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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 '길 가는 그대의 물음'

돌담, 다시 복원할 수 없는 돌담 (上)

제주한라병원 2024. 1. 31. 15:41

 

돌담, 다시 복원할 수 없는 돌담 ()

 

 

제주문화연구소장, 미술평론가 김유정

 

 

 

땅은 태초부터 인간이 사는 곳으로서 땅의 역사가 곧 문명사이고 경제의 원천인 산업이 일어나는 장소다. 더불어 땅은 인간의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부의 원천이기도 하다.

 

땅의 의미 우리는 자신의 땅을 구분하고 표시하기 위해 지도를 그린다. 지도는 우리가 사는 땅의 모양을 그린 도상(icon)으로 지역 간 경계와 거리를 나타내기 위해 길, , 하천, 마을, 부속섬, 주변국, 지명, 풍토, 풍속 등 매우 다양한 표기를 한다. 지도는 당대의 지식이 반영되며 동시대 한 국가의 정치와 사상이 집약돼 나타난다. 그러므로 땅은 토지경제학(land economics)의 영역이면서 지정학적(geopolitical) 장소가 되기도 한다.

 

땅을 소유한 사람이 있고 그 땅을 빌려 경작하는 사람이 있으며, 공공소유의 공적(共的) 재산이 되기도 한다. , , 임야, 목장, 마을, 도시, 바다를 비롯하여 황무지, 절벽, 섬까지 가리지 않고 사적이거나 공적인 소유가 되는 것이다. 역사란 바로 인간들의 삶에서 땅을 포함한 사물의 소유와 그것의 분배상황을 잘 보여주는 생존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유와 경계 구분 땅에 소유자가 있게 되면서 초기 인류 역사에는 없었던 울타리가 생기며 자신의 영역 구분과 소유권 관리를 하게 되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생산물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우리 것, 내 것이라는 개념의 울타리가 생겨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영역도 토굴이나 동굴 집터에 국한되었지만 사람들이 정착하며 점차 생활권이 확대되면서 관습이나 제도, 법이라는 규정에 의해 집터, 가둠터, 경작지라는 사적 소유지와 들짐승 사냥이나 해산물 채취, 식물, 열매, 땔감을 마련하는 공유지가 생겨났다.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늘어나는 것은 소유권에 대한 경계(境界)와 법적인 규약이다. 경계는 나라는 주체에서부터 가문, 마을, 지역사회, 국가 단위의 울타리다. 그 울타리의 종류도, , 바다, 하늘까지 좌표로 긋든, 실제 울타리를 치든 다양한 재료가 등장했다. 위도와 경도를 활용한 좌표에서부터, 지도의 그믓(), 싸리나 가시울타리, 목책(木柵), 나무, 돌담, 철조망, 알루미늄 팬스까지 다양한 모양의 경계선들이 등장했다. 결국 내 것과 우리 것의 소유에 대한 정확한 분할이 규정되게 되었다.

 

 

문헌으로 본 돌담의 의미 로컬리즘적인 관점에서 돌담을 보게 되면, 제주만이 갖는 화산섬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데 회복할 수 없이 사라지는 돌담 문화경관이 다시는 되살릴 수 없는 지경이 된 현실은 참으로 아쉽다.

 

돌담(stone wall)은 돌로 쌓은 울타리(fence)로 경계(boundary)의 의미가 크다. 그 돌의 재료는 매우 풍토적이다. 돌담은 담돌+돌담의 합성어로 이때 돌은 하나하나의 개체를 말하는 담돌이며 그 담돌로 쌓은 것을 돌담이라고 한다.

 

옛 문헌에 돌담을 말하는 한자어로 장(), 축장(築墻), (), 원장(垣墻), 석장(石墻)이 있다. 그러니까 담, 경계, 공간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일러 장()이라 하고 돌무더기인 머들은 석추(石堆)라 한다. 집담이나 절개지에 쌓는 돌담을 축담(), 무덤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산담(), 의 어로용 돌담을 원, 또는 원(), 돌에 흙을 발라 세운 벽을 축()이라 하여 한자를 섞어 쓴다.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제주인의 말은 문자는 섞어 써서 중국의 말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하기도 했다.

 

돌담과 관계된 옛 사람들의 기록은 풍토록에 돌담을 석장(石墻), 집담은 옥장(屋墻), 돌담 모습을 흉한 돌(醜石), 담을 장()이라 표현했고, 남사록에는 울타리담을 원장(垣墻), 담장을 장원(牆垣)이라고 했으며, 세종 때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도 담을 원(), 담장을 원장(垣墻)이라고 표현했다.

 

송나라 때 천문도에 이르면 자궁(紫宮)을 자미원(紫微垣), 태미(太微)를 태미원(太微垣), 헌원(軒轅)을 천시원(天市垣)이라고 부르면서 별들이 사는 궁궐 담의 의미가 비로소 원()이라고 하는 담장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제주의 바닷가 갯담을 ()’, ‘원담()’이라고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원()이라는 말은 한나라 때부터 유래한 천문사상, 즉 자미원·태미원·천시원에서 유래하는 삼원(三垣)에서 비롯되었는데 우리가 돌담을 담(), 돌담을 쌓는 개개의 돌()담돌(垣石)’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고대 중국의 천문사상과 연관이 있다.

 

 

 

공동목장 내 경계를 가르는 캣담 <사진 김유정>
돌담의 바람 구멍 <사진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