생명력만 자랑하듯 앞만 보고 달린다. 이럴 때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무거운 두 발이 마음 향한 곳으로 옮겨지지 않아 늘 가슴속에 동경으로만 남아 있게 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삶의 뿌리를 찾아가며 멋진 자화상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 이르다는 말을 되새기며, 지금이라도 신발 끈 조이고 모래땅 위에 자신의 민들레 한 송이를 피워보자.
 

티베트 라싸에서 1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척박한 모래둔덕 위에 티베트 최초의 불교사원인 샤메Samye 사원이 풍파를 이겨낸 늠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이 사원은 창 지역과 더불어 전통적인 티베트의 정치적․역사적 중심지인 ‘우 지구’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라싸 중심에 있는 세라, 간덴, 드레풍 사원과 더불어 우 지구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곳을 방문할 정도로 샤메 사원이 가진 독특한 매력은 만유인력처럼 여행자들의 발길과 마음을 잡아당긴다.

 

 


배를 타고 알룽창포 강을 건너고 있는 샤메 사람들

 

 

라싸에서 체탕Tsetang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4시간가량 달려가면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 강을 건넌 뒤 미니버스를 타고 모래둔덕을 10킬로미터 정도 더 가면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샤메 사원과 만날 수 있다. 샤메 사원 가는 길은 멀기도 하거니와 수도승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나는 고행처럼 다소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물 한 방울이 아쉬운 건기에는 짙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쳐 내 몸뚱이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 힘들어지는데, 사막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이러한 삭막함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묘한 여행의 맛을 느끼게 한다. 또한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에 배를 타고 알룽창포 강을 건널 때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히말라야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듯하다.

 

 ▶ 샤메 사원에 들어서면 좌우로 긴 회랑을 따라 노란 마니차가 줄지어 있다

 

건기에는 강물이 줄어들어 수심이 낮은 곳에 모래톱이 생겨난다. 그래서 배가 직선으로 강을 건너지 못하고 구불구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되는데, 이때 알룽창포 강이 빚어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육안으로 강바닥이 보이지 않는데도 방향키를 잡은 선장은 멀리 보이는 고산들의 생김새를 보고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가끔 선장이 물을 마시거나 잡념이 생겨 물길을 놓치면 배에 탄 사람들이 긴 장대를 이용해 배를 다시 깊은 쪽으로 밀어넣는다. 이럴 때면 누가 사공이고 누가 손님인지 분간이 안 가긴 하지만 서로 어려움을 나누려는 배려가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배에 앉아 바로 손을 뻗으면 시원한 강물이 묻어나고 배가 지나간 자리로 새들이 유유자적 헤엄치며 따라오는 모습이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사막한 같은 토양을 가진 샤메의 풍경

 


 

미끄러지듯 물 위를 열심히 건너오면 삭막한 모래사구와 황량한 산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곳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2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길은 솜처럼 푹신한 모래가 두텁게 쌓여 있어 버스가 빨리 달리지 못할 뿐더러 몇 번이나 모래에 빠진 차바퀴를 삽으로 걷어내고서야 꿈에 그리던 샤메 사원에 도착한다. 선착장부터 사원까지 오는 길은 황량함 그 자체다. 온통 모래둔덕이라 풀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나무들조차 선인장처럼 날카로운 잎사귀만 달고 있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양떼들은 풀을 먹지 못해 비쩍 말라 있다.


샤메 사원은 라싸에 있는 사원들보다 외형적으로 크거나 화려한 멋은 없어 보인다. 다만,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곳에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져 있으니 묘한 신비감을 안겨준다. 샤메 사원이 티베트 최초의 불교사원임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층별 구조이다. 모두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 2층은 티베트 양식, 3층은 인도 양식, 4층은 중국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면 3미터가 넘는 커다란 붉은 문짝이 사원의 위엄을 보여주고, 입구 왼쪽엔 779년 왕명으로 불교가 티베트의 국교가 되었다는 사실을 티베트문자로 새겨놓은 비석이 있어 이 사원의 유구한 역사를 알려준다.

                                                                                                 티베트 최초의 사원답게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샤메 사원의 문


샤메의 역사는 1,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원이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8세기 후반 트리송 데첸Trisong Detsen(740~786) 왕이 지배할 때인 765~780년 사이로 알려져 있다. 트리송 데첸 왕이 집권할 무렵 샤메 지방은 불교가 발전하지 못하고 지방의 악귀들과 잡귀신들이 만연해 있었다. 그래서 왕은 이곳에서 악귀들을 물리치기 위해 불교사원을 지으려 했는데, 사원의 벽을 세우려고 하면 비바람이 일고 지진이 일어나 도저히 사원을 건립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침내 데첸 왕은 779년 인도로부터 파드마 삼바바(구린 린포체, 소중한 스승의 뜻)를 초빙해 그에게 악귀들을 몰아내고 사원을 짓게 했다. 구린 린포체는 무사히 사원을 짓고 이곳에 티베트 불교의 라마승들을 위한 최초의 승단을 세웠다.


그 후 인도에서 건너온 ‘산타라크시타Shantarakshita’라는 승려가 초대 사원장을 맡아 티베트에 불교가 싹트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인도와 중국에서 불교지식을 가진 승려와 학자들이 이 사원에 초빙되어 티베트에 불교가 뿌리내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으며, 최초로 7명의 티베트 승려들이 탄생하게 된다. 9세기 중반 들어 본교의 발전으로 사원이 폐쇄되어 버리지만, 10세기 후반에 불교가 다시 부흥하여 닝마파Nyingmapa의 중심사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가로이 겨울 햇살에 자신의 번뇌를 말리고 있는 티베탄의 모습

 

오랜 시간에 걸쳐 샤메 사원은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했으며,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1945년에 복원된 모습이다. 눈부신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노랗게 빛나는 사원 지붕은 마치 척박한 사막 땅에 핀 노란 민들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듯하다. 이것만으로도 티베트 불교 최초 사원의 상징성을 충분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정사각형 모양의 만다라식 구조로 지어진 샤메 사원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우체Utse라는 중앙법당의 기둥과 천장, 바닥 곳곳에서 천 년 묵은 오랜 향기가 솟아난다. 이 건물은 ‘메루Meru’ 산을 의미하며, 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수메르Sumeru 산과 연결되어 있는 바다와 육지, 지하계를 상징한다.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는 티베트 승려

샤메 사원은 라싸의 간덴 사원이나 조캉 사원과 달리 네모난 벽을 따라 마니차(경륜통)가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곳에서는 마니차가 한두 곳에 놓여 있지만 이곳 샤메에서는 입구 왼쪽부터 한 바퀴 돌아가며 마니차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다. 조용한 경내를 두리번거리다 보면 법당에서 성불을 꿈꾸는 어린 승려, 마니차를 돌리며 극락왕생을 바라는 신도들, 사원 앞 광장 한 귀퉁이에 앉아 따뜻한 햇볕으로 삶의 찌꺼기들을 말리고 있는 노승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단면을 느끼면서 여행자들은 샤메의 독특한 빛깔과 향기에 듬뿍 취해 본다.

 

오색의 룽다 아래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진지하고 신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