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 9월
걱정, 시름이 씻어지는 무릉도원마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
지붕높이 만큼 자란 앞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고, 그 옆에 자리 잡은 고추는 가을 햇빛을 받아 더 크고 더 붉게 영글어간다. 사이좋게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호박은 탐스럽기 그지없다.
집 앞으로 펼쳐진 벼 밭에는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는 벼들이 가을의 풍성함을 알려온다.
세상의 변천과 세월의 흐름조차 잊어버리고 산다는 별천지, 무릉도원(武陵桃源).
살기가 좋아서 걱정, 시름이 없고 오로지 행복만이 있는 곳.
아름다운 환경과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는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는 제주도에 따로 없는 ‘무릉도원’이다. 괜히 이름만 ‘무릉’이었을까.
# 노랗게 익어가는 벼는 마음의 평화를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무릉2리. 비옥한 토양의 광활한 평야와 곶자왈이 아름답게 동네를 감싸고 ‘정개밭’, ‘왕개동산’, ‘구남물’ 등 생태환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에어컨 한 대면 한여름도 한겨울로 바꿔놓고, 손가락 움직임 하나로 애써 발품을 팔아가며 돌아다니지 않아도 갖가지 물건과 식료품이 집으로 배달되는 만능주의 사회라 하지만 아무렴 사람이 배부르지 않고 행복할 수 있으랴. 의외로 사람은 단순하고 원초적인 본능이 우선적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정돈된 밭과 농작물을 보면 마냥 행복해지고, 평화로움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특히 지리적 특성상 논이 없는 제주에서 보는 벼는 더 각별하고 놀랍다. 그만큼 무릉2리 주변 밭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물론 무릉2리 외에도 한림이나 한경 등지에서도 밭벼를 재배하고 있지만 특히나 무릉2리는 주변 건물이나 길가에 내걸어진 간판 등 마을이 가진 풍경들이 1970~1980년대에 머물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서쪽 중산간 지역 경계인 무릉2리는 16번 일반국도를 접해 위치하면서 좌기동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인향동, 서북방향으로는 평지동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곳이다.
1920년까지만 해도 무릉2리는 무릉1리와 무릉리(武陵里에) 편제되었지만 인구증가에 따라 지금의 무릉 1, 2리로 분할됐다.
# 범죄 없고 대문 없고 ‘살기좋은 마을’
170가구에 540여명이 살고 있는 무릉2리가 진짜 ‘무릉도원’인 이유는 대문이 없고 범죄가 없고 자립형마을로 서로 믿고 살아가는 제주의 ‘삼무(三無)정신’이 그대로 살아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집들이 내뿜는 고즈넉한 시골풍경까지 외형상 아름다운 모습까지 나무랄 데가 없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천혜의 자연과 공존하는 것 자체가 건강비결인 이곳, 무릉2리는 범죄없는 마을로 인증까지 받은 집집마다 대문이 없는 마을이다.
도둑이나 들지 않을까 전정긍긍 하며 고민과 걱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도시와는 다르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만들어내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니 건강할 수 밖에.
낯선 이를 맞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에서 친근함과 편안함, 그리고 그 건강함이 느껴진다.
밭에서 마늘파종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다소 외소해 보이는 한 할머니 표정도 그렇게 건강했다.
건강하게 그을린 건강한 웃음은 여든이 넘은 나이를 빛나게 했다.
“걱정거리가 없는 마을이 우리 마을이에요. 다른건 몰라도 누구 누구네 집에 수저가 몇 벌, 밥그릇이 몇 개인지 훤히 다 알고 있는 곳에 도둑이 왜 있으며, 도둑이 없는데 대문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김여출 할머니(82)가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간다.
“다만 먹고 사는 걱정이 다죠. 마늘 파종을 했는데 비가 안와서 가문다거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벼가 영글지 못한다거나. 그래도 우리 식솔들만 먹는 거 좀 줄이고 씀씀이 줄이면 될 것을.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히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고 건강해지는 길 아니겠소.”
김 할머니 말마따나 무릉2리 그곳에서 숨 쉬고 있으면 지금 당장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고민도, 걱정도 모두 ‘스톱(stop)’이다.
# 소중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아는 곳, ‘무릉도원마을’
편안하고 또 편안하다. 벼를 살찌우게 하는 바람과 햇볕이 상처 입은 마음과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것만 같다.
서로를 믿으며 이웃과 어울려 햇빛과 바람과 바다와 공존한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그 감사한 마음이 가져다주는 평화가 삶의 활력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아 마땅한 곳,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마을’, 무릉2리다.
한편 생태문화체험의 장으로 변신한 옛 무릉초등학교에서는 가족단위나 단체의 생태학습과 선사문화체험, 전통문화체험, 농촌문화체험, 생태문화체험 등 50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쥐불놀이, 연 만들어 날리기, 도마뱀 잡기, 곤충관찰, 도리께 타작, 맨발로 흙 밟기, 철새 관찰과 자전거로 떠나는 생태문화 탐사, 오름 및 습지 탐방과 곶자왈 탐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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