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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 '길 가는 그대의 물음'

세상 등진 처녀 총각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합

제주한라병원 2023. 11. 28. 13:24

 

김유정의 길가는 그대의 물음

 

세상 등진 처녀 총각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합

 

의례적 인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의례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의례를 통해 자신이 규정되거나 사회적 인간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의 일생에는 수많은 통과의례가 있다. 생로병사의 인생에서는 개인, 가정, 공동체가 겪어야 할 작은일, 큰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생일, 졸업, 결혼, 쾌유, 축하, 환갑, 상장례 등과 같은 의례를 통해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희로애락의 감정은 원초적인 본능으로 표출되고 삶의 행복과 슬픔의 굴곡이라는 정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의례는 하나의 과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첫돌, 졸업, 성년식, 합격, 결혼, 환갑, 죽음 등의 의례를 거쳐야만 다른 존재로 승화되며, 사회적 인간이라는 역할도 궁극적으로는 의례를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혼, 암창개와 죽은 혼제주도 의례 중에 지금도 조용히 행해지는 암창개라는 오래된 의례가 있다. 혼인의 일종이지만 슬픈 혼인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암창개란 암장가 가는 것을 말하는데 신랑 없이 신부 혼자만 혼례를 치르는 어두운(), 혹은 우울한 결혼식을 말한다. 혼례를 약속해 놓고 혼례 당일이 되어도 출타했던 신랑이 예정대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전쟁이나 해외에 나가 기약한 날 돌아오지 못할 때 신랑 집에서는 신랑 없이 상객들만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와 치르는 결혼의례다.

 

다른 경우에 치르는 암창개도 있다. 신랑 신부가 약혼한 다음 혼례를 치르기 전에 신랑이 친상(親喪:부모상)을 당했을 때, 상주로서 근신한다는 뜻으로 암창개가 치러진다. 이때 신랑 신부 예복은 색깔 있는 옷을 삼가(有色대신 素服을 입는다.)해야 한다. 신랑은 가만히 방안에 앉아 있고 상객들만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온다. 신부는 신랑 집에 오자마자 상복(喪服)을 입고 배례하고 난 다음 신부상을 받도록 하는데, 하객들의 참례나 접객은 보통 잔치 때와 마찬가지로 치른다.

 

또 다른 슬픈 결혼식으로 죽은 혼(死婚)’가 있는데 사후혼(死後婚)’이라고도 한다. 바로 영혼결혼을 말하는 것이다. 죽은 혼(死婚)란 결혼할 연령이 되었는데 불행히도 혼례를 치르지 못해 사망한 처녀, 총각이 있을 때 집안끼리 의논하여 두 남녀를 맺어주는 의례를 말한다. 예전에는 처녀, 총각이 죽은 다음 오랜 시일이 지나서야 죽은 혼를 치렀는데 요즘에는 사망 직후에 죽은 혼를 치르기도 한다. 살아서는 인연이 없어 못 맺은 혼인, 죽어서라도 좋은 짝을 만나 저승에 가서라도 행복하게 살라는 부모의 가슴 아픈 염원이 담겨있다.

 

영혼 결혼의 기원 중국에서는 영혼결혼을 명혼(冥婚)’이라고도 한다. 결혼 전에 죽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저승에서라도 반드시 짝을 찾아 줬다. 영혼결혼 풍습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위()나라 때이다. 위나라 무제(武帝)의 아들인 등애왕(鄧哀王) ()13세 어린 나이로 죽었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무제가 견씨(甄氏)의 죽은 딸에게 장가보내고 합장을 했는데 이것이 영혼 결혼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서기 212년의 일이다.

 

당나라 때에 이르면 영혼 결혼이 꽤 성행했다. 당나라 위후(韋后)는 동생 순()이 죽자 소지충(蕭至忠)의 일찍 죽은 딸과 영혼결혼을 시켰다. 송나라에서는 남녀가 장가·시집가기 전에 죽으면, 두 집안에서 중매인을 시켜 짝을 구했는데 그를 귀매인(鬼媒人)이라고 하였다. 집안끼리 수첩을 만들어 부모의 운명을 기원하고 점쳤다. 점괘를 얻으면 남자의 관(,모자)과 허리띠, 여자의 치마와 배자 등의 저승 옷을 빠짐없이 갖추어 놓고 중매인이 남자 무덤에 가서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제사 지낸 후 혼례를 치렀다.

 

청나라 산우(山右)지방 풍습에서는 남녀가 납채(納采)한 뒤에 요절하면 영혼결혼의 예를 치렀다. 여자가 죽으면 남편 무덤으로 보냈고, 남자가 죽으면 신부의 이름을 바꾸고 요절한 여자를 찾아서 다시 결혼시켰다. 그리고 산기슭 길한 곳에 합장시켰다. 이와 같이 영혼 결혼은 중국이나 제주, 우리 곁에서 드물지만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

 

부모의 지극한 사랑 부모의 마음을 매우 잘 헤아린 불교 경전 중에 불설대부모은중경(佛說大父母恩重經)이 있다. “부모님의 은혜는 강산보다 무거우니 진실로 보답하기 어렵네. 자식의 고통도 대신 하고자 하시고 자식이 힘들면 어머니는 근심하시네. 멀리 길 떠난다고 하면 돌아다니며 밤에 잠자리 추울까 마음 쓰시네. 자식들이 잠시 괴로움을 겪어도 어머니의 마음은 오랫동안 쓰리네.”

 

이와 같은 부모의 심정이 미혼(未婚)으로 세상을 등진 자식을 위해 이승의 소원을 저승에서라도 풀어주려는 깊은 사랑으로 이어져 죽은 혼로 표현된 것이다.

 

고개지,여사잠도, 영국대영박물관 소장
일본군에 강제징집돼 청춘에 죽은학생 이재규 비석
제주문자도. 제주대학굑박물관 소장. 예자 상단에 사당이 그러져있다
가장 제주다운 제주의 산담. 햡묘는 한 봉분에 부부가 같이 묻히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