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당(神堂)의 원조, 송당·와흘 본향당
오래전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와흘 본향당에 서너 번 들린 적이 있다. 와흘 본향당에는 수령이 수백 년이나 되는 거대한 팽나무들이 신목으로 있어 신령스러움이 가득하다. 신당 주위 팽나무의 우람한 가지가 담장 밖까지 길게 뻗어있고 형형색색의 옷감과 소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주위에 심어져 있는 동백나무는 삼승할망이라 불리는 산신(産神)할망의 상징목이기도 하다.
본향당 제주 신당의 원조는 송당 본향당이다. 이곳 당신인 금백주는 소로소천국과 결혼하여 아들 18명과 딸 28명을 낳았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은 제주도 각처로 흩어져 당을 만들고 좌정하였다.
와흘 본향당은 송당 본향당의 열한 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이 이곳 서정승 딸과 혼인하여 처신(妻神)으로 삼은 신당이다. 서정승 딸이 임신 중 입덧이 심하여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돼지털을 그슬어 냄새만을 맡았다. 백조도령은 “부정을 탄 처와는 함께 상을 받을 수 없으니 저만치 물러나 있으라”하여 신단을 별거하는 모습으로 따로 모셨다.
제주에서는 남신보다 여신을 더 귀하게 모신다. 삶의 방식도 그러했다. 백조도령신단은 중앙에 있어도 주민들이 바친 제물이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서정승 딸의 신단엔 양초가 줄지어 있었으며, 주변의 팽나무 가지엔 색동천과 소지인백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본향당 안의 신령스러움은 거의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소지와 색동천 등을 너절하게 걸어놓은 팽나무 가지가 너무 어지럽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건데 그건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고 업신여김이었다. 동창의 누나이자 시인인 김순이 작가를 유흥준 교수가 초대하여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본향당이란 제주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요즘 말로 하면 주민센터입니다. 제주 여인네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본향당에 와서 신고합니다. 제주에서 당신의 중요한 특징은 신과 독대한다는 점이지요. 제주의 신을 할망(할머니)이라고 해요. 어머니는 다소 엄격한 데가 있는 반면, 할머니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자애로움이 있죠. 여성은 소문 내지 않고 자기 얘기와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심리가 있거든요. 답을 몰라서가 아니죠. 그런 하소연을 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겁니다. 모진 자연과 싸우며 살아가는 제주인 들에겐 이런 할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죠. 심신의 카운슬링 상대로 할망을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제주 무속신앙의 원조 제주의 창조신화는 여성으로 시작한다. 그중 제주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신은 설문대할망이다. 거인인 설문대할망은 치마 폭으로 흙을 날라 한라산을 쌓았다고 한다.
달리 전해지는 창조신은 금백조라고도 불리는 백주도령이다. 서울 남산에서 태어난 여신 백주도령은 혼기가 되어 제주에 내려와 소로소천국과 결혼했다. 백주도령은 아들 18명과 딸 28명을 낳고 살다 죽어서 마을을 지키는 신이 되었고, 자식들은 온 섬으로 흩어져 각 마을의 신이 되었다. 설문대할망이 지역 환경의 창조를 이야기한다면, 백주도령은 지역에 정착한 인간을 이야기 한다.
제주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당이 있다. 마을의 당신을 보통 조상이라 칭한다. 조상이란 말은 최초의 마을을 만든 조상이거나 혈연적인 조상의 뜻을 지닌다.
백주도령 역시 당신으로 제주를 지키는 1만 8,000여 신의 어머니다. 백주도령이 살았던 마을이 송당(松堂)이고, 백주도령을 모신 본향당이 있는 오름이 당오름이다. 송당 본향당 신의 자손들이 제주 각지로 흩어져 좌정하고 곳곳의 당신이 되었으니, 당오름은 제주 무속신앙의 원조임과 동시에 모든 오름의 어머니 격이라 할 수 있다.
당오름 외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둘레길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둘레길은 건천과 활엽수가 우거진 원시림 숲을 지나 삼나무 길로 이어진다. 가는 길에 소원을 적은 종이와 천들이 나부끼는 소원 나무들을 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여름에도 햇볕을 막아주는 우거진 나무들로 트래킹 코스로도 제격이다. 표고274m, 비고 69m의 나지막하고 둥그스름한 편으로, 북서쪽으로는 얕게 파인 말굽형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백주도령이라는 당신이 지켜주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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