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 10월
스마트폰과 엽서 한 장
최근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바로 휴대폰에 대한 것이다. 드디어 스마트폰을 구입했다거나 혹은 주문했다는 것, 그리고 스마트폰의 기능에 어떤 것들이 있으며 또한 그것이 세상에 얼마나 큰 변화를 몰고 왔으며 앞으로는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유행이 아닌 생활이며 문화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사실인 듯 보인다.
실제로 스마트폰은 이제 사람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으며, 트위터 같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와 더불어 사람들의 삶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주변만 둘러봐도 이러한 변화는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어떤 지인은 스마트폰으로 학생들이 보낸 리포트를 확인하거나 직접 메일을 썼다. 또 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어떤 친구는 스마트폰을 장만한 뒤로 컴퓨터 책상을 박차고 나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확인하거나 댓글을 달았다. 컴퓨터가 없으면 항상 불안해하던 친구에게 일종의 공간적 해방을 가져다 준 셈이다. 버스시간 확인 서비스나 은행업무 등 기존에도 가능했으나 인터넷 접속 시 드는 비용 때문에 섣불리 사용하지 않았던 기능들도 이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사용자는 점차 늘어갈 것이고, 아마 지금 이야기하는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변화가 아닌 일상 그 자체가 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내가 전혀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장점에 대해 그리고 하루 빨리 스마트폰으로 바꾸라는 연설을 늘어놓는 동안,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마치 옛날이야기나 전혀 상관없는 말을 듣는 듯 무관심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한번은 소설을 쓰는 어떤 선배가 소설가는 세상을 앞서가야 한다는 말로 내게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늘어놓으며 하루빨리 바꿀 것을 권유했다. 머리로는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순간까지도 별로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요즈음 들어 나는 지금 갖고 있는 2세대 휴대폰마저도 없애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누군가와 언제 어디서라도 바로 연락될 수 있는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이 세계는 분명 내게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했다.
현실적으로 휴대폰을 없애면 굉장히 많은 불편을 겪을 테지만, 이렇게 실시간으로 타인 혹은 일종의 사회에 연결되는 이러한 현실을 따라가기에 내가 많이 느린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통신사가 스마트폰만 서비스하는 날이 오면, 아니 그 전이라도 언젠가는 결국 나도 이러한 흐름에 올라탈 게 분명하다. 다만 지금은 그런 미래가 찾아오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고 싶은 것뿐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지속적인 권유에 일종의 반발심이 생겼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내 앞에서 노랗게 익은 갈매기살을 집어 먹은 채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그녀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어서 바꾸는 게 낫지 않겠어? 그러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간이 되어버릴 거라구.”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런 말을 건넸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대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전혀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뭐 그런 생각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참가한 어떤 문예캠프에서였다. 벌써 십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그 문예공모전은 우선 학생들이 낸 작품을 심사하여 일정 인원을 선발한 뒤 문예캠프를 진행하고, 다시 백일장을 진행해 최종 입상자를 선정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도 그 문예캠프에서였다. 나는 그때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문예공모전에 소설 한 편을 냈는데, 운이 좋게도 1차 예심을 통과했다. 캠프에 모인 학생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사이였으나, 몇몇은 다른 백일장에서 만나 이미 서로 아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와 나는 이런 백일장이 생소했고,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대화를 나누고 난 뒤로는 캠프 내내 거의 함께 행동했던 것 같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 3학년인데다 문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랑했고, 또한 대학 진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 친해지기 좋은 조건이었다는 말이다.
이 문예캠프가 계기가 되어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처럼 휴대폰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 상대방의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거나 호출기를 통해 연락을 했다. 당연히 공중전화도 자주 이용했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호출기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 오래도록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시간이 다 되어 끊겼는데 동전을 바꿀 때가 없으면 공중전화에서 제일 가까운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잔돈을 바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문학공모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대학 진학의 꿈을 나눴으며, 또한 그 시절의 감수성을 함께 공유했다. 대학 진학에 성공한 직후에는 서로에게 사실을 알려 축하를 주고받았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고등학교 때만큼은 아니지만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휴대폰이 보급되었고, 호출기는 점차 추억의 한 부분으로만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작 일 년에 한 번씩밖에는 만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의 일상이라는 것들이 있는 법이고,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지난 4년 동안은 무슨 이유였는지 만나자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다시 만난 것이다.
차를 유료주차장에 세우고 걸어나오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보자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이 지금껏 계속 변해왔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어쩐지 그녀를 떠올리거나 마주하면 마치 지난 시절의 나를 보듯 묘한 기분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쩐지 오랜만에 만난 것 같지가 않다.”
그녀가 내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던 참이니까.
“그게 좋은 거 같아. 분명 친했던 사람인데도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나면 어색해서 레퍼토리를 꺼내야 하거든.”
레퍼토리? 내가 무슨 말이냐는 듯 묻자, 그녀는 고기를 뒤집으며 대답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의례적인 말들. 잘 지냈어? 나도 잘 지냈어. 그리고 헤어질 때에는 다음에 꼭 다시 보자. 그런 말들. 딱히 진심어린 말도 아니지만, 만남이라는 형식적인 쇼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끝마치기 위해 해야만 하는 말들.”
그렇지. 씁쓸하지만 분명 그런 것들도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지.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주차장에서 본 뒤로 한 번도 어색하다거나 시간으로 인한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만나는 내내 바로 어제 만난 친구와 대화를 하듯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흐른 시간만큼 서서히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는데 문득, 오래 전 그녀에게 받은 엽서 한 장이 생각났다. 대학 2학년 때쯤인가, 그녀가 배낭여행을 하는 도중 비행기에서 엽서를 보냈던 적이 있다. 집주소를 몰라 학과 사무실로 보낸다고 했었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엽서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어떤 따스함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타국의 비행기에서 보낸 엽서가 얼마나 많은 장소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내게 도착했을까를 떠올렸던 듯하다. 정성스레 쓴 엽서가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기까지의 기다림과 그 기다림을 알기에 느낄 수 있는 보낸 이의 마음같은 것들.
내가 불콰해진 얼굴로 엽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도 생각난다는 듯 맞장구쳤다. 그때 어디를 날아가고 있었다는 둥, 그 여행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다는 둥. 그리고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그녀는 스마트폰을 열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내 휴대폰에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무심코 문자를 확인해보니 내 앞의 그녀가 보낸 문자였고, 그 안에는 그녀의 집주소가 찍혀 있었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그녀는 타박하듯 대꾸했다.
“뭐해? 빨리 네 주소 안 찍어 보내고. 오랜만에 손 편지나 써보자고. 편지지 고르는 센스 한번 보겠어.”
그녀의 재촉에 재빨리 내 2세대 휴대폰을 들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래. 2세대 휴대폰이든 스마트폰이든 어떠냐고. 다만 지금까지 변해왔던 나이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테지만, 그럼에도 오래 전 받은 엽서를 떠올리며 따스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아직 그럴 수 있는 나이기에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