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건축자산을 찾아서] <1> 까망초가집
100년의 기억을 가지며 산다
순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집도 순하다. 어쩌면 그리도 사람과 집이 닮았을까. 집이 사람을 닮은 이유는 있다. 손길이 있어서다. 얼마만큼의 손길을 줬을까? 수만 시간의 손때가 타고, 연속된 시간의 겹침이 집에 있다.
겹침은 누적이다. 할아버지가 있었고 할머니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길도 거기 있었다. 그들은 모두 떠나고 없는 자리에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부모 세대를 기억하는 이들이다. 그들도 이제 부모 세대의 나이를 뛰어넘어 손자를 둔, 성성한 머리칼을 안고 산다. 얼굴에도 하나둘 세월의 수평선이 자리한다.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까망초가집 띠가 아닌 까만 그물망을 얹었기에 까망초가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순한 부부가 그 집에 있다. 은퇴하고 집을 가꾸는 순한 부부의 까망초가집은 세 칸이다. 지극히 평범한 크기이나 부부에겐 더없이 딱 맞다. 까망초가집은 부부에겐 신혼집이었다. 일자리 때문에 제주시로 옮겨 살았지만 다시 고향에서 삶을 꾸리고 있다. 마치 신혼처럼. 그들을 보니 왜 이 땅을 화순(和順)이라 부르는지 알겠다.
화순리 바닷가는 몽글몽글한 몽돌이 많았다. 개발로 그 많던 몽돌해변은 사라졌으나 까망초가집 여기저기에 바닷가의 흔적을 느끼게 만드는 몽돌이 보인다. 몽돌은 모나지 않고 참 순하다. 사람과 집이 닮고, 집 마당도 순한 사람을 닮았다.
옛집, 제주초가 제주초가는 상방(마루)을 기준으로 기능이 나눠진다. 한쪽은 구들(방)과 고팡이 자리하고, 다른 쪽은 정지(부엌)와 구들이 웅크린 모양새다. 그렇다고 집 구조가 판에 박듯 같은 모양을 하지 않는다. 집 구조가 똑같다면 아파트와 다를 게 없다. 집이란 사람을 닮고 사람이 집을 만든다. 집은 방에서 시작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가 있다. 너무 단순해 보이지만 방이라는 공간이 없다면 집이 만들어질 수 없다. 방은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고, 사람이 드나들 문을 달아 만들어진다. 단순한 논리이지만 그 같은 공간이 초가를 이룬다.
까망초가집은 세 칸이었다가 부엌 쪽을 조금 확장했다. 신혼부부를 위한 어머니 세대의 고민이었으리라. 그렇게 신혼부부를 위해 집을 내준 어머니는 먼저 가셨다. 부부는 기억이 담긴 그 공간에 다시 찾아와 산다. 허물어져 가던 초가를 뭉개지 않고 편리한 기능만 몇 개를 담아 산다.
초가를 비롯한 우리의 옛집은 집 밖에 화장실을 뒀다. 정지와 변소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제주신화 가운데 ‘문전본풀이’에 그 이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바뀐 시대에 까지 변소를 멀리 둘 일은 없다. 부부는 2012년 초가를 살리면서 화장실은 내부로 끌어들였다.
난방도 그렇다. 예전 난방은 굴묵(굴목이라고도 함)이라는 공간을 통해 불을 지펴 방을 데운다. 납작한 구들돌이 열을 받으면 오랜 기간 따뜻함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도 옛 방식이다. 이제는 나무를 가져오는 일도 불가능하고 화력 좋은 말똥을 구하지도 못한다. 신식 보일러를 깔고 구들돌은 집 마당의 디자인적 요소로 탈바꿈했다.
옛집의 벽은 대나무와 흙이 채워져 있다. 지붕에도 흙을 썼다. 부부는 한지로 마감했다. 한지를 몇 차례 발라 마치 회벽의 느낌을 낸다. 회벽은 시간이 흐르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데 한지는 그러지 않으니 좋다.
기억의 집 까망초가집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건축되었다. 가옥대장엔 1934년의 기록이 가장 빠르다. 까망초가집 주인장의 아버지가 집주인으로 올라 있었다. 1922년생이던 아버지가 10대에 재산을 물려받은 셈이다. 재산분할을 하면서 현재 집주인의 아버지에게 준 것으로 보면, 이 집은 1920년대에 세상에 태어난 게 분명하다. 그러니 까망초가집은 많은 기억을 안고 있다. 집을 만들었던 할아버지의 기억이 있고, 10대에 재산을 물려받은 아버지의 기억이 있고, 지금 살고 있는 부부의 기억이 온전히 보존된다. 귀찮다며 허물고 지었더라면 기억은 사라질 터인데 까망초가집으로 살렸기에 기억을 가지며 산다.
까망초가집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산 초가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이젠 주변에서 까망초가집이 가장 오랜 집이다. 200년을 살았던 집을 대신해 까망초가집이 더 오랜 세월을 묵을 약속을 한다.
까망초가집은 기억의 집이다. 집을 새로 단장하려다 보니 기억이 집안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잡지가 한가득 나왔고, 그 잡지는 처마의 바닥을 장식하며 새로운 기억으로 자리 잡으려 한다. 방앳돌의 네모난 구멍에 구슬 한 알이 있다. 부부의 아이들이 오래전 놀았던 흔적이다. 집은 기억을 먹고 살고 기억을 공유한다. 이젠 새로운 기억이 쌓일 준비를 한다. 까망초가집에 안길 새로운 기억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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