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뭍에서나 섬에서나 그 풍경에 ‘매료’

제주한라병원 2011. 11. 10. 10:57

2010년 / 5월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 비양도

뭍에서나 섬에서나 그 풍경에 ‘매료’


제주엔 2개의 비양도가 있다. 동쪽 우도의 끝자락에, 그리고 서쪽으로는 한림읍에 또다른 비양도가 있다. ‘비양’은 분명 날아오른다는 뜻인데, 대체 뭐가 날아올라서 비양이라고 부를까.


혹자는 이런다. 두 개의 비양도는 날아오르지만 전혀 다르다고. 우도의 비양도는 ‘태양이 하늘로 날아올라서(飛陽)’ 그런 말을 붙였단다. 사실 제주도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한 그 섬이 일출을 가장 먼저 맞는 곳이다.


그렇다면 서쪽의 비양도는? 이 섬은 해가 떠오르는 걸 먼저 보는 곳이 아니라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맛이 제격이다. 더구나 거긴 ‘땅이 솟아오른 곳’이란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비양(飛揚)이라고 부른단다.

 

 

<사진 제공=제주시청>

 

 

천 년 전 땅이 솟아오른 곳

1000년전이었다. 그러니까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 탐라산에 구멍 4개가 뚫려서 시뻘건 물이 치솟아 올랐다고 한다. 5년 뒤인 목종 10년(1007년)엔 바다 가운데 산 하나가 솟아나왔다고 한다. 당시 제주 사람들은 “산이 솟아나오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벼락치는 것 같이 땅이 움직였다”고 했다. 무려 7일 밤낮 계속됐다. 역사서에 나오는 비양도는 이처럼 바다에서 솟아오른 이상한 섬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눈에 보이는 섬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섬은 아무렇게나 바다에 둥둥 떠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아닌, 사람이 생을 꾸려가는 섬이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존재로서 섬의 가치를 둬야 한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말은 외로운 존재로서의 뜻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주체로서의 섬도 된다. 정현종은 후자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섬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재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우린 섬에 들어가 안착하고, 그 멋을 즐길 수 있다.


섬에서 바라보는 섬은 참 아름답다. 협재해수욕장을 끼고 비양도를 바라볼 때 누구나 감탄을 하기에 바쁘다. 옥빛 바다에 푹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은 제주라는 섬에서 바라볼 때보다는 섬 속에 들어가 느낄 때라야 제 맛이 난다.

 

언젠간 비양도에도 ‘봄날’이

한림항 동쪽. 비양도로 들어가는 배를 만나게 된다. 이름은 ‘비양호’다. 파도가 없는 날 이 배를 탄다면 호수를 건너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캄보디아의 똔레샵 호수를 건너는 그런 분위기에 빠진다.


한림항을 출발한 비양호는 넉넉잡고 15분내에 비양항의 앞개포구에 닿는다. 비양항에선 드라마 「봄날」을 찍었다는 표지들이 사람을 반갑게 맞는다. 항내와 보건진료소 바로 앞을 비롯해 눈에 들어오는 곳곳이 「봄날」을 확인시켜두고 있다.


「봄날」이 화제가 되면서 비양도는 한 때 ‘봄날’을 맞기도 했다. 드라마에 나온 고현정의 흔적을 찾으려고 육지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건 잠시였다. 어디에도 고현정의 숨결을 느끼지 못했다. 드라마 「봄날」의 세트장을 지키지 못한 게 내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비양도는 언젠가는 ‘봄날’이 올 걸로 기대를 하고 있다. 봄날의 가능성은 비양도라는 섬의 아름다움에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제주시청>

 

 

여유를 가지며 걷기에 제격

비양도를 볼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휙’ 하고 둘러보다간 ‘휑’할 뿐이다. 여행은 기다림이며, 여유를 가져야 한다.
비양도는 앞개포구에서 만나는 보건진료소를 시작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코스를 잡으면 좋다.


학생이 3명뿐이라는 비양분교장을 지나면 ‘펄랑’이라는 못이 나온다. 못 앞에는 김씨할망당이 있다. 이 작은 섬에도 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역시 제주’라는 생각이 든다.
펄랑은 섬의 내부에 있는 못이지만 민물이 아니라 짠물이다. 내륙에 있는 사해가 짠물이라고 했듯이 펄랑도 짜다. 직접 맛을 봤더니 정말로 짜다. 어떤 이는 펄랑의 진흙이 사해의 진흙보다도 질이 뛰어나다고 한다. 지금은 펄랑의 흙을 쓰지 않지만 예전 비양도 사람들은 건축자재 등으로 쓰기도 했다. 펄랑의 흙은 집마당 진입로로, 담벽으로도, 마당에 빗물을 받아 놓는 물탱크 역할도 했을 정도였다.


펄랑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걷다보면 ‘애기 업은 돌’(이 곳 사람들은 ‘애기 밴 돌’이라고 부름)이 나타난다. 비양도를 소개하는 곳마다 ‘애기 업은 돌’이라고 돼 있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여기 사람들이 말하는 ‘애기 밴 돌’이 맞는 듯하다. 여인네의 머리칼이 휘날리고, 배가 봉긋하게 나온 형상이 뱃속에 아기를 품은 엄마가 틀림없다. ‘애기 업은 돌’은 일제 때 일본인들이 외부로 반출하려고 시도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사진 제공=제주시청>

 

 

갖가지 형상 갖춘 바위 ‘가득’

비양도에는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있다. 애기 업은 돌을 지나 큰원에 다다르면 시원함에 눈이 시려 온다. 여기서는 물의 빠짐과 듦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물이 들 때면 큰가지바위가 볼거리다. 큰가지바위는 아기코끼리가 물에 코를 처박고 수영하는 모습을 띠며, 물이 빠지면 큰원 북쪽으로 도구리여가 드러나 멀리 있는 등대를 가까이 인도한다.


이쯤이면 비양도의 해안은 둘러본 셈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코스는 비양봉 정상까지의 길이다. 비양등대까지 등산로가 뚫려 있고, 정상에는 3개의 분화구가 1000년전 솟아오른 모습을 말하고 있다.


만일 비양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남쪽 바닷가에서 제주도 서부해안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멋이다.


비양도 사람들은 험하게 살아왔다. 김씨할망당이 있는 것도 그들의 험한 삶을 대변한다. 지난 1999년만 하더라도 62세대 184명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인구 70여명의 작은 마을로 변했다. 그래도 그들은 새로운 꿈을 꾼다. 한림읍에서는 유일한 섬이 아니던가. 시인 정현종의 표현처럼 비양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가고 싶은 섬’이다.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사진 제공=제주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