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이 부각되면서 지역성의 가치도 변하고 있다
[나는 제주건축가다] <21> 비앤케이건축 부희철
[건축가 부희철] 그는 미국의 건축도 접했다. 미국의 서부 개척을 떠올리게 만드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유학했다. 건축은 둘러싸는 개념으로 ‘위요’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삼성혈이 위요감을 준다. 그렇다! 삼성혈은 포근함을 지녔다. 땅에서 솟아난 제주사람들은 삼성혈처럼 옴팡진 기운을 그들의 주거에도 표현했다. 강한 비바람을 이기는 하나는 비책으로 자신이 사는 집을 낮게 만들었다. 집 자체도 낮았지만 집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마당 역시 낮았다. 집을 세운 땅은 주변 땅보다 낮게 만듦으로써 비바람에 응했다. 그는 그런 땅을 좋아한다. |
∎ 미국에서 배운 건축과 제주에서 실현해본 건축은 어떤 차이가 있나.
제일 큰 차이점은 만드는 방식이다. 미국 시스템은 만들어진 걸 조합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콘크리트로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한다. 현장마다 다르기에 그런 점에서 차이가 난다.
∎ 단가도 제주도가 훨씬 세겠는데.
우리는 연봉 대비 집값이 너무 높다. 그러다 보니 다른 데 소비를 하지 못한다. 자기 집을 갖기 점점 어려워진다. 미국은 디벨로퍼라는 부동산업자가 단독주택을 몇 백 채 지어놓고 판다. 우리 아파트 팔듯이. 하지만 집 내부를 잘 바꿀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미국은 관련 마켓도 잘 돼 있다. 주말에 취미로 집을 고치는 경우도 많다. 똑같은 평면도 집주인이 집을 스스로 고치면서 본인의 개성을 담는다. 그런 집은 돈을 더 많이 받고 팔린다.
우리는 콘크리트여서 바꾸기가 어렵다. 콘크리트는 1970년대 이후 많아졌는데 거기에 맞는 생활을 하다 보니 목조로 지은 집은 불안하다고 한다. 몇 천 년간 목조에서 살았는데 50년간 행해진 콘크리트에 익숙해졌다. 변화에 대한 시도도 어려워지고 천편일률적인 삶의 방식에 스스로 맞춰가고 있다.
∎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애착이 가는 땅을 꼽으라면 삼성혈이다. 삼성혈은 약간 굴렁지고 둘러싼 ‘위요감’이 있다. 산굼부리도 그렇다. 그런 곳이 제주 태초의 공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제주도는 바람의 영향도 있지만 집이 많이 내려간 형태였다. 굉장히 우리와 잘 맞는 스케일의 공간이다. 그런 땅을 좋아한다.
땅은 스토리를 지녔다. 다양성을 얘기할 때 땅 이야기를 뺄 수 없다. 개개인 스토리도 있겠지만 땅이 가진 스토리가 있다. 몇 미터 도로가 끼면 땅은 어떻게 되고, 주변 건물과의 도시 컨텍스트(연관관계, 주변상황) 부분들이 땅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걸 잘 반영하면 더 매력 있는 스토리가 있는 건축물이 되리라 본다.
∎ 건축은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인지.
대학교 때 들은 얘기가 있다. 일반인보다 세 발짝 앞서 나가는 위대한 예술가와, 덜 위대하지만 반 발자국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면 일반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질문을 받았다. 세 발짝 앞서가는 예술가를 택했는데 의외로 반 발자국 앞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반 발자국 앞선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 나간다. 결국은 세 발을 따라가겠지만 지금 필요한 건 일반 사람들이 반 발자국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한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 건축가들을 만날 때 늘 던지는 질문인데 지역성이란.
지역성의 가치는 변용되고 있다. 땅의 스토리가 더 추가되는 것도 지역성이 될 수 있고, 건축주의 삶이 담겨서 하나의 지역성이 될 수도 있고. 이젠 ‘지역성이 뭐다’라고 정의를 내리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다양성이 부각되고 그걸 존중하게 되면 지역성은 굉장히 다양해진다.
∎ 현대건축물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 지어지는 건축물이 오래 가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변용이 힘들어서일까.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라멘조랑 벽식조는 가변성 범위가 다르다. 라멘조로 하면 변용시킬 수 있는데 벽식 구조는 하나하나가 구조체여서 변용하기가 힘들다. 아시다시피 층고를 낮추려고 벽식 구조가 나왔다.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 때는 벽식 구조보다 라멘조로 가야 추후 이용할 수 있다.
∎ 건축가들은 해야 할 역할도 많을 텐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오 폰티의 <건축예찬>을 보면 건축가는 모든 걸 다해야 한다고 나온다. 건축가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뭔가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정말 많다. 하나하나 돈으로 따지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에 비해 받는 보수는 한정적이다. 나중에 남아 있는 건축물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직업이다. 그래도 남는 건 건축이다. 그 과정 중에 내가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남는 것은 건축이다. 남겨지고 기록되고 보여주는 건 건축이기 때문에 건축물이 잘 나오도록 잘 나오는 방향으로 노력하려 한다.
제주 도내 젊은 건축가들과의 만남은 이번 기획으로 마무리되고 다음 호부터는 제주 지역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 자산에 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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