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건축자산을 찾아서] <2> 고씨주택
가치의 보존, 언론과 시민단체의 노력이 중요
사라지는 일은 아쉬움을 남긴다. 무언가에 기억을 지닌 이들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 면에서 건축이라는 행위의 결과물인 건축물은 사라질 준비를 한다. 세우고, 고치고, 헐고, 다시 짓는…. 어찌 보면 건축은 ‘존재의 행위’이다.
헐리는 건축물과 가치 땅 위에 세우는 작업인 건축은 눈에 드러나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고 해서 늘 같은 건축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건축물을 세운 뒤 고쳐 쓸 때까지는 같은 건축물이 존재하겠지만, 헐리고 하면 그 땅을 다른 건축물이 자리를 차지한다. 이때 우리는 고민을 한다. 헐 것인가, 말 것인가?
헐리는 건축물은 존재 가치를 다했다고 보면 된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서 운명을 다하기도 한다. 시대흐름은 디자인적 요소도 있고, 경제적인 요소도 있다. 주변에 새로 생기는 흐름에 따라서 자신의 집을 디자인하려는 이들은 기존 건축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건축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이들은 용적률을 최대로 끌어올려, 세를 받으며 사는 ‘건물주’가 되고자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건축물은 헐린다.
건축물은 언젠가는 헐리게 마련이지만, 헐리기 이전에 고민을 할 게 있다. 바로 ‘가치’이다. 건축물이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아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고씨주택’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극적인 고씨주택의 생존 2014년이다. 그 해 6월은 지방선거를 치렀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제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꽤 좋은 건축물인 것 같은데, 헐릴 위기다.”는 제보였다. 현장을 찾았다. 당시 도정의 역점사업인 탐라문화광장 조성으로 산지천 주변의 건축물을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쓸어버릴 때였다.
허물기 위주의 가혹한 사업이 진행되던 때였고, 그걸 누구도 뭐라고 하질 않았다. 현장을 찾아 만나게 된 고씨주택은 산지천 서쪽으로 북성교를 건너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위치했다. 그 집에 살던 고한봉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하면 살릴지에 대한 고민을 한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고씨주택은 일식과 제주식의 결합인 ‘한일절충형’ 건축물이다. 고씨주택은 기본적으로 제주인의 삶을 드러내는 안·밖거리 문화인 두거리집을 채용했고, 일본주택의 전형인 현관은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 화장실을 두고 있다. 남쪽에 난 테라스를 따라서 방에서 화장실로, 거실에서 화장실로, 부엌에서 화장실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테라스 전면에 문을 단 점은 일본풍이다. 방 내부엔 흔히 일본어로 ‘오시이레’라고 불리는 벽장도 있다. 방은 구들을 깔았다. 고씨주택은 이렇듯 한일 주택의 장점만을 취합한 특징을 보였다. 어쨌든 고씨주택은 보도 이후 생존의 길을 텄다.
그해 7월 2일 고씨주택에 구조의 손길이 뻗었다. 철거를 앞두고 있던 이 주택의 활용방안을 찾자며 행정이 나섰다. 제주도 문화정책과가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을 맡고 있던 도시디자인단에 철거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협조공문을 보내면서 살아나게 됐다. 단독 보도를 하기는 했으나 보존에 한몫을 한 이들은 건축가 김석윤씨, 첫 제보를 줬던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고영림 대표였다. 이들이 살짝 던져준 소스는 내게는 소중한 취재감이었다.
가치보존을 위한 노력 필요 고씨주택은 지금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리모델링으로 되살아난 고씨주택은 제주책방과 사랑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제주를 대표하는 도시재생의 이미지를 달고 있어서인지 쓰임새가 많다. 여기를 찾는 이들도 많다.
지난해 제주도는 고씨주택을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했다. 도심에 옛 풍경을 지닌 건축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무척 중요하다. 우선은 그걸 살려내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시민단체의 살리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고씨주택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시민단체는 ‘반드시 살리겠다!’는 의지를 비쳤고, 고씨주택을 알리기 위해 제주도민만 만난 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씨주택을 보여주며 가치를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거기에 언론이 호응했다. 고씨주택은 함께 살리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산치전에 있는 고씨주택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은 ‘찡~’하며 울린다. 고씨주택은 글의 중요성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것도 내게 말한다. 당신의 글이 나를 살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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