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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부는, 청보리 익는 계절에 다시 오련다

제주한라병원 2011. 11. 10. 13:18

2010년 / 7월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 가파도

봄바람 부는, 청보리 익는 계절에 다시 오련다

 

 

 

 

'섬에서는 대체 육지가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각각이다. 섬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육지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도, '육지는 어드멘고'라며 시어(詩語)나 읊으면 제격인 섬도 있다. 그러나 섬에서는 한가지 정확한 답이 있다. 섬은 육지인들에게만 섬일 뿐, 섬에 사는 사람들에겐 섬이 아니란 사실이다. 섬은 살아있는 삶의 터전이며, 뭍에 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고향이기에 섬사람들에겐 '떠나고 마는' 섬이 아니었던 게다. 그들에게 섬은 떠남의 표상도, 외롭다고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도 아니다. 떠남이나 외로움은 섬 기행을 하는 우리처럼 불쑥 찾아온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말이다.

 

청보리의 섬 '가파도'

가파도. 마라도보다 북쪽에 있기에 그동안 '최남단'의 타이틀을 마라도에 내주곤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곳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청보리가 익어 가는 계절에 '가파도 청보리 축제'를 열기 시작하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청보리가 한창인 5월을 넘겨 아쉬움이 남지만 여름철에도 가파도 낭만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가파도엔 산도 없고 단애(斷崖)도 없다. 그러나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물살이 센데다, 숱한 여가 묻혀 있는 곳이라 선박을 정박시키기에 애를 먹기도 한다. 사실성은 없지만 하멜이 이 곳에 표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사람을 혼내는 곳이다.


이 섬에 사람이 산 지는 그다지 오래지 않다. 1842년에야 사람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유는 헌종 6년(1840) 영국군함 한 척이 이 섬에 상륙해 흑우를 약탈하는 사건 때문이다. 2년 뒤에 제주목사는 흑우장을 없애고, 인근 주민들에게 섬에 들어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우린 가파도를 즐기게 됐다.

 

고인돌의 천국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으로 나뉜다. 상동은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상동포구를 통해 여객선이 오간다. 상동과 하동의 중간쯤에는 가파초등학교가 있다.


가파도 사람들은 지난 1962년 개경(開耕) 120주년 기념비를 세웠다. 개경(開耕), 즉 밭갈이의 시작이 현재의 가파도를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파도는 눈에 보이는 현재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파도는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기원전후 150년전의 역사가 이 곳에 온전히 보존돼 있다. 그 옛날 생활공간과 무덤공간이 이 곳 작은 섬에 한데 몰려 있다. 발견된 고인돌만도 56개다. 고인돌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것이 고인돌이구나' 느낄 수 있을만큼 지천으로 깔린 게 고인돌이다. 특히 가파초등학교 남서쪽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규모가 아주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다양하다. 어떤 고인돌은 자연스레 밭담 역할을 하는 것도 있다.

 

 

 

즐비한 돌조각들

상동포구에 내려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큰 바위들이 사람을 맞는다. 나름대로 이름을 가진 바위들을 찾아보자.


태풍과 인연이 있는 바위가 2개 있다. 까마귀돌과 장택코왕돌은 태풍을 부른다는 돌이다. 장택코왕돌은 상동포구에서 서쪽으로 걷다보면 나오며, 까마귀돌은 하동포구에서 바닷가쪽에 있다.


얘기를 들어보자. 1974년 8월 제주해운국에서 해안 표시를 한다며 가파도에 들어와 하얀 페인트 칠을 한 일이 있다. 그 때 직원 한 사람이 까마귀돌에 올라갔다. 그 후 3일 뒤 태풍이 불었다고 한다. 장택코왕돌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육지에서 섬을 찾은 학생들이 이 왕돌에 올랐는데 갑자기 날씨가 거칠어지고 파도가 일어 배가 뒤집힌 일이 있다고 한다. 장택코왕돌은 건드리면 쓰러질것만 같은데 용케도 붙어 있다. 이 일대는 자갈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일품이다.


커다란 돌은 또 있다. 마치 고인돌이 널려 있듯 큰 돌을 해안에서 만나게 된다. 갬주리왕돌은 가파도 동쪽 해안도로변에 있다. '갬주리'는 '개미'의 방언으로, 이 곳의 모양이 개미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이들 외에도 고냉이돌, 메부리돌, 사계돌 등이 눈을 사로잡는다.

 

새로운 변화를 바라며

1962년 개경(開耕) 120주년 기념비를 세울 때만 하더라도 가파도 인구는 1316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50명도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연령 분포도 고령화돼 있다. 그나마 삶은 넉넉한 게 이 곳 주민들에겐 위안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섬을 놔둘 순 없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때다. 그들에겐 관광수요의 창출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부터 시작된 '가파도 청보리 축제'에 기대가 간다. 청보리축제가 열릴 때는 섬이 온통 푸르다. 이 때는 청보리만 보는 게 아니라 가파도의 고인돌 탐방을 비롯해 가파도의 숨은 속살을 맘껏 느끼고 갈 수 있다. 지난 2007년만 하더라도 가파도를 찾은 이들은 1만명을 조금 넘는 선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갑절인 2만400여명이 이 곳을 다녀갔다.


그래! 내년 봄, 보리가 익을 때 다시 오겠다는 기약을 할 수 있어 가파도는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