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 4월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 추자도
망망대해에 뜬 섬...변화무쌍한 모습에 매료
섬. 섬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가슴이 설렌다. 섬은 한 번 쯤 들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며,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더욱 가슴을 울리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도엔 자그마한 부속 섬들이 있다. 이들 섬도 제주도 본섬 못지않은 볼거리를 갖고 있다. 여름철을 앞두고 제주도의 유인섬을 소개한다.
<사진제공=제주시청>
세상에 모습을 내놓은 ‘섬’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섬에 간다고 하면 왜 가느냐고 한다. 고독해서 간다고 하면 섬은 더 고독할텐데 한다. 옳은 말이다. 섬에 가면 더 고독하다.”
어느 시인이 이렇게 읊었다. 그런데 왜 섬을 고독하다고 표현할까. 섬이라면 떠오르는 말은 한정돼 있다. 시인의 말처럼 ‘고독하다’ 혹은 ‘왜 가느냐’가 주를 이룬다. 왜냐하면 섬은 쉽사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세상이 변하면서 섬도 숨겨진 것들을 내놓고 있다. 제주 섬이 그랬듯, 제주 본섬에 딸린 여타 섬들도 서서히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추자도. 거리상으로는 제주보다는 전남에 가깝다. 문화도 제주와는 다르다. 폭풍주의보라도 내리는 날이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섬에 매어 있어야 한다.
“섬에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다던데요.” 이런 물음을 던졌더니 추자도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되받아쳤다. “영화에서도 쇼생크라는 감옥을 탈출한다는데 그 섬에서 탈출이야 못할까요.”
4개 유인도 등 42개 군도로 이뤄져
섬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사람이 살고 있다. 하지만 추자도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유배가사의 하나인 「만언사(萬言詞)」엔 추자도를 사람이 살지 못할 땅으로 표현할 정도였다. 조선 정조 때 추자도에 유배를 온 안조환은 「만언사」에서 추자도를 ‘천작지옥(天作地獄)’, 즉 ‘하늘이 만든 지옥’으로 표현했다. 안조환의 표현대로 폭풍주의보가 내리면 추자도에서 뭍으로 가는 걸 잠시 멈춰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옥이라고 할 정도로 메마른 곳은 아니다. 안조환이 추자도에 애정을 가지고 좀 더 둘러봤더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게다. 그만큼 예전엔 섬에 대한 대접이 형편없었다고 보면 된다.
추자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사는 부속섬이다. 면(面) 단위의 행정구역을 지닌 섬으로,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제주도 본섬에서 2시간의 여정을 거쳐야 가는 곳, 추자도.
추자도는 4개의 유인도(상․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와 38개의 무인도 등 42개의 군도로 이뤄져 있다. 추자도를 알려면 최소한 10번은 와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쉽게 찾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추자의 신양항으로 들어가든, 상추자의 추자항으로 들어가든 간에 제주에서 추자로 향할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는 섬이 있다. 일명 사자섬으로 불리는 수덕도다. 수덕도에서 10분쯤이면 배는 신양항에 닻을 내린다.
자갈로 이뤄진 아름다운 해변
추자도엔 모래사장이 없다. 대신 자갈로 이뤄진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바다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일품이다. 신양항 동쪽으로 추자10경의 하나인 ‘장작평사’가 있다. 지금은 방파제 공사로 자갈밭이 매립돼 예전의 풍경만은 못하다. 그러나 또다른 자갈해변이 있다. 신양항에서 서쪽으로 가면 파도소리에 자갈끼리 부딪히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일명 ‘모진이’라는 이 곳은 바스락거리는 자갈 소리가 일품이다. 최근에는 샤워장과 탈의장이 갖춰져 더운 여름을 이기기에 제격이다.
모진이에서 북쪽으로 틀면 작은예초라는 곳을 만나게 된다. 이 곳 역시 자갈밭으로, 일제 때 만들어진 진지땅굴도 덤으로 볼 수 있다.
<사진제공=제주시청>
천주교와 ‘황경한의 묘’
천주교 신자들에겐 추자도가 남달리 다가온다.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들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황사영의 부인인 정난주(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가 제주로 유배를 오면서 갓난 아들 황경한을 데리고 온다. 그러나 정난주는 제주까지 황경한을 데리고 갔다가는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것 같아 추자도의 ‘몰생이끝’이라는 곳에 내려두고 떠난다. 이후 황경한은 예초리 사람인 오씨의 손에서 키워졌다. 추자도의 황씨 입도조가 된 황경한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제주 바다를 굽어보고, 그 한을 풀지 못하고 추자에 묻힌다. 그가 묻힌 곳은 하추자의 동쪽 끝으로 ‘황경한의 묘’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최고 낚시터이면서 참굴비의 고장
추자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낚시터다. 갯바위 낚시는 전국에서 가장 알아준다. 이유는 섬과 섬 사이에 흐르는 조류 때문이다.
추자의 먹거리로는 홍합과 소라를 빼놓지 못한다. 좀체 구경하기 힘든 것들이지만 한 번 보면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여기서 나오는 홍합은 손바닥만하고, 속이 하얀 것은 예전 추자사람들이 해열제로 쓰기도 했단다. 전국에서 울릉도와 추자근해에서만 이들 홍합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제주시청>
여기서 나는 소라와 삼치는 일본인들이 탐내는 물품이다. 일본 사람들은 추자도 삼치를 눈으로 보면 알 정도라고 하니 정말 일품인 모양이다.
최근엔 참굴비가 추자도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젠 ‘영광굴비’가 아닌 ‘추자굴비’를 알아준다. 지난해 추자도는 정부로부터 ‘참굴비·섬체험 특구’로 지정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먹을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추자도. 그러나 추자도의 모든 것을 다 보려면 배를 타지 않으면 안된다. ‘추자10경’이 있으나 배편이 여의치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해야 할 때가 많다.
상추자에서 들를만한 곳은 등대산이다. 등대가 있다고 해서 등대산으로 불리는 이 곳은 추자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등대산을 오르는 길은 나무 계단이 맞아준다.
지난 2004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05년 12월 완공됐다. 계단은 모두 456개다. 한 발 한 발 디디며 정상에 오르면 상추자와 하추자, 추자도 주위의 군도(群島)들이 손에 잡힌다. 날씨가 좋을 때는 제주도까지 보인다.
제주도에는 하루에 2차례 섬에서 육지로 되는 곳이 있다. 서귀포시 강정에 있는 썩은섬과 함께 상추자도의 북쪽 끝에 위치한 다무래미라는 섬으로, 여기에서 ‘모세의 기적’이 펼쳐진다.
언제나 그렇듯 추자도를 딛기는 힘들다. 바람이 잦아지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후풍도(候風島)로 불렸던 추자도. 선인들의 마음을 담고 여행을 한다면 추자도는 더 멋스럽게 다가올테다.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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